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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게 하나님의 말씀일까? *
성경을 하나님의 말(말씀)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영에 감동 된 성경 저자에게 하나님이 글을 써서 던져 준 게 아니라, 말로 전해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 부를 말이 없어서 저자라고 하지만, 사실은 저자의 생각이 미세 먼지 하나만큼도 가미 되지 않은, 그저 마음에 감동 되는 대로 받아 쓴 글에 불과하다.
말(구어체)과 글(문어체)의 차이점은 여기에 자세히 기술하지 않겠다. 한 가지만 기술하면 구어체 문장은 이해하기 쉬우나, 문어체 문장은 구어체 문장에 비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도 어려운 글을 써서 던져 준 게 아니라, 영에 감동 된 사람에게 쉬운 말을 해준 것으로
확신한다.
그런데, 개역개정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이 쓴 아주 아주 아주 어려운 문장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좀 한 사람에게 성경을 한번 잃어 봤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잃어도 무슨 말인지 몰라 잃기를 포기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잘 아는 하나님이, 쉬운 말이 아니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어려운 글을 써서 던져 주었을까?
불문가지다. 하나님은 청각장애인이 아니라면 누구나 들어서, 백 퍼센트는 아니더라도 이해가 가능한 쉬운 말씀을 해주셨을 것이다.
여기 예를 하나 든다. 독자들께서
어떤 게 하나님 말씀인지 판단해 보기 바란다.
개역개정성경 왕상 9:1-9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가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을 마친 때에 2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여호와께서 3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것을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4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5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 내가 이스라엘을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8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9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따라가서 그를 경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게 하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
문장 부호 하나 없이 194단어 한 문장이다. 숨 넘어가게 길다.
법을 위반해도 벌칙이 따르지 않는 규정을 자율 규정이라고 한다. 우리말이나 글에는 어문 규정이 있다. 물론 이 규정은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벌칙이 따르지 않는다. 이런 걸 자율 규정이라고 하고, 이 규정은 말하고 글 쓰는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중요한 문장 부호로는 "마침표,
물음표, 느낌표, 쉼표, 따옴표"가
있다. 글을 쓸 때 필요한 곳에 이런 부호를 표시해야 해야 하는 건, 이런 부호를 사용하면 글을
읽는 사람이 보다 쉽고 빠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규정은 인간 사회에서 서로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에, 규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편할지 모르지만, 규정을 지키는 사람은 타인을 위해 자기 자신을 절제하고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불편이 따르기
마련이다. 위 개역개정성경의 문장도 마찬가지다. 글을 쓴 사람이 자기 편의만 생각했지, 글을 잃는 사람의 편의는 티끌만큼도 고려하지 않고 쓴 글이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세운 모든 제도에 복종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벧전 2
: 13]" 하나님 말씀 따로 실천 따로를 보여주는 본보기가 개역개정성경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위 왕상 9:1-9
말씀을 이렇게 말로 고쳐 본다.
" 솔로몬이 그가 원하는 대로 성전과 왕궁 공사를 마쳤을 때, 2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나타나셨던 것 같이 다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3 "네가 나에게 기도하는 걸 내가 다 들었다. 네가 지은 이 성전을 내가 거룩하게 구별해, 내 이름을 영원히 거기에 두고, 내 눈과 마음을 거기에 두겠다. 4 그러니 너도 네 아버지 다윗처럼, 내
앞에서 성실하게 내 법도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 5 그러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이스라엘 왕위를 이을 사람이 네 대를 이을 것이다.'라고 한 약속을
너에게도 이루어 주겠다. 6 그러나 만일 너나 네 후손이 나를 떠나 내 법도를 지키지 않고 우상을 섬기면, 7 내가 너희에게 준 이 땅에서 너희를 쫓아내고,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도 외면할 것이다. 7 그렇게 되면 모든 민족이 너희를 조롱하며
비웃게 될 것이다. 8 이 성전이 지금은 명성이 높지만 너희의
불순종으로 인해 폐허가 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놀라며
'주님께서 왜 이 땅과 이 성전을
이렇게 하셨을까?'하고 물으며
이렇게 답할 것이다. 9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 조상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신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런 재앙을
내리셨다."
성경 번역은 히브리어 헬라어만 박식해서는 절대 원뜻에 가까운
번역을 할 수 없다. 그에 못지 않게 우리말과 글에도 박식해야
원뜻에 가장 근사한 번역을 할 수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어 헬라어 한 단어에 우리말이 한두개만 있는 게 아니라 73개가
있는 단어도 있다. 따라서 전후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해, 그 내용과 호응을 이루는 단어를
선택해 번역해야 바른 번역을 할 수 있다.
개역개정성경이 명실상부한 문명국의 성경이 되려면,
"... 이르시되" 같은 우리말 큰 사전에도 없는 조어[造語]인 경건체만 고집할 게 아니라, 먼저 세상 어문법에 따르는 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성경에서, 성서공회에서 만든 조어인 경건체를 굳이 고집하려면, 교인들도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니까, 일상생활 언어도 경건체 말을 하라고 교육해, 그런 말을
해야 명실상부한 언행 일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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