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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석하다
예레미야 41:1~18
우리 말에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만사가 가늠할 수 없이 불확실하다는 뜻입니다. 상식과 보평성에 터하여 앞일을 예측할 수는 있으나 거기에는 한계가 있고 변수가 있어서 언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알 수 없습니다.
멸망 당한 유다가 바로 그렇습니다. 바빌로니아는 유다 총독으로 그달리야를 임명하였습니다. 남은 백성을 다독여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며 국가 패망 이후를 살아가기에 적합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모아도 시원치 않을 형국에서 의미 없는 명분에 치우쳐 정치적 시비를 거는 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왕족 출신으로 유다의 대신이기도 한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유다 멸망의 책임이 있는 폐족 출신으로서 자숙하거나 반성하기는커녕 새 리더십에 시샘하고 불평하며 또 다른 정치적 득실을 따지는 등 불량기가 역력하였습니다. 이를 감지한 군지휘관들이 총독에게 주의를 주었고, 요하난은 이스마엘 제거를 자청하였으나 그달리야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40:16). 그달리야는 성정이 착한 사람인 모양입니다. 자신이 착하니까 정적도 착한 줄 알았습니다. 악마를 물리치기 위하여 악마가 되지 말아야 하지만 자기의 착한 성정을 일반화하는 일이 무조건 잘하는 일은 아닙니다.
결국 그달리야는 이스마엘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친바빌로니아파와 반바빌로니아파 사이의 갈등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악인이 의인을 살해한 것입니다. 그달리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예언자 예레미야와 일치된 생각을 갖고 남은 백성을 보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반성도 없고, 참회도 없었으며 암몬의 사주를 받아 그달리야를 살해하였습니다.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도 백성이지만 남아 있는 이들로서도 딱한 일입니다.
이런 일은 인류 역사에 종종 있습니다. 반성 없는 악인에 의하여 의인이 지도력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일은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백성은 고난에 직면하여 희망 없는 삶을 이어갈 것이고 악인은 득의한 미소를 지으며 ‘꿩 잡는 게 매’ 식의 전도된 가치를 보편화시킵니다. 역사는 후퇴하고 진실은 숨습니다.
주님,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민주주의 질서가 정착된 곳에서는 시민이 깨어있어야 좋은 지도자가 등장합니다. 악인에게 희생된 의로운 지도자들이 애석합니다.
2024. 7. 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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