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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성
신명기 19:1~21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1862)의 주인공 장 발장은 가난으로 굶주리는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친 죄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4번의 탈옥을 시도하여 모두 19년 감옥살이를 하였습니다. 형기를 채우고 나온 그에게 세상은 감옥보다 더 살벌하였습니다. 그는 교회에 갔다가 은식기를 훔쳤습니다. 도망하는 과정에 붙잡혔으나 교회 미리엘 주교의 묵인으로 새 삶을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장 발장은 마들랜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게다가 많은 선행과 공헌을 인정받아 마침내 시장이 됩니다. 그런데 자베르 경위가 마들랜 시장을 장 발장으로 의심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장 발장은 체포되어 다시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이 소설은 프랑스 대혁명(1789) 이후 혼란한 시대적 배경 아래 씌어졌습니다. 앙시앙 레짐은 물러갔으나 아직 시민이 원하는 세상은 오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혼란과 고통이 극에 달해 시민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런 배경 아래서도 위고는 장 발장을 통하여 사랑과 용서와 희생의 가치를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화합과 건강한 발전을 가로막는 집단 가운데 하나를 지적하라면 검찰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검찰은 그동안 수사권과 기소권을 틀어쥐고 있어서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권력남용과 악용의 소지가 큽니다. 무고한 자를 협박할 수 있고, 가벼운 잘못에 무거운 처벌을 요구하기도 하며, 자신들이 갖고 있는 정보로 마음에 들지 않는 특정인을 겁박할 수도 있습니다. 있는 죄도 없애주는가 하면 없는 죄도 만드는 신박한 재주를 부립니다. 근래에 그런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쥔 칼을 공공의 선을 위하여 사용하기보다 정적에게는 가혹하고 자신(또는 자기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모습은 검찰 스스로에게도 불행이지만 우리 사회를 퇴행시키는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악행은 고쳐져야 합니다. 검찰은 사회 질서 유지의 첨병입니다. 반듯하고 공정한 사법제도는 세상을 평화롭게 만듭니다.
나의 눈에 비치는 종교의 모습도 검찰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종교의 가치란 세속의 이해와 이념과 정략을 초월하여야 하는데 현실에서 보는 종교는 세속의 이해와 이념과 정략에 갇혀있습니다. 정파보다 더 정파적이고, 시장보다 더 시장적입니다. 종교가 행한 악마적인 일일수록 신의 영광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은 종교 무용론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종교가 본연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정의로움에 불타던 풋풋한 젊은 검사들도 머리가 희어지면서 정의를 왜곡하는 일에 앞장서고, 하늘을 위해 목숨마저 내놓겠다는 거룩한 젊은이들도 노욕에 스러지는 일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도피성은 부지간, 또는 우발적으로 살인한 자를 보호해 주는 장소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하나님은 피난할 권리를 인정하십니다. 도피성이 너무 멀리 있어 길에서 희생되지 않도록 촘촘하게 배려하십니다. 하나님의 그런 마음을 교회에 담아야 합니다.
주님, 가나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하나님은 그 땅에서 우발적인 일로 생명을 손상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구원책을 밝히셨습니다. 도피성에 담긴 은혜를 교회가 꼭 기억하여야겠습니다.
2024. 4.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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