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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나 지금이나
사도행전 7:17~36
스데반은 모세의 생애를 40년 단위로 셋으로 구분하여 설교합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의 이집트 상황은 무법천지였습니다. 히브리인의 아기라는 이유 하나로 악어가 득실거리는 강에 던져져야 했습니다. 법은 있었으나 약자를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의 도구가 된 법이 사회적 약자를 위협하고 고통을 가중시켰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고 하였지만 약자를 보호하지도 않고 돕지 않는 법은 그 테두리를 넘은 괴물입니다. 제도와 법을 들먹이며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일은 오늘 이 땅에서도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모세가 사십세가 되었을 때 히브리인의 상황은 40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 자유를 유린당한 채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모세가 정의로운 마음과 애국심에 이끌려 애굽인을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잘한 일은 아니지만 그 진의를 동족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했습니다. 국정에 개입하여 콩 놔라 배 놔라 하는 대통령 부인의 행태를 촬영하여 세상에 알린 최재영 목사의 진정성조차 비난받는 현실이 모세 시대와 다르지 않습니다. 최 목사에게 스토커, 건조물침입, 위계의 공무방해죄를 묻는 현실이 처참합니다. 최 목사의 행위를 비난하던 이들은 수사기관의 도 넘은 수사에 대하여서는 침묵합니다. 그 꼴이 가관입니다. 모세는 동족이 서로 다투는 것을 보고 화해를 도모하다가 배척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결과치고는 너무 슬픕니다.
결국 모세는 광야로 도망하여 목동으로 40년을 살다가 시내산 광야의 떨기나무 불길 속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습니다. 그 부름에 순명하여 이집트로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세웠느냐?”(7:350 시큰둥하였습니다. 민족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독생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였으니 이상할 일도 아닙니다. 선교 역사상 가장 놀라운 부흥을 이룬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순수한 가르침보다 세속화되고 권력화된 반복음이 번성하는 일은 차라리 자연스럽습니다.
주님,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현실 앞에서 자괴감이 듭니다. 특히 교회가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반복음적 사고가 편만하고 있어 속상합니다. 저의 불찰이고 무능입니다. 용서를 구합니다.
2024년 5월 14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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