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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시편 105:12~23
“그 때에 너희의 수효가 극히 적었고, 그 땅에서 나그네로 있었으며, 이 민족에게서 저 민족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나라 백성에게로, 떠돌아다녔다.”(105:12~13) “
그 때에 이스라엘이 이집트로 내려갔고, 야곱은 함의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다.”(105:23)
대중가요에서도 노래하듯이 인생은 나그네 길입니다. 나그네란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정처 없는 떠돌이였습니다(12, 13). 애초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히 11:8) 순종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나그네’로 호칭하고, 당사자인 이스라엘도 자기 정체성이 떠돌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어색하고 낯섭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정주를 꿈꿉니다. 방랑을 그치고 안정을 찾고 싶어합니다. 가난과 멸시를 극복하고 부유와 영광을 추구합니다. 부당한 방법으로라도 지위를 탐하고, 남을 속여서라도 물질을 차지하려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인생 이치가 그렇건만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을 나그네로 부르는 걸까요? 이스라엘은 왜 자신을 떠돌이로 자처할까요?
히브리서에 의하면 나그네란 고향을 찾는 사람이며 하늘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히 11:13~16).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히 11:16) 성경에서 말하는 떠돌이란 땅의 삶을 궁극으로 보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땅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며,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떠돌이, 곧 하늘 고향을 동경하는 사람은 세상의 인력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으며, 세속 질서에 함몰되지 않고 이생의 자랑에 매이지 않을 수 있는 자유인이 됩니다. 떠돌이란 이 땅 너머의 세계를 동경하여 시간 너머의 영원에 잇댄 삶을 삽니다.
뿐만 아니라 나그네로 살아본 사람에게는 남다른 책무가 있습니다. 다른 나그네를 선대하는 일입니다. 나그네를 선대하는 일은 선민 공동체의 기초였습니다. 이 질서가 붕괴 될 때 심판이 찾아왔습니다(창 19장). “당신들이 나그네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신들도 한때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입니다.”(신 10:19)
주님, 떠돌이 인생을 부끄러워하지 않겠습니다. 도리어 자유에 이르는 길임을 알고 감사합니다. 세속 인력에 메이지 않도록 자유혼이 늘 충만하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2024. 8. 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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