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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와 헤르메스
사도행전 14:1~18
요즘 나는 북향(北鄕) 대학생 독서 모임에서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서양 문화의 한 축이기 때문에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대체로 어린 시절에 제대로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가 많고, 독서량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땅에 와서 기초 교양과 인문학 지식이 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을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되고 하나님 나라의 당당한 시민이 되도록 미미하나마 돕기 위하여 독서토론을 하고, 성경을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 세계관 공부 모임을 한 달에 두 번씩 갖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는 동양성이 무시되지는 않지만 대체로 서양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서양성은 그리스·로마 신화와 성경에 터하여 세워진 문화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입니다. 이 두 문화사조는 어떤 사이클을 이루며 교차하기도 하고 경쟁하기도 합니다. 이를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철학에서 배울 수 있어 다행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일단 재미있습니다. 신들의 세계에 투영된 욕망과 애증과 갈등은 사실 인간의 문제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신들의 세계를 빗대어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낸 이야기꾼들입니다. 그들은 인간사의 모든 문제를 신화와 종교로 풀어내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그 중심은 힘에 대한 숭배입니다. 그런데 주전 6~7세기경에 이런 흐름에 문제를 제기한 이들이 생겼습니다. 인간의 문제를 다른 식으로 풀 수는 없을까? 그런 흐름이 바로 철학입니다. 철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밀레토스의 탈레스(BC. 626.623~BC. 548/545)가 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의 근본 문제를 종교나 신화에 의존하지 말고 이성으로 풀어보려는 첫 시도였던 셈입니다.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Arche)을 저마다의 논리로 규명하였습니다.
“무리가 바울이 행한 일을 보고서, 루가오니아 말로 ‘신들이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 하고 소리 질렀다.”(14:11)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기적을 베풀 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를 제우스로, 바울을 헤르메스로 불렀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신화와 종교의 미몽에 빠져있었습니다.
주님, 복음은 종교 이상이며, 철학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미신처럼 그리스도를 따릅니다. 철학처럼 신앙을 합니다. 미몽에서 깨어나는 은혜를 주십시오.
2024. 5. 3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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