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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뿔달린 또라이가 아니다
오늘은 주일(일요일)인데도, 작업자의 형편에 맞춰 일을 진행해야 하는 우리 사정상, 오늘 설비 업체 사장님과 목수들이 나오셔서 일을 하시고 계신다.
내가 꼭 점심을 대접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가급적 일을 하는 분들의 식사나 커피 음료 등을 직접 챙기려고 신경을 쓰는 편이다.
오전 작업을 마치고, 근처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오리 구이로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설비 업체 사장님이 조심스레 물으신다.
"제가 듣기로는 목사님이시라고 하던데, 목회는 안 하시고 사업을 하시나요?"
'네, 전에는 제법 오랫동안 목회를 했는데, 지금은 신학책을 만드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작업자들이 말없이 부지런히 식사를 하시다가, 또 질문을 던진다.
"우리나라는 교회가 너무 많은 거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하향평준화되었습니다."
내친 김에 내가 몇 마디 덧붙였다.
"1960-70년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농촌의 인구가 서울 같은 대도시 주변으로 몰려들다보니,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 교회가 많아졌습니다. 그때는 마치 그물 만 던지면 고기가 잡히듯, 교회를 세우면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몰려들었죠. 그렇게 교회로 몰려드는 신도들을 소화하기 위해 신학교를 증설하고, 목사 숫자를 늘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 교회와 목사 숫자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아져서 결국 생존 게임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교회가 목사들을 먹여살리기 위한 종교 업소처럼 변질된 측면이 생겨났고, 종교 비즈니스 현상이 심화되었죠. 그런데 이런 현상은 꼭 개신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고,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폐단입니다. 다만 개신교 교회의 경우 주로 도시에 몰려 있다 보니, 종교의 부정적 측면이 더 빨리 체감되는 것이죠.
어쨌거나, 한국은 전체적으로 종교 비즈니스가 성행한 나라이다보니, 종교가 갖고 있는 순기능, 가령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사회의 단결을 촉진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기능은 사라지다시피 하고, 종교가 자기 이해관계를 위해서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역기능만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내가 이런 썰(?)을 풀어대니, 작업자들이 뭔가 약간 신기한 듯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경청을 하신다.
아마도 소위 목사란 사람이 교회에 대해 냉정하게 자아비판을 하니, 평소에 접하지 못한 생소한 장면을 목격해서 그럴 것이다.
아무튼 기왕지사 말 문이 트인 김에,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시고, 나는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친절하게 답변해드렸다.
식사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설비 사장님이 대표로 한 마디 한다.
'목사님, 오늘 너무 좋은 말씀도 많이 듣고, 푸짐한 식사도 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목사가 된 이래 지난 30년 동안,
나는 아주 특수하고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에게도 '예수님 믿으라'는 말을 한 적이 거의 없다.
그 대신, 누군가를 만나면,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그 사람의 삶의 애환을 경청하고, 그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고, 그렇게 수 개월 혹은 수년 씩 관계를 이어가려고 노력했다.
그냥 내 목표는 단순하고 소박하다.
사람들에게 '목사'란 존재가 뿔달린 또라이가 아니라는 것, 을 보여주는 것,
나아가 꽤 괜찮은 이웃이고 시민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오늘도 그렇고,
앞으로도 나는 늘 그렇게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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