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길
사도행전 18:12~23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가 각각 멸망한 후에 유대인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주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 헬라를 건설하면서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는 더욱 가속화되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곳곳에 건설하여 헬라 문화의 세계화를 추진하였고 교역과 산업의 발달, 이민 장려, 그리고 헬라어가 공용어가 되면서 시리아·이집트·메소포타미아·아시아·그리스·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에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로마와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헬라 문화에 개방적이고 경제 상황도 높아 본토의 유대인들보다 나은 삶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로마의 확장 과정에서 시민권을 획득하는 유대인들도 많았습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할 무렵에 코린토스에는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코린토스는 고대부터 운하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카이사르(주전 100~주전 44)는 운하 건설 계획을 세웠다가 착수하기 전에 죽었습니다. 클라우디우스(주전 10~주후 54)는 반유대주의 정책을 표방하여(45) 로마의 유대인 약 2만 5천 명을 코린토스로 강제 이주시켜 운하 건설에 동원하였고 다음 황제 네로(37~68) 때에도 운하 건설은 진행되었으나 그가 죽은 후에는 중단되었습니다. 코린토스운하는 1893년에서야 비로소 완공되어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바닷길을 300 Km 단축하였습니다. 운하 건설이 중단된 다음에도 유대인들은 코린토스에 남았습니다. 그들은 유대 전통을 중히 여기며 회당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갈리오가 아가야 주 총독으로 있을 때에, 유대 사람이 한패가 되어 바울에게 달려들어, 그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이 사람은 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18:12~13)
바울은 코린토스에서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바울의 두 번째 전도 여행의 종착지이기도 한 코린토스는 복음 전도사역의 기쁨과 함께 그 한계도 보여줍니다. 전도자는 없는 길도 만드는 사람입니다. 전도자에게는 막힌 길도 길입니다.
주님, 복음의 세계화에 헬라 문화와 로마의 질서가 우군 역할을 하였음을 배웁니다. 세속 문화와 정치를 백안시할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고 그 너머의 가치에 이르는 지혜를 주십시오.
2024. 6. 9 주일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