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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없는 세상
사도행전 15:1~11
인류의 불행은 차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신석기에서 청동기에 이르는 무렵, 인류가 한곳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정착이 실현되고 농업혁명을 통한 생산 경제의 흐름 속에 인류의 불행인 계급이 발생하였다고 짐작합니다.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게다가 이웃 부족과 힘의 각축이 노골화되면서 신분제도는 시작되었습니다. 한마디로 힘이 숭배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남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백인과 유색인종, 귀족과 노예, 양반과 상민, 장애인과 비장애인, 본토인과 이방인,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 등, 인류는 사람을 제대로 보지 않는 편견과 비이성의 결과를 보편적 질서로 수용하고 상식이 된 시대를 이제껏 살아왔습니다. 도리어 언젠가부터 힘을 가진 이들은 기존 질서와 제도의 불합리함에 늘 손해 보며 슬픈 눈망울을 가진 약자들을 사납고 야만적이며 폭력적이고 파괴적 선동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런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세상에 존재하는 종교는 의당 차별과 억압의 부당함을 꾸짖고 편견 없이 모든 사람을 공손히 대하고 은총의 대상자로 존중하며 구원의 가능성을 가진 자로 대접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종교 역시 권력화되면서 차별의 선봉에 서는 일이 일상사가 되었습니다. 자기 믿음의 절대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다른 믿음을 적대시하고 심지어 성전(聖戰)이라는 미명하에 증오범죄의 선봉에 서기도 하였습니다.
처음교회가 직면한 문제도 인간에 대한 차별 문제였습니다. 유대적 전통에 충실한 이들이 안디옥교회에 와서 모세의 가르침에 따라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므로 교회 안에서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문제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 의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차별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셔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메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15:9~10)
주님, 종교가 차별받는 이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차별을 철폐하기는커녕 차별을 부채질하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차별 없는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024. 6..2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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