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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실현과 약자 보호
신명기 22:13~30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의문이 드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일부다체제입니다. 과연 일부다처제가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물론 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 나쁜 제도를 허용하셨을까요? 노예제도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친히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귀중히 여기시며 끔찍이 사랑하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피부색이 다르거나 아니면 전쟁에서 졌다던가, 빚을 갚지 못해서든가 등의 이유로 다른 사람을 노예로 삼는 행위를 악하게 보셨을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종교의 원리가 세속의 모든 관습보다 우선하던 시대에 그런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제도가 인류 사회에 어떻게 스며들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노예제도를 당연시 하는듯한 성경을 대할 때는 당혹스럽습니다. 전쟁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주님이시며 증오와 전쟁을 배격하는 분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전쟁을 부추기거나 조장하는 듯한 장면을 간혹 봅니다. 이런 때는 당혹해집니다. 그래서 나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보다 문자에 담긴 의미와 정신을 해석해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신학’이란 그런 신학입니다.
제도란 시대와 사회가 처한 환경에 의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여도 인간이 이룬 사회의 질서에서는 그 힘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전부터 내려와 습관처럼 굳어진 일을 쉽게 거부하기란 생각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수용하고 따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현대에 접어들면서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회 현상이 전통의 사고방식에 도전하기 시작합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유래가 없는 두 번의 세계적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고 사람들은 ‘세상에 믿을 것은 없다’는 냉소주의에 사로잡혔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행해서도 그렇지만 사람이 그동안 이루어 온 인류의 도덕과 전통에 대하여서도 부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전통적인 가정 제도가 급격히 변하고 있습니다. 가정이란 한 남자와 한 여성이 사랑으로 결합함으로 시작합니다. ‘결혼’에 대한 사전적인 설명은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부부’란 ‘남편과 아내를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전통의 사고방식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구성체라고 생각했던 가정관이 근래에 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틀렸다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세상은 전에 생각해 본 적 없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음을 주지하자는 말입니다. 사랑이란 인격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근래의 사랑은 인격과 상관없이도 가능합니다. 동물도 사랑하고 물질도 사랑하는 세상이니 놀랄 일도 아닙니다.
성경은 다양한 경우의 왜곡된 부부 관계를 설명하며 악의 뿌리를 뽑으라고 명령합니다(21, 22, 24). 이는 약자로서의 여성을 보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정의의 실현과 약자 보호는 하나입니다.
주님, 반듯한 가정생활이야말로 인류 공동체의 밑절미입니다. 이를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일체의 악에 저항하는 일은 그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정의의 실현을 간구합니다.
2024. 4. 6(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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