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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한 군중
마가복음 15:1~15
인류 역사에서 유대인만큼 이유 없이 멸시받고 핍박받은 민족도 없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보듯 유럽 역사에서 유대인은 잇속에 밝고 약삭빠르고 남의 불행에 기대 사는 불온한 존재로 취급받았습니다. 오해와 편견과 차별입니다. 그리스·로마에 복속되기를 거부하였던 유대인은 기독교 세계에서도 차별받고 외면당했습니다. 19세기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유대인은 모든 유럽에서 증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함께 살 권리’를 거부당한 유대인은 나치스에 의하여 ‘살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독일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독일이 가장에서 심했지만 유대인 박해는 전 유럽적 현상이었습니다. 20세기 최대 비극은 두 차례에 걸친 세계 전쟁뿐만 아니라 600만에 이르는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입니다. 그동안 인류는 이성의 발전과 역사의 진보를 통하여 희망의 삶을 추구하였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는 인류의 이런 보편적 희망을 무색케 한 역사의 오점이자 정신적 충격입니다.
삶에는 모순이 가득합니다. 척박한 생존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선민을 자처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정경이 금하는 고리대금업을 직업으로 택하였고, 당시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삶의 규범으로 받드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고리대금을 불법으로 취급하면서도 이웃사랑을 실천하기는커녕 유대인을 차별하였습니다. 진보와 자유의 가치를 든 사상가들은 유대인의 아집과 고립주의를 공격하였고, 사회주의자들은 유대인을 자본주의의 화신이라며 핍박했고, 민족주의자와 인종주의자들은 유대인의 우월감이 불쾌하여 시샘하였고, 보수주의자들은 유대인을 전통 가치를 전복하려는 불온 세력으로 규정하였습니다. 대단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대인의 역사는 기구합니다. 70년 로마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난 후 마사다 요새에서 타협하지 않고 항전을 잇다가 숨져갔습니다. 성전 제사는 중단되었고, 제사장직도 소멸되었으며 포로로 끌려가거나 로마 군인들의 전리품이 되어 노예가 되었습니다. 사랑과 평화의 기치를 내건 그리스도교가 제국의 종교가 된 후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주도하는 세상에서 유대인이 설 곳은 더 좁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유대인은 인류사에서 이런 증오와 차별을 받아야 했을까요?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심문하는 로마 총독 빌라도는 자칭 유대인의 왕 예수에게서 어떤 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심문에 주님은 웅변보다 강한 침묵으로 대응하셨습니다. 빌라도는 관례에 따라 사면권을 행사하여 주님을 풀어주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를 거부하고 십자가 처형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말이 후손들에게 얼마나 큰 족쇄가 될지 알지 못했습니다. 악하고 무지한 군중입니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15:13,14)
주님, 그때 그 악하고 무지한 군중은 지금 이 땅에도 여전합니다. 진리를 짓밟고 평화를 조롱하며 하나님 나라를 비웃는 이들이 이 땅에 차고 넘칩니다. 긍휼히 여겨주셔서 정신 차리게 하여 주십시오.
2024. 3. 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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