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가짜뉴스
사도행전 4:13~31
1923년 9월 1일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 정부는 조선인에 대한 악의적인 가짜 정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거나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습니다. 그 결과 조선인은 일본의 군경과 민간인에 의해 학살당하였습니다. 일본이 근대사회로 진입하며 맞는 최대의 재난에서 면피용 희생양으로 애꿎은 조선인을 지목하므로 잔인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그때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도 우리는 가짜가 진짜의 옷을 입고 대중을 설득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누구라도 속아 넘어갑니다. 가짜뉴스가 주는 폐해는 큽니다. 가짜 뉴스란 경제·정치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보도의 형식으로 유포된 거짓 정보입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발표한 2024 언론자유지수에서 우리나라는 64.87점을 받아 180개 나라에서 62위를 기록하였습니다(한겨레, 2024. 5. 3). 2022년의 43위에서 무려 19단계나 떨어졌습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보도자료를 통하여 정부는 언론 자유를 보호하는 데 소극적이고 때로 언론인의 역할을 악화시키는가 하면 허위 정보 캠페인을 통해 언론을 도구화하는 추세라고 밝혔습니다. 옥스퍼드사전은 2016년의 단어로 ‘탈진실’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그 후로 계속 객관적 사실보다는 개인의 감정이나 신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진실이냐, 아니냐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계층의 경제·정치적 이익입니다. 진실이 최우선의 가치 척도가 아니라는 시대정신 앞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우선시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멈칫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본래 배운 것이 없는 보잘것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그들은 그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다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들 곁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아무 트집도 잡을 수 없었다.”(4:13~14)
초대교회 현상을 본 성전의 기득권 종교인들도 가짜뉴스 유혹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고, 우리도 이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4:16)고 말하는 것을 보아 그들은 최소한의 양심은 유지하였던 것 같습니다.
주님, 한때 가슴 뜨거웠던 청년도 나이가 들면서 노욕에 사로잡힙니다. 순전함보다 위선에 길들여진 저를 보는 듯하여 민망하고 속상합니다. 진실에 입각한 새질서를 따를 용기를 주십시오.
2024년 5.월 8일 수요일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