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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무책임
열왕기하 16:1~20
오늘의 세계뿐만 아니라 고대 세계에서도 외교 문제는 복잡했고 국제 문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치밀한 계산 아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시리아와 북왕국 이스라엘이 동맹을 맺고 남왕국 유다의 예루살렘을 침공하였습니다. 유다 왕 아하스는 혼신을 다해 적을 막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자기 힘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한 아하스는 아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왕에게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나는 임금님의 신하이며 아들입니다. 올라오셔서, 나를 공격하고 있는 시리아 왕과 이스라엘 왕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16:7) 그러면서 성전과 왕궁의 보물창고에서 금과 은을 꺼내 선물로 보냈습니다. 이에 디글랏빌레셀은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를 침공하여 시리아 왕 르신을 죽였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도 길르앗과 갈릴리 등을 잃었습니다. 위기를 면한 아하스는 다마스쿠스에 가 디글랏빌레셀을 예방하였습니다.
침략하는 외부의 적을 자기 힘으로 막을 수 없을 때 국가의 또 다른 불행이 시작됩니다. 적의 침략에 속수무책 정복당하는 일도 불행이지만 또 다른 외부 세력과 연합하여 적을 물리쳤다고 하여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외국 군대의 힘을 빌려 위기를 극복하였다면 그 과정에서 굴욕과 수치, 그리고 경제적 손실을 감내하여야 합니다. 문제는 그뿐만 아니라 이방 문화의 유입에 속수무책이라는 점입니다. 이방 문명에 앞장서 환호하는 몰지각한 이들이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합니다. 그런 일에 아하스 왕이 앞장섰습니다.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을 스스로 폄훼하는 일에 왕이 앞장섰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무지하여 소신이 없으면 누구라도 그렇습니다. 아하스는 다마스쿠스의 우상 신전을 보고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한눈에 매료되었습니다. 그 도면을 그려와 예루살렘 성전에 적용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맹목적 문화 사대주의입니다. 더 큰 문제는 제사장 우리야가 왕의 명령에 순종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왕의 무지와 독선을 막을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 직임을 방기하고 한 통속이 되었습니다. 제사장 우리야의 그림자가 오늘의 교회에 어른거리는 것은 왜일까요?
아하스는 앞서 유다를 다스리던 왕들이 걸었던 다윗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이방보다 더 이방다운 왕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강대국을 의존하므로 이겨도 이기지 못하는 함정을 스스로 팠습니다. 뿐만아니라 여호와 유일신 신앙을 크게 훼손하였습니다.
주님, 이 시대에 제사장 우리야 같은 종교인이 있는 한 교회에 희망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 악에서 저희를 건져주십시오.
2024. 10. 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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