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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신명기 28:36~57
“주님께서는, 당신들을 다른 민족에게 넘기실 것이니, 당신들이 받들어 세운 왕과 함께, 당신들도 모르고 당신들 조상도 알지 못하던 민족에게로 끌어 가실 것이며, 당신들은 거기에서 나무와 돌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입니다.”(28:36)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축복(28:1~14) 이후에 이어지는 저주에 대한 모세의 언급은 앞서 말한 축복의 내용을 무색케 할 정도로 간담을 서늘하게 합니다. 동정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먼 나라 민족이 들이닥쳐 능욕할 것이며 이스라엘은 굴욕과 절망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다른 민족들의 조롱과 놀림감이 되고 수고한 대로 거두지 못하며 꿈이 없는 절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의 정체성을 잃고 맙니다. 이민족의 침략으로 먹거리가 떨어졌을 때 그들은 자기 자식을 잡아먹을 것입니다. 아무리 고상한 부인이라도 한 끼 양식을 위해서 남편을 배반하고 자식을 외면할 것입니다. 외부의 적보다도 스스로 정체성을 포기하여 선민의 자존감을 잃어버리는 일이 더 두렵습니다.
우리는 늘 어려운 일 앞에 설 때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문하고 자답하여야 합니다. 서로에게도 그러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떤 민족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방 민족이 우리를 에워싼 이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난날 우리 민족에게 이런 모습이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일제강탈기를 버텨낸 뚝심은 사라지고 일제 부역자들이 역사의 무대 전면에 서서 자신의 과거 역사를 감추기 위하여 ‘반공 이데올로기’를 무기 삼아 동포를 살해하고 역사를 도륙하고 민족에게 자해를 가했습니다. 스스로 고귀함을 지키지 못하고 역사의 이단아가 되었습니다. 민족 자존감을 포기하여 일신일가의 영락을 추구했습니다.
스웨덴의 조작가 프리데릭 라둠(1973~ )은 시대와 사회를 유머러스하게 보는 생동감 있는 예술가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갖춘 지성인입니다. 그의 작품 <Trans-i-re>은 진리와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자의 힘겨운 리얼리티를 보여줍니다. 절망을 극복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자기정체성을 포기하면 금수가 되고 맙니다. 불가능하지만 가능성을 믿는 의지가 곧 믿음입니다.
“이 모든 저주가 당신들에게 내릴 것입니다. 그 저주가 당신들을 따르고 당신들에게 미쳐서 당신들이 망할 것입니다.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당신들에게 명하신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않은 까닭입니다. 이 모든 저주는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손에게 영원토록 표징과 경고가 될 것입니다.”(28:45~46)
섬뜩하게 들리는 모세의 말이 우리를 비켜가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는 좀 더 당당한 믿음을 바라야 합니다.
주님, 저희 삶에 최악이 도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선을 선택할 수 없다면 차선의 기회라도 허락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의지와 용기와 믿음 주시기를 빕니다.
2024. 4. 1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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