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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들꽃편지 제14호 1999.12.6
출처 좋은생각 1999.11월호
들국화
가을이 짧아진다고 해도
우리 걱정하지 맙시다.
단풍은 색이 바래고,
낙엽은 힘없이 떨어지겠지만
우리 곁에 들국화가 있는 한
우리의 가을은 언제나
아름다울 것입니다.
신문에 ‘가을이 짧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몇 해 전부터 여름 더위가 가을까지 이어져 가을이 짧아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문득 옛 가을의 한가로운 정취가 떠올랐습니다. 너무 오래 서 있어 팔 아플 것 같아 걱정되던 황금들판의 허수아비, 해질녘이면 어디서 날아 왔는지 마당을 가득 채우던 고추잠자리, 옆집 감나무에 붙어 ‘삐요시 삐요시’ 울어대던 고추매미. 아침저녁으로 불어 오는 산들바람….
이렇게 아름답던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고 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 지고 뜻 모를 불안도 슬쩍 지나갑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을뿐 아니라 모든 계절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특히 한 달은 걷잡을 수 없이 빨리 지나갑니다.
“이번만 지나면 다음엔 좀 여유가 있겠지” 하고 몸과 마음의 진액을 모두 쏟고 쓰러지면 다음 달이 곧바로 다가와 ‘빨리 일어나’ 하면서 등을 두드립니다.
한 달의 일이 끝날 때쯤이면 짤 대로 짜내 이제는 바짝 말라 있는 행주 같은 내 마음을 붙들고 ‘아! 빨리 내 마음의 행주에 물을 적셔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여행도 하고, 책도 읽고, 여유있게 생각도 해야 하는데’하면서 나를 재촉합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으로 내 마음을 흥건히 적셔 본 적도 없습니다.
내 마른 마음은 늘 좋은님들이 보내 주는 편지 안에서, 길가의 시장에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에서, 누구네 집 함 들어가는 장난기 어린 소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안에서, 곡식을 거두는 농부의 모습에서, 그물을 올리는 고기잡이 부부의 모습에서 촉촉히 젖어듭니다.
칼 힐티는 그의 <행복론>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궁극적인 말은 향락이라는 의미의 행복이 아니라 극복, 즉 악과 연약함에 대한 끊임없는 승리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부끄러운 생각, 연약함, 불안감, 절망, 갈등, 유혹에 대한 끊임없는 극복이야말로 우리가 올릴 수 있는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승리의 깃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또 ‘평범한 삶, 소박한 생활에서 얻는 기쁨이 참 기쁨’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한 여직원이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고향에 가서 부모님과 같이 일 년 정도 농사를 짓다가 결혼하겠다면서 고향으로 떠났습니다. 그녀가 떠나면서 남긴 한 마디가 내내 가슴에 맴돕니다.
“진정한 위대함이란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생활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말이지만 이 말은 참으로 깊고 넓은 말입니다. 높은 지혜와 성숙의 말이고 아름답고 귀한 체험의 말입니다.
올 가을에 나는 들국화에 반해 버렸습니다.
가을 사진을 찍느라 여러 곳에서 들국화를 만나다 보니 들국화가 얼마나 소박하고 당당한 꽃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들국화는 참으로 소박한 꽃입니다. 외진 길섶, 들판의 논둑, 바위 틈, 계곡의 물가에 자리잡고는 찾으면 보이고 찾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습니다. 줄기나 잎, 꽃이나 향기 어느 것 하나 뽐내거나 교태를 부리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수수한 노란 꽃술, 아기의 손가락같이 가늘고 하얀 꽃잎을 동그랗게 펼치고 언제나 해맑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녀린 들국화이지만 자세히 보면 얼마나 당당한지 모릅니다. 들국화의 꽃잎은 코스모스같이 꽃잎이 똑같지 않습니다. 어떤 것은 꽃잎 사이가 듬성듬성 비어 있고, 꽃잎의 길이도 다릅니다. 그러나 어느 꽃이나 작다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비어 있다고 고개 숙이지 않습니다. 피어난 모습 그대로 하나같이 의젓하고 당당합니다.
이뿐 아니라 들국화는 꽃잎을 떨구지 않습니다. 필 때부터 질 때까지 총총한 모습을 오랫동안 흐트리지 않다가 찬서리가 내리면 그날 밤으로 모든 꽃잎 품어 안고 그대로 시들어 버립니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고 하듯 들국화도 사라질 뿐 떨어지지 않습니다.
가을이 짧아진다고 해도 우리 걱정하지 맙시다. 단풍은 색이 바래고, 낙엽은 힘없이 떨어지겠지만 우리 곁에 들국화가 있는 한 우리의 가을은 언제나 아름다울 것입니다 좋은생각
출처 좋은생각 1999.11월호
들국화
가을이 짧아진다고 해도
우리 걱정하지 맙시다.
단풍은 색이 바래고,
낙엽은 힘없이 떨어지겠지만
우리 곁에 들국화가 있는 한
우리의 가을은 언제나
아름다울 것입니다.
신문에 ‘가을이 짧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몇 해 전부터 여름 더위가 가을까지 이어져 가을이 짧아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문득 옛 가을의 한가로운 정취가 떠올랐습니다. 너무 오래 서 있어 팔 아플 것 같아 걱정되던 황금들판의 허수아비, 해질녘이면 어디서 날아 왔는지 마당을 가득 채우던 고추잠자리, 옆집 감나무에 붙어 ‘삐요시 삐요시’ 울어대던 고추매미. 아침저녁으로 불어 오는 산들바람….
이렇게 아름답던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고 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 지고 뜻 모를 불안도 슬쩍 지나갑니다.
나이가 들수록 가을뿐 아니라 모든 계절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 특히 한 달은 걷잡을 수 없이 빨리 지나갑니다.
“이번만 지나면 다음엔 좀 여유가 있겠지” 하고 몸과 마음의 진액을 모두 쏟고 쓰러지면 다음 달이 곧바로 다가와 ‘빨리 일어나’ 하면서 등을 두드립니다.
한 달의 일이 끝날 때쯤이면 짤 대로 짜내 이제는 바짝 말라 있는 행주 같은 내 마음을 붙들고 ‘아! 빨리 내 마음의 행주에 물을 적셔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여행도 하고, 책도 읽고, 여유있게 생각도 해야 하는데’하면서 나를 재촉합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으로 내 마음을 흥건히 적셔 본 적도 없습니다.
내 마른 마음은 늘 좋은님들이 보내 주는 편지 안에서, 길가의 시장에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에서, 누구네 집 함 들어가는 장난기 어린 소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안에서, 곡식을 거두는 농부의 모습에서, 그물을 올리는 고기잡이 부부의 모습에서 촉촉히 젖어듭니다.
칼 힐티는 그의 <행복론>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궁극적인 말은 향락이라는 의미의 행복이 아니라 극복, 즉 악과 연약함에 대한 끊임없는 승리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부끄러운 생각, 연약함, 불안감, 절망, 갈등, 유혹에 대한 끊임없는 극복이야말로 우리가 올릴 수 있는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승리의 깃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또 ‘평범한 삶, 소박한 생활에서 얻는 기쁨이 참 기쁨’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한 여직원이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고향에 가서 부모님과 같이 일 년 정도 농사를 짓다가 결혼하겠다면서 고향으로 떠났습니다. 그녀가 떠나면서 남긴 한 마디가 내내 가슴에 맴돕니다.
“진정한 위대함이란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생활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짧은 말이지만 이 말은 참으로 깊고 넓은 말입니다. 높은 지혜와 성숙의 말이고 아름답고 귀한 체험의 말입니다.
올 가을에 나는 들국화에 반해 버렸습니다.
가을 사진을 찍느라 여러 곳에서 들국화를 만나다 보니 들국화가 얼마나 소박하고 당당한 꽃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들국화는 참으로 소박한 꽃입니다. 외진 길섶, 들판의 논둑, 바위 틈, 계곡의 물가에 자리잡고는 찾으면 보이고 찾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습니다. 줄기나 잎, 꽃이나 향기 어느 것 하나 뽐내거나 교태를 부리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수수한 노란 꽃술, 아기의 손가락같이 가늘고 하얀 꽃잎을 동그랗게 펼치고 언제나 해맑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녀린 들국화이지만 자세히 보면 얼마나 당당한지 모릅니다. 들국화의 꽃잎은 코스모스같이 꽃잎이 똑같지 않습니다. 어떤 것은 꽃잎 사이가 듬성듬성 비어 있고, 꽃잎의 길이도 다릅니다. 그러나 어느 꽃이나 작다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비어 있다고 고개 숙이지 않습니다. 피어난 모습 그대로 하나같이 의젓하고 당당합니다.
이뿐 아니라 들국화는 꽃잎을 떨구지 않습니다. 필 때부터 질 때까지 총총한 모습을 오랫동안 흐트리지 않다가 찬서리가 내리면 그날 밤으로 모든 꽃잎 품어 안고 그대로 시들어 버립니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고 하듯 들국화도 사라질 뿐 떨어지지 않습니다.
가을이 짧아진다고 해도 우리 걱정하지 맙시다. 단풍은 색이 바래고, 낙엽은 힘없이 떨어지겠지만 우리 곁에 들국화가 있는 한 우리의 가을은 언제나 아름다울 것입니다 좋은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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