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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시골에 아담한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이 더러있다. 그 중에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환대받고 잘 어울리는 이들도 있지만 마을 사람들과 심한 갈등으로 그 곳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그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더러는 마을 사람들의 심성이 거칠고 폭력적이며 파렴치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는다. 전국시대, 제나라에 맹상군이 있었다. 그는 소위 인재를 좋아해서 그의 식객이 3천여명에 이르렀다. 당시 제나라는 당시의 석학들을 극진히 예우하여 그들이 마음껏 연구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직하학궁>을 두어 후원했다. 맹자, 추연, 순자, 순우곤 등 당대 최고의 현인들은 직하학궁으로 모이고 반면 맹상군에게는 인품이나 학식과는 관계없는 도둑놈, 사기꾼, 왈패 등의 사람들도 모여들었던 모양이다. 그 중에는 개흉내 내서 남의 집을 드나드는 도둑놈, 닭울음 소리를 기막히게 내는 놈도 있어 맹상군이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鷄鳴狗盜(계명구도)의 고사도 있다.
맹상군이 조나라를 지날 때였다. 조나라 사람들이 맹상군의 체구가 왜소함을 조롱하는 듯 하자 맹상군의 식객들이 그곳 사람 수백명을 죽여 현 하나를 없애 버린 뒤에 떠났다고 했다. 맹상군과 그의 식객들을 그런 짓을 할 만큼 지극히 거칠고 사나운 사람들이었다.
훗날 사마천은 맹상군의 땅이라 하는 설땅에 들렀는데 그곳 풍속은 마을이 난폭하고 사나운 젊은이가 아주 많아 맹자의 고향인 추나라나 공자의 고향인 노나라의 풍속과는 사뭇 달랐다고 했다. 그 까닭은 맹상군이 천하의 협객들과 간사한 자들을 불러들여 설 땅으로 들어온 자가 6만여 家(가)나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말인데 귀촌하여 살려면 먼저 그 마을 사람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올곧은 선비와 같은 이들의 기풍이 있는 곳인지 아니면 친일파, 졸부, 건달, 사기꾼의 기운이 남아있는 곳인지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 伯夷(백이)는 흉포한 이들이 사는 곳에는 머물지 않았다고 했다. 孔子(공자)는 亂邦不居(난방불거/ 혼란한 나라, 난폭한 나라에는 살지 않는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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