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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예레미야 37:11~21
“예레미야는 집안의 상속재산을 물려받을 일이 있어서, 예루살렘을 떠나 베냐민 땅으로 가려고 길을 떠났다.”(37:12)
예레미야는 자기 고향 베냐민 땅 아나돗(1:1)에 밭을 산 적이 있습니다(32:8~15).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른지 10년 되던 해(32:1), 그때 예레미야는 근위대의 뜰에 갇혀 있을 때입니다. 당시 상황은 부동산을 매매할 정상의 경제 질서가 유지되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의 날카로운 발톱 아래에서 하루라도 더 연명하려면 토지로 대표되는 부동산이 아니라 현금 등 동산의 가치가 절실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시점에 예레미야는 한가하게 고향에 밭을 구입하였습니다. 예레미야의 부동산 구입은 단순한 경제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담은 상징 행위였습니다(32:15). 그 땅과 그 땅에 사는 사람에게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베냐민을 향하는 시점이 의아합니다. “바빌로니아 군대가 바로의 군대 때문에”(11) 철수한 때입니다. 주전 587~586년 어간으로 보입니다. 유다의 멸망이 코앞에 닥친 즈음입니다. 예언자가 땅을 산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입니다. 시세 차익을 노리는 부동산 투기꾼도 아닐텐데 말입니다. 게다가 누가 그 밭을 샀는지도 궁금합니다. 어쨌든 예레미야는 분깃을 받으려고 베냐민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베냐민에 이른 예레미야를 문지기가 붙잡아 지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문지기는 예레미야를 하나님의 예언자로 인정하지 않고 반민족주의자이자 친바빌로니아 인사로 판단하였습니다. 이런 일은 역사에 흔한 일입니다. 진실은 진실하지 않은 이의 눈을 멀게 합니다. 여러 날 예레미야가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불러들였습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이 없습니까?”(37:17)
시드기야 왕이 듣고 싶은 말은 ‘구원’과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심판’과 ‘멸망’이었습니다(17). 만일 왕이 듣고 싶은 말을 예레미야가 하였다면 근위대 뜰에 갇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언자는 진실하여야 하는 법, 예언자는 자기 말이 가져올 후과를 알면서도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로써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지금 저희는 귓맛 좋은 단소리보다 가슴을 찌르고 골수를 치는 쓴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 땅 설교자의 혀에 주님의 말씀, 쓴소리를 담아주십시오.
2024. 7. 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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