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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과 조선인
예레미야 42:15~22
1945년 해방되자 만주에 살던 동포들이 비로소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나라 잃은 슬픔을 걷어내고 광복의 기쁨을 새로운 조국 건설의 디딤돌로 삼을 시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동포들의 귀환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도처에 마적들이 도사리고 있었고, 중국인의 눈총도 예상 밖으로 싸늘했습니다. 일제의 질서가 무너지고 새질서가 등장하기 전이니 의외의 사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개인이나 한 가족이 독자적으로 조국행을 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동포들은 마을이나 교회를 중심으로 무리 지어 고향 땅을 향했습니다. 워낙 긴 여정이고 길은 험하고 낯설었으므로 안내자를 구하여야 했는데 때로는 이들이 엉뚱한 곳으로 이끌어 동포들을 골탕 먹이고 곤경에 처하게도 하였습니다. 그 먼 길을 그렇게 몇 달씩 걸어서 압록강을 건넜을 때 국경 마을 의주 사람들은 강가에 몰려와 보리밥이나마 정성껏 지어 허기진 동포들을 대접하였습니다.
하지만 해방을 맞았으면서도 고향에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실과 근면으로 만주에 삶의 터를 이룬 이들은 굳이 돌아올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지금처럼 국경 개념이 선명하지가 않은 시절이라 압록강과 두만강 상류에 사는 이들은 여기나 거기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돌아올 수 없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향에 아무런 기반도 없는 이들은 어디서나 찬밥 신세였으니 굳이 고생길에 나설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중국에 들어서는 새질서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우쩌뚱(또는 저우언라이)은 ‘오성홍기의 붉은색에는 조선 혁명가들의 피도 함께 녹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중국에 살고 있는 동포가 바로 그들의 후예입니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 끌려간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를 구성하였습니다. 훗날 돌아온 자들은 남은 자들을 멸시하고 무시하였으나 이들의 귀환은 그 땅에 남아있는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남은 자가 받는 멸시와 모욕과 고통은 훗날 ‘거룩한 씨’를 배태하는 토양이 되었습니다(사 6:13). 그런데 지금 남아있는 유대인들은 주님의 뜻을 져버리고 이집트 피난을 결심하고 있습니다.
주님, 지금 중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전에 없던 문화사대주의 아래 놓여있습니다. 그동안 존중받던 우리 글과 문자와 문화가 외면 당하고 있습니다. 민족혼이 지켜질 수 있기를 빕니다.
2024. 8. 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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