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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도행전 27:1~20
바울이 예루살렘 유대인의 고소로 가이사랴에 구금된 지 이 년이 지난 후에 로마 압송이 결정되었습니다. 무죄한 죄수 바울은 마침내 로마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자유인으로서가 아니라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를 향하는 바울의 모습이 애잔합니다만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 확장의 역리를 배웁니다. 진리는 때로 순리의 길을 벗어나 역리를 택할 때 더 강해지는 법입니다. 찬송가 373장 ‘고요한 바다로’(아우구스투스 M. 토플라디 사, 아론 채핀 곡)는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라고 노래합니다. 노도 광풍을 이용하여 더 빨리 항해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울이 선택한 역리의 길에 동행하는 이들을 21장 이후 다시 ‘우리’(27:1,2,4,7,18)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성원이 사도행전 21장의 ‘우리’와는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정체성과 지향성은 처음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 데살로니가 출신 아리스다고는 에베소에서 바울 대신 곤욕을 치렀고(19:29) 핍박도 받았습니다(골 4:10. 몬 1:24). 우리에 속하는 일이 그런 일입니다. 우리는 기꺼이 고난도 함께 합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는 이들이야말로 ‘우리’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이익과 성공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힘에 의하여 동원되지 않은 자발적 공동체입니다. 누구의 강요나 협박에 의하여 억지로 끌려온 이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땅의 질서에 편승하지 않고 시대정신에 함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긍휼의 원리를 따르며 정의와 평화의 나라를 믿습니다.
“이튿날 우리는 시돈에 배를 대었다. 율리오는 바울에게 친절을 베풀어, 친구들에게로 가서 보살핌을 받는 것을 허락하였다.”(27:3)
바울의 압송을 책임진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을 우호적으로 대하였습니다. 바울에게 무죄를 선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으나 배가 머무는 곳에서 바울이 지인들을 만나 교제하는 일을 허락하고 자유를 주었습니다. 세상이 어둡고 냉혹하여도 어디선가 사람을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독주와 경쟁이 익숙한 세상에서 각자에게 품부된 가치를 보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주님, 오늘 저의 따듯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위대한 일을 할 수는 없어도 작은 미소와 정겨운 말 한마디로 이웃을 선대하겠습니다.
2024. 6. 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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