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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숨기시는 하나님
신명기 31:14~29
보통 사람들은 외모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이고, 육체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보다 얼굴을 중히 여깁니다. 얼굴에 점과 잡티가 있던 한 지인이 며칠 전 말끔해진 얼굴로 변한 것을 보았습니다.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고 하는데 스스로 대견해하고 당당해진 듯한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수필가 안병욱은 <얼굴>에서 얼굴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저마다 좋은 얼굴의 주인공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나이 마흔 살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미국 대통령 링컨의 말과 잇닿아 있습니다. 태어날 때 운명적으로 주어진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뜯어고치는 이들도 더러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 얼굴이 잘났든 못났든 애착을 갖고 삽니다. 얼굴 외형을 고칠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인상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고매한 인품에서 우러나오는 이미지를 얼굴에 형상화할 수 있습니다. 얼굴을 예술화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얼굴은 인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얼굴이 잘생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나무에 나이테가 생기듯 얼굴에는 인격의 나이테가 생깁니다. 고난과 역경을 버텨낸 흔적, 사랑의 수고를 하다가 실패하면서도 거룩한 가치와 복음 정신을 포기하지 않은 흔적 말입니다.
“이 백성은, 들어가서 살게 될 그 땅의 이방 신들과 더불어 음란한 짓을 할 것이다. 그들은 나를 버리고, 나와 세운 그 언약을 깨뜨릴 것이다. 그날에 내가 그들에게 격렬하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고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길 것이다.”(31:16~17)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죽은 후의 이스라엘 상황을 매우 부정적으로 예견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걸어야 할 길을 이탈하여 온갖 악한 짓을 할 것이라고 내다보십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몸이 주체할 수 없도록 배불리 먹으며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다른 신을 섬기며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언약을 배반할 것입니다(20). 모세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도 주님을 거역하기를 밥 먹듯 한 민족인데 모세 부재가 가져올 상황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고집이 세고 반항심이 거셌습니다(27).
하나님은 이런 때에 얼굴을 숨기십니다(17, 18). 거친 광야를 지나는 고난의 때에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자신의 현존을 자기 백성에게 확실히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백성의 삶이 안정되어 배에 기름이 끼고 교만해져서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길 때 하나님은 얼굴을 숨기십니다. 고난의 때에 백성과 함께하셨던 하나님은 번영의 때에 얼굴을 숨기신다는 사실이 슬프도록 역설적입니다.
가난할 때는 성실하던 사람도 배부르면 게을러집니다. 정직하던 사람도 등 따스우면 딴생각이 듭니다. 약할 때 의롭던 이도 힘이 세지면 불의해지고 기득권을 지키느라 교만해집니다. 얼굴은 인격과 현존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시대를 사는 일은 등대 없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일과 같습니다. 오, 주님…
주님, 풍요의 시대를 만나 배부르고 살이 찌면 처음의 순수함을 잊고 방자해지는 인간성이 슬픕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죄성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발 저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말아 주십시오.
2024. 4. 2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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