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변혁과 확장
사도행전 11:19~30
복음에는 변혁과 확장성이 있습니다. 변혁에 이르지 못하는 그리스도교는 건강한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의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혁시킵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 존재하는 교회는 변혁보다 수비에 경도된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중세 천년의 교회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 500년이 넘는 개신교도 그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교회와 신학에서 ‘보수주의’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는 것을 보면 복음에 내포된 변혁성이 얼마나 심하게 뒤틀려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은 확장성을 갖습니다. 진정한 복음은 폐쇄적이지 않습니다. 개방적이어서 누구와도 어울려 상대를 복음 가치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이 세속 문화를 만나면 부드럽게 공격하여 세속 문화를 정복하고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교회 스스로 확장성을 포기하고 자기 파괴적이거나 폐쇄적으로 자기 안주에 머무르려고 하는 경향성을 가지므로 복음에 담긴 영원성과 우주적 가치를 스스로 폄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기독교는 무능하고 무력하고 무책임합니다. 당당하게 세속 문화를 맞서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의 변혁성과 확장성, 오늘의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처음교회는 유대인의 핍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혁과 확장을 체험한 첫 번째 교회입니다.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찬송처럼 모진 풍파를 겪으며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을 경험하였습니다. 스데반에게 가해진 핍박을 본 처음교회 교인들은 흩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도피한 곳에서조차 주님의 도를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유대인에게만 전하다가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안디옥에 이르러서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주 예수를 전하였습니다(11:19~20).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니, 수많은 사람이 믿고 주님께로 돌아왔다”(11:21)
하나님의 말씀이 비로소 유대인의 벽을 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별로 신기해 보이지 않으나 당시로서는 아주 큰 신학적 문제였습니다. 처음교회는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바나바를 안디옥에 보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확인하고자 함입니다.
주님, 변혁과 확장성을 상실하고 있는 교회를 보며 마음이 아픕니다. 복음 전파에 몰두할 수있는 기회 주시기를 빕니다.
2024. 5. 26 주일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