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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선생의 아침 풍경
-오지랖-
댕댕이 곰곰이와 걷는 아침 산책길에, 지렁이 한 마리 유난히 따가운 아침햇살에 버둥거린다. 나에겐 한 두 발자국의 폭인 길이지만, 저 놈은 온힘을 다햐 걸어도 반나절길일지 모른다.
중간에 갇혔으니 갈길이 아직 멀다는 뜻! 하지만 기는 쇄하고, 아침 햇살치곤 너무 뜨겁다.
아마 갈까 말까, 돌아설까 계속 갈까 수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가고 싶어도 먼 길이고, 포기 하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게다가 말라가는 몸뚱이를 느끼며, 살아내야 한다는 욕망에 더욱 몸부림쳤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가자니 힘이 다했다. 누가 봐도 지렁이 한 마리는 제자리에서 버둥거리기만 하고 있다.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순간 내가 살아온 길, 내가 살아갈 길이 뿌였게 겹쳐 보였다. 지난 3년의 시간이 지렁이를 통해서 고스란히 투영 되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엔 말라붙은 지렁이들의 사체가 즐비하다. 이 친구만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야겠다는 용기를 낸 것이 아님을 알았다. 풀 하나를 뽑았다. 버둥거리는 지렁이의 뱃속에 뾰족한 풀끝을 깊게 찔러 넣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풀끝을 잡고 지렁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거나, 출발점인지 모를곳에 가만히 내려 놓았다.
풀과 하나 된 지렁이가 진저리 치듯 버둥 된다. 숨도 고르지도 못한 채 그렇게 깊은 물 속으로 자맥질 하는 해녀처럼,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뒤돌아 보는 것도 사치라는 듯 풀 속으로 잠수한다.
난 곰곰이의 엉덩이를 몇 번 두드리고, 마치 나를 칭찬하듯 가볍게 웃으며 소리 없이 사라진 지렁이를 바라 보았다. 이것도 오지랖이라면, 이것도 사랑이라면, 난 오늘 하루 잘 살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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