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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민족주의자
예레미야 40:1~16
“그대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이곳에 이런 재앙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 그대로 하셨소. 주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하신 것이오. 그대들이 주님께 죄를 짓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들이 이런 재앙을 당한 것이오.”(40:2~3)
바빌로니아의 근위대장 느부사라단의 말에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습니다. 힘의 각축장에서 한편에 속한 그가 ‘그 모든 일을 주관하는 하나님이 유다를 멸망에 이르게 하였고, 그 이유는 유다의 죄 때문’이라는 역사 인식이 놀랍습니다.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담긴 함의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둔감하였으나 이방인이 하나님의 역사 운행을 감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합니다. 진리의 수용은 혈통이나 민족성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포로가 되어 수갑을 찬 채 바빌로니아로 끌려가는 예레미야에게 느부사라단이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유다에 남아 자유를 누리며 마음껏 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머뭇거리자 재차 독촉하였습니다. 그리고 양식과 선물을 주어서 돌려보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빌로니아에 의하여 유다 총독이 된 그달리야가 있는 미스바로 갔습니다. 기존 질서는 무너졌으나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질서가 세워졌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흩어진 유대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달리야가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바빌로니아 사람 섬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여러분은 이 땅에 살면서 바빌로니아 왕을 섬기시오. 그러면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오.”(40:9)
그 말대로 백성은 여름 과일과 포도주를 거두었습니다. 이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이미 포함된 바 있습니다(29:5). 포로로 끌려간 백성이든, 아니면 유다 땅에 남은 백성이든 삶은 이어져야 합니다. 그달리야의 조부 사반은 요시야 왕 때 성전에서 발견된 율법을 왕 앞에서 읽었고(대하 34:18), 아버지 아히감은 예레미야를 구명하였습니다(26:24). 다윗 왕가가 이끈 유다 멸망의 상황에서 그달리야는 새로운 희망을 싹틔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질서를 용납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윗 가문에 속한 이스마엘입니다.
주님, 정통과 적통의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논리가 권력
화될 때 세상은 어지럽습니다. 그달라야와 이스마엘 중에 누가 진정한 애국자인지 분별할 지혜가 오늘도 필요합니다.
2024. 7. 2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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