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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본 체하지 말라
신명기 22:1~12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치 치하의 독일제국교회에 대항하여 고백교회를 이끈 마틴 니묄러(1892~1984) 목사의 글입니다. 나치가 뉘른베르크법(1935)에 근거하여 눈엣가시 같은 이들을 하나씩 제거해 갈 때 저항하지 않고 침묵한 독일 지성인과 그리스도인을 향한 일갈입니다. 그때 독일 교회는 유대인이 기록한 신약성경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어 구약성경과 바울서신을 배제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영향에서 세상을 구원한 전사이며, 유대인에 의해 순교 당한 북유럽의 순교자라고 했습니다. 교회에는 성경 대신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비치하였습니다. 라이프치히대학의 교수 에른스트 베르크만(1881~1945)은 히틀러를 유대인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로 인식했고 만(卍, Swastika)자를 독일 기독교 상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되지 않는 신학 논리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설득당했는데 그 이유는 나치가 소련 공산주의를 막는 방패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 결과를 낳았고,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입니다. 그렇게 하여 독일 교회와 시민은 나치와 함께 인류 역사에서 최악의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당신들은 길 잃은 이웃의 소나 양을 보거든, 못 본 체하지 말고, 반드시 끌어다가 그 이웃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22:1)
우리는 살면서 못 본 체하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무관하기도 하고, 바쁘기도 해서입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니물러 목사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것을 못 본 체하게 됩니다. 내가 못 본 체하면 남도 못 본 체합니다. 신앙이란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인식하는 능력입니다. 공감 능력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으뜸되는 가르침입니다.
주님,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건에 다 간섭할 수는 없지만 불의와 증오가 보편화되는 일에는 참견하여 질문하고 이견을 제시하겠습니다. 가난과 약한 이들의 신음에 귀를 기울입니다. 2024. 4. 5(금)
#라즐로_파타키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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