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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서양성의 파도를 타다
사도행전 15:36~16:15
바울과 바나바는 첫 번째 전도 여행을 후 다녀온 곳의 형편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두 번째 전도 여행을 계획합니다. 그런데 의외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마가의 동행 여부를 놓고 바울과 바나바의 생각이 달랐습니다(15:37~38). 결국 두 사람은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아쉬운 대목입니다. 마가의 동행 여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좀 더 유연하고 포용적이었을 수는 없었을까요? 다만 여기서 배울 점도 있습니다. 같은 목적을 가지면서도 그에 이르는 방법은 각자의 가치관과 처한 형편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표가 같으면 길도 하나뿐이라는 발상은 효율적일 수 있겠으나 획일성에 갇힐 위험도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의 동행이라는 지엽적인 문제로 분열하여 각자의 길을 가게 되어 아쉽기는 합니다만 억지와 강요로 가는 한 길이 무조건 옳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바나바의 행적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아 의아하고 궁금합니다. 모름지기 그의 행적은 복음의 확장과 처음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일에 귀하게 쓰여졌으리라 생각합니다.
바울의 전도 여행은 목표 중심이기보다 목적 중심이었습니다. 목적과 목표는 같지 않습니다. 목적은 본질입니다. 처음에는 첫 번째 전도 여행 다녔던 도시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행로는 그 범위를 벗어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그리고 아시아의 끝인 무시아에 이렀습니다. 이때 성령님은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는 일을 막았고(6), 북쪽의 비두니아로 가려고 하였을 때는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7). 그러던 중에 바울은 밤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16:9)
이 환상을 하나님의 인도라고 확신한 바울(16:10)은 행로를 마게도니아로 돌렸습니다. 그는 목표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서양성을 갖게 된 시점입니다. 만일 이때 바울이 자기 고집대로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는 일을 계속하였다면 그리스도교가 오늘처럼 세계화가 되었을까요? 복음이 서양성의 파도를 탔다는 점에서 바울의 확신과 선택의 의미를 가늠합니다.
주님, 동양성과 서양성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쉽지 않고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복음의 확장이라는 면에서 서양성을 택한 일은 잘한 일입니다. 열린 사고와 유연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2024. 6. 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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