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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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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편지 제 9호 1999.10.30
저기 저 빨간 꽃들 좀 봐. 저게 물봉선이라는 꽃이야. 물가에 핀 봉선화라는 뜻이겠지. 따라서 해봐. 물봉선”
“물봉선”
주말을 이용해 들꽃 여행을 나온 길이었다. 벌써 열 번도 넘게 아들아이의 입 모양이 나의 입 모양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개망초 여뀌 쇠무릎 짚신나물 층층이풀 참취 사위질빵 오이풀 박주가리 둥근이질풀 등등… 조금 전에 며느리밑씻게를 따라할 때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느라 몇 번의 NG를 내야만 했다. 아내도 무슨 꽃 이름이 그러냐고 웃으며 한 마디 했었다.
“며느리밥풀이라는 꽃도 있어. 그 꽃에 얽힌 슬픈 이야기도 있고… 붉은 꽃잎 속에 정말 흰 밥풀 같은 것이 들어 있는데 얼마나 예쁜지 몰라. 따라서 해봐.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밥풀꽃”
이번에는 꽃이름이 아내와 아들아이의 이중창으로 울려 나온다.
“아빠, 이렇게 작은 꽃도 다 이름이 있어요?”
“물론이지. 모든 꽃들에게는 다 이름이 있지. 우리가 흔히 이름 없는 꽃들이라고 말하는 알고 보면 다 예쁘고 아름다운 이름이 있기 마련이지. 이건 괭이밥이란 꽃이야. 따라서 해봐. 괭이밥”
“괭이밥”
그런데 아내는 아들아이와 함께 꽃이름을 따라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우리 어렸을 때는 이 꽃을 신검이라고 했는데…”
“맞아. 시금초라고 부르기도 했지. 잎을 씹어보면 신맛이 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거야. 일종의 속명인 셈이지. 싱건이라는 이름도 있어”
그 노란 풀꽃과의 첫 만남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해8월, 여름 방학이 막 끝나고 잡초가 무성한 교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청소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풀을 뽑고 있는 아이들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노란 눈곱 같은 것이 얼핏 눈에 띄었다. 다가가 보니 마치 화가의 팔레트에 뿌려진 노란 물감 같은, 작디작은 노란 풀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작은 꽃이 있을까 싶었다. 한 순간 빛을 발했다가 사라지는 반딧불처럼 잠시라도 딴 곳에 눈을 주었다 하면 다시 찾기가 쉽지 않을 만큼, 말 그대로 눈곱만큼이나 작은 꽃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 자태와 용모가 신기할 정도로 예쁘고 앙증스러웠다. 작아서 더 단정해 보이는 초록색 꽃밭침과 설핏 핀 노란 웃음 같은 꽃이 잘 어울려서 더 이상 아름다울 수가 없는 한 경지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 그날부터 였을거야. 아빠가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들이다 소중해 보이기 시작한 것이. 공부도 못하고 좀 초라해 보이는 그런 아이들까지 말이야”
그렇게 말을 맺고 허리를 펴고 일어서는데, 길 저편 언덕에 한 무리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국화와 코스모스를 반반씩 닮은 들꽃들이 얼른 눈에 띄었다.
“구절초라는 꽃 이름 들어 봤니?”
“들어본 것 같아요. 아빠 시에선가?”
“그럼 쑥부쟁이는?”
“쑥부쟁이요? 그런 꽃도 있어요?”
“바로 저거야. 저기 왼쪽에 핀 것이 쑥부쟁이고 오른 쪽에 핀 것이 구절초야.비슷하면서도 좀 다르지? 따라서 해봐.쑥부쟁이”
“쑥부쟁이”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아들아이의 장래의 직업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들아이는 장차 의사가 되어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의술과 인술을 베풀면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대강의 그림을 그려 놓았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 와서는 생각이 많이 바뀌는지, 시키지 않아도 제 스스로 장래의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곤 했다.
며칠 전에는 별자리에 관련된 수행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밤을 꼬박 세우다시피 하더니 천문학자가 되어 별을 연구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요즘 별자리를 공부하면서 생각해 봤는데요, 같은 이과라고 해도 의학보다는 천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아요. 그리고 대학에 가면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의대에 가면 그럴 수 없잖아요”
언젠가 아들아이가 대학에 가면 연극을 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의대에 가면 그러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아들 아이는 그 말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 저 복음송 가수 겸 작곡자가 되면 안될까요. 찬양단을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면서 찬양집회도 하고요”
아들아이가 희망하는 장래의 직업은 또 이렇게 바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눈빛으로 보아 하나님의 일보다는 화려한 조명의 유혹에 더 강하게 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나는 그날 들꽃여행을 마감하면서 아들아이에게 이렇게 한마디 했다.
“이 세상에는 의사나 작곡가나 천문학자 같은 직업 말고도 아직 네가 모르는 직업이 수도 없이 많을 거야. 그 중에 저 들꽃들처럼 언뜻 보기에는 작고 초라해 보이지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름대로의 빛깔과 향기가 있고, 사람들에게도 기쁨과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직업들이 많이 있을거야. 아빠는 우리 사을이가 그런 직업을 갖길 바래”*
저기 저 빨간 꽃들 좀 봐. 저게 물봉선이라는 꽃이야. 물가에 핀 봉선화라는 뜻이겠지. 따라서 해봐. 물봉선”
“물봉선”
주말을 이용해 들꽃 여행을 나온 길이었다. 벌써 열 번도 넘게 아들아이의 입 모양이 나의 입 모양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개망초 여뀌 쇠무릎 짚신나물 층층이풀 참취 사위질빵 오이풀 박주가리 둥근이질풀 등등… 조금 전에 며느리밑씻게를 따라할 때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느라 몇 번의 NG를 내야만 했다. 아내도 무슨 꽃 이름이 그러냐고 웃으며 한 마디 했었다.
“며느리밥풀이라는 꽃도 있어. 그 꽃에 얽힌 슬픈 이야기도 있고… 붉은 꽃잎 속에 정말 흰 밥풀 같은 것이 들어 있는데 얼마나 예쁜지 몰라. 따라서 해봐.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밥풀꽃”
이번에는 꽃이름이 아내와 아들아이의 이중창으로 울려 나온다.
“아빠, 이렇게 작은 꽃도 다 이름이 있어요?”
“물론이지. 모든 꽃들에게는 다 이름이 있지. 우리가 흔히 이름 없는 꽃들이라고 말하는 알고 보면 다 예쁘고 아름다운 이름이 있기 마련이지. 이건 괭이밥이란 꽃이야. 따라서 해봐. 괭이밥”
“괭이밥”
그런데 아내는 아들아이와 함께 꽃이름을 따라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우리 어렸을 때는 이 꽃을 신검이라고 했는데…”
“맞아. 시금초라고 부르기도 했지. 잎을 씹어보면 신맛이 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거야. 일종의 속명인 셈이지. 싱건이라는 이름도 있어”
그 노란 풀꽃과의 첫 만남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느 해8월, 여름 방학이 막 끝나고 잡초가 무성한 교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청소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풀을 뽑고 있는 아이들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노란 눈곱 같은 것이 얼핏 눈에 띄었다. 다가가 보니 마치 화가의 팔레트에 뿌려진 노란 물감 같은, 작디작은 노란 풀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작은 꽃이 있을까 싶었다. 한 순간 빛을 발했다가 사라지는 반딧불처럼 잠시라도 딴 곳에 눈을 주었다 하면 다시 찾기가 쉽지 않을 만큼, 말 그대로 눈곱만큼이나 작은 꽃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 자태와 용모가 신기할 정도로 예쁘고 앙증스러웠다. 작아서 더 단정해 보이는 초록색 꽃밭침과 설핏 핀 노란 웃음 같은 꽃이 잘 어울려서 더 이상 아름다울 수가 없는 한 경지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 그날부터 였을거야. 아빠가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들이다 소중해 보이기 시작한 것이. 공부도 못하고 좀 초라해 보이는 그런 아이들까지 말이야”
그렇게 말을 맺고 허리를 펴고 일어서는데, 길 저편 언덕에 한 무리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국화와 코스모스를 반반씩 닮은 들꽃들이 얼른 눈에 띄었다.
“구절초라는 꽃 이름 들어 봤니?”
“들어본 것 같아요. 아빠 시에선가?”
“그럼 쑥부쟁이는?”
“쑥부쟁이요? 그런 꽃도 있어요?”
“바로 저거야. 저기 왼쪽에 핀 것이 쑥부쟁이고 오른 쪽에 핀 것이 구절초야.비슷하면서도 좀 다르지? 따라서 해봐.쑥부쟁이”
“쑥부쟁이”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아들아이의 장래의 직업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들아이는 장차 의사가 되어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의술과 인술을 베풀면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대강의 그림을 그려 놓았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 와서는 생각이 많이 바뀌는지, 시키지 않아도 제 스스로 장래의 직업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곤 했다.
며칠 전에는 별자리에 관련된 수행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밤을 꼬박 세우다시피 하더니 천문학자가 되어 별을 연구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요즘 별자리를 공부하면서 생각해 봤는데요, 같은 이과라고 해도 의학보다는 천문학을 공부하는 것이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아요. 그리고 대학에 가면 제가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의대에 가면 그럴 수 없잖아요”
언젠가 아들아이가 대학에 가면 연극을 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의대에 가면 그러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해 준 적이 있었다. 아들 아이는 그 말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 저 복음송 가수 겸 작곡자가 되면 안될까요. 찬양단을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면서 찬양집회도 하고요”
아들아이가 희망하는 장래의 직업은 또 이렇게 바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눈빛으로 보아 하나님의 일보다는 화려한 조명의 유혹에 더 강하게 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나는 그날 들꽃여행을 마감하면서 아들아이에게 이렇게 한마디 했다.
“이 세상에는 의사나 작곡가나 천문학자 같은 직업 말고도 아직 네가 모르는 직업이 수도 없이 많을 거야. 그 중에 저 들꽃들처럼 언뜻 보기에는 작고 초라해 보이지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름대로의 빛깔과 향기가 있고, 사람들에게도 기쁨과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직업들이 많이 있을거야. 아빠는 우리 사을이가 그런 직업을 갖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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