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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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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명은 고난을 통해서 태어납니다.
어떤 생명이든 고난 없이 태어난 생명은 없습니다.
인간이 출생할 때 모체는 고난을 당합니다. 산실은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여인의 고통과 신음소리로 가득 찹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체를 상하게 하고 태어나는
새 생명도 자기대로 고난을 겪고 울부짖습니다.
동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초목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새싹은 모체를 상하게 하는 아픔입니다.
인간의 삶이 언제나 아름다운 무지개 빛으로 영롱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인생 여정에는 고난이라는 장애물이 언제나 가로놓여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질병으로 쓰러집니다.
신실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부도로 넘어지는 것을 봅니다.
성실하던 자녀가 어느 날 갑자기 문제아로 돌변하는 것도 경험합니다.
아침에 출근했던 남편이 오후에 교통사고로 불구자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행복하기만 했던 가정이 갑자기 파탄을 당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렇게 은혜스럽던 교회가 아무 것도 아닌 일들로 난장판이 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이와 같이 생각지도 않던 환난의 바람이 불어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상식 밖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포자기하여 낙심하고 용기를 잃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인생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난을 이겨낼 힘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난을 당할 때 모든 아픔도 역경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축복입니다.
목사가 되어 목회하면서 너무나 많은 고난의 물결을 맞이하는 성도를 봅니다. 그럴
때마다 목사의 가슴은 천근 만근이 되어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목사가 성전에서 무릎만 꿇는다면 그 또한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것으로 족하지 않기에
목사는 고난 받는 사람의 입장으로 들어가서 함께 울고 아파하게 됩니다.
천 집사님이 구치소에 가시던 날,
목사는 서재 방 온도를 낮추고 추워 떨면서 구치소 천 집사님을 생각했습니다.
박선생님이 암으로 수술받기 위해 병원으로 가던 날, 목사는 자기가 건강한 몸으로
목회하는 것이 미안스러워 하루 종일 굶고 기도굴에서 울었습니다.
이장로님이 사업에 실패하여 그 좋은 생활이 산산 조각날 때,
목사는 울면서 자기를 담보로 하여서라도 이장로님이 재기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정집사님이 아들 대학시험에 떨어져 성전에 엎드려 울 때,
목사는 차라리 내 아들이 떨어지고 정집사님 아들이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울었습니다.
김집사님이 남편에게 매를 맞고 상처투성이 얼굴로 목사관으로 올라와
살 소망이 없다고 흐느낄 때, 행복한 목사 가정의 생활이 미안스러워 함께 울었습니다.
그것이 목사의 마음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나를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생각을 하면서 목사는 성도들의 고난에
동참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교인들은 목사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목사는 오늘도 모세의 심정으로 목양의 걸음을 행보합니다.
그것이 목자의 심정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것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산산이 부서뜨린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했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 주간을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물, 건강, 명예 같은 세상적인 것들을 조금만 잃어도 견딜 수
없을 것처럼 안달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잃어서는 안될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더라도 믿음을 잃으면 안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더라도 소망을 잃으면 안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더라도 사랑을 잃으면 안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더라도 주님을 잃으면 안됩니다.
새는 죽을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졸졸졸 노래하며 흐르는 시냇물 바닥의 자갈을 치우면 더 이상 그 시내에서는
아름다운 물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음질이 좋기로 소문난 바이올린은
해발 1만 2천 피트나 되는 록키 산맥의 고산식물로 만들어집니다.
고난은 내일의 축복을 위한 잠간의 아픔일 뿐입니다.
생명은 아픔을 통해서 태어납니다.
행복도 아픔을 통과하고 난 후 탄생됩니다.
고난은 그러기에 변장된 축복입니다.
고난은 내일을 위한 오늘의 아픔일 뿐입니다.
고난은 축복의 방편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지내는 또 한 주간, 칼럼 가족 여러분의 삶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는 기쁨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생명이든 고난 없이 태어난 생명은 없습니다.
인간이 출생할 때 모체는 고난을 당합니다. 산실은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여인의 고통과 신음소리로 가득 찹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체를 상하게 하고 태어나는
새 생명도 자기대로 고난을 겪고 울부짖습니다.
동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초목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새싹은 모체를 상하게 하는 아픔입니다.
인간의 삶이 언제나 아름다운 무지개 빛으로 영롱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인생 여정에는 고난이라는 장애물이 언제나 가로놓여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질병으로 쓰러집니다.
신실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부도로 넘어지는 것을 봅니다.
성실하던 자녀가 어느 날 갑자기 문제아로 돌변하는 것도 경험합니다.
아침에 출근했던 남편이 오후에 교통사고로 불구자가 되어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행복하기만 했던 가정이 갑자기 파탄을 당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그렇게 은혜스럽던 교회가 아무 것도 아닌 일들로 난장판이 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이와 같이 생각지도 않던 환난의 바람이 불어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상식 밖의 행동을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포자기하여 낙심하고 용기를 잃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아예 인생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난을 이겨낼 힘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고난을 당할 때 모든 아픔도 역경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축복입니다.
목사가 되어 목회하면서 너무나 많은 고난의 물결을 맞이하는 성도를 봅니다. 그럴
때마다 목사의 가슴은 천근 만근이 되어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목사가 성전에서 무릎만 꿇는다면 그 또한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것으로 족하지 않기에
목사는 고난 받는 사람의 입장으로 들어가서 함께 울고 아파하게 됩니다.
천 집사님이 구치소에 가시던 날,
목사는 서재 방 온도를 낮추고 추워 떨면서 구치소 천 집사님을 생각했습니다.
박선생님이 암으로 수술받기 위해 병원으로 가던 날, 목사는 자기가 건강한 몸으로
목회하는 것이 미안스러워 하루 종일 굶고 기도굴에서 울었습니다.
이장로님이 사업에 실패하여 그 좋은 생활이 산산 조각날 때,
목사는 울면서 자기를 담보로 하여서라도 이장로님이 재기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정집사님이 아들 대학시험에 떨어져 성전에 엎드려 울 때,
목사는 차라리 내 아들이 떨어지고 정집사님 아들이 합격했으면 좋겠다고 울었습니다.
김집사님이 남편에게 매를 맞고 상처투성이 얼굴로 목사관으로 올라와
살 소망이 없다고 흐느낄 때, 행복한 목사 가정의 생활이 미안스러워 함께 울었습니다.
그것이 목사의 마음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나를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생각을 하면서 목사는 성도들의 고난에
동참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교인들은 목사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목사는 오늘도 모세의 심정으로 목양의 걸음을 행보합니다.
그것이 목자의 심정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것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산산이 부서뜨린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했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 주간을 시작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물, 건강, 명예 같은 세상적인 것들을 조금만 잃어도 견딜 수
없을 것처럼 안달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잃어서는 안될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을 향한 믿음을 잃어버리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더라도 믿음을 잃으면 안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더라도 소망을 잃으면 안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더라도 사랑을 잃으면 안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잃더라도 주님을 잃으면 안됩니다.
새는 죽을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냅니다.
졸졸졸 노래하며 흐르는 시냇물 바닥의 자갈을 치우면 더 이상 그 시내에서는
아름다운 물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음질이 좋기로 소문난 바이올린은
해발 1만 2천 피트나 되는 록키 산맥의 고산식물로 만들어집니다.
고난은 내일의 축복을 위한 잠간의 아픔일 뿐입니다.
생명은 아픔을 통해서 태어납니다.
행복도 아픔을 통과하고 난 후 탄생됩니다.
고난은 그러기에 변장된 축복입니다.
고난은 내일을 위한 오늘의 아픔일 뿐입니다.
고난은 축복의 방편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지내는 또 한 주간, 칼럼 가족 여러분의 삶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는 기쁨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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