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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성
사도행전 4:32~5:11
정치제도에서 독재와 군주제가 나쁜 이유는 타율적이고 강제적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권력을 틀어쥔 자에 의한 강요된 복종은 인간성을 훼손하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자존감은 자발성을 기초로 합니다.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4:32)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4:34~35)
처음교회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유무상통하였습니다. 성령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알아서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처음교회의 이런 아름다움은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의 모범입니다. 헌신이란 자발적이고 자율적이어야 합니다. 강요된 헌신은 교회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교회를 타락에 이르게 합니다. 이런 가치와 질서를 따라 살려는 자발적 운동이 역사에서 종종 등장하였습니다. 4세기 안토니우스(295~356) 같은 존경받는 교회 지도자는 가만히만 있어도 존경과 영예를 받을텐데도 스스로 사막 은수자가 되어 금욕과 고행의 길을 걸으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였습니다. 교회를 비판하였다는 이유로 옥스퍼드대학에서 추방된 존 위클리프(1320~1384)의 신행을 따르는 롤라드(Rollard)들이 있었습니다. 롤라드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자에 대한 경멸적 호칭이었고 후에는 이단을 지칭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위클리프는 라틴어만으로 성경을 읽는 것을 반대하여 영어 성경을 번역하였고 당시 교회의 부패와 왜곡된 신학을 비판하였습니다. 보헤미아의 얀 후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많은 농민과 교회의 부패와 신학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롤라드 대열에 자원하였습니다. 하지만 교수형과 화형의 박해가 다가오자 웨일즈와 스코틀랜드로 피했고 옥스퍼드대학 세인트 에드먼드 칼리지의 학장 피터 페인은 탈출하여 후스파의 지도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훗날 루터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우리 모두가 후스파다”고 말했습니다. 종교개혁 전통이 롤라드에 이어있음에 대한 확인인 셈입니다.
주님, 강제, 타율, 강요는 교회의 언어가 아닙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주님의 가르침을 따랐고 이웃의 필요를 채웠습니다. 그 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오늘의 교회를 기도합니다.
2024년 5월 9일 목요일
그림설명:
17세기 작가 미상의 <종교개혁 지도자들>에서 위클리프가 제일 앞에 성경을 들고 있다. 왼쪽 위에서부터 하인리히 불링거, 지롤라모 잔키, 존 녹스, 헐드리히 츠빙글리, 피에트로 마르티르 베르미글리, 마틴 부세르, 히에로니무스 폰 프라그, 윌리엄 퍼킨스, 얀 후스, 필립 멜란히톤, 마틴 루터, 장 칼빈, 테오도르 베자, 존 위클리프이다. 앞에는 추기경과 악마, 교황, 신부가 촛대의 불을 끄려고 하지만 허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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