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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세계 살기
시편 104:19~35
데카르트(1596~1650) 이후 서양 철학은 하나님의 부재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없이도 모든 설명이 가능해졌습니다. 무신론이 대세인 세상에서 무신론자의 존재는 더 이상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신론은 성립할 수 있으나 무신론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무신론이라는 이념을 세우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리에 물질과 성공과 학문과 권력과 사랑을 올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지만 절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무신론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의 무신론적 삶은 별개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자연과 세상 이치에 하나의 관점만 있지는 않습니다. 정답이 하나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답에 이르는 다양한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사유와 질문을 통하여 우주의 원리에 근접합니다. 과학자들 역시 우주 생성의 원리를 과학적 언어로 설명합니다. 시인은 단아한 시어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화가는 캔버스에 그 세계를 묘사합니다. 농부는 흙 속에서 창조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많이 배웠다고 세상 이치를 꿰뚫는 것도 아니고 배움의 기간이 짧다고 진리에서 배제되지는 않습니다. 박학다식한 자의 논증을 보통 사람이 다 이해하지 못하듯 무식한 촌로의 실천적 지혜를 유식한 자가 다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지식과 지혜는 비례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많은 지식은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 어찌 이리도 많습니까? 이 모든 것을 주님께서 지혜로 만드셨으니, 땅에는 주님이 지으신 것으로 가득합니다. 저 크고 넓은 바다에는, 크고 작은 고기들이 헤아릴 수 없이 우글거립니다.”(104:24~25)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나는 주님을 노래할 것이다. 숨을 거두는 그 때까지 나의 하나님께 노래할 것이다. 내 묵상을 주님이 기꺼이 받아 주시면 좋으련만! 그러면 나는 주님의 품 안에서 즐겁기만 할 것이다.”(104:33~34)
시인은 하나님의 광대한 창조 세계를 인정하며 경탄해 마지않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사람이 홀로 독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아닙니다. 과도한 욕심을 내려놓고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일상을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창조 세계를 살아내는 멋입니다. 시인 김철교 님의 <시를 읽는 아침>을 소개합니다.
당신 마음의 뜨락
몇 평이 제 것입니까
거기에 집을 지으렵니다
주위엔 이슬 초롱한 장미가
알맞춤하게 피어 있는
자그만 탁자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시를 읽는 아침이면 족하겠습니다.
주님,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살아가는 멋스러움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매사에 성실히 임하는 일입니다. 오늘도 그 하루를 이어갈 수 있도록 너그러운 마음과 선한 용기를 주십시오.
2024년 4월 30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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