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신학대전2권]하나님의 생명
토마스 아퀴나스<신학대전>1부 제2권 (13-19)
S.T Aquinatis 지음/정의채 옮김
572쪽 35,000원 바오로딸 1993,
13.하나님의 명칭에 대하여
14.하나님의 지식에 대하여
15.이데아에 대하여
16.진리에 대하여
17.허위에 대하여
18.하나님의 생명에 대하여
19,하나님의 의지에 대하여
13.하나님의 명칭에 대하여
①하나님께 적합한 어떤 명칭도 전혀 없다. 하나님은 질(質)이나 모든 우유(?有) 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냥 하나님이시다.
②하나님께 대해 실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 명칭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다. 피조물들에게 표현되는 만큼만 딱 그만큼만 하나님의 본질을 말할 수 있다.
③하나님께 대한 어떤 명칭도 고유하게 말해지지 않는다. 모든 명칭은 피조물에게서 나온 것이다. 예컨대 ‘독수리 같은 하나님’이라고 하면 그것은 비유적 명칭이지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고유의 명칭은 아니다.
④하나님께 대해 말해지는 명칭들은 동의어이다. 동의어는 같은 것을 표시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선성(善性)은 그의 본질이다. 지혜도 비슷하다. 그러므로 그런 명칭들은 전적으로 하나님과 동의어이다.
⑤하나님께 대해서와 피조물에 대해서 말해지는 것(명칭)들은 일의적(一義的)으로 그들(하나님과 피조물)에 대해 말해진다.
⑥명칭들은 하나님께 대해서보다는 피조물에 대해 더 먼저 말해진다. 명칭이란 인식된 것들의 기호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보다도 피조물을 더 먼저 인식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름 짓는 명칭들은 하나님보다 더 먼저 말해진다.
⑦피조물과 관련을 갖는 명칭들은 하나님께 대해 시간적으로 말해지지 않는다. 신적 실체는 영원한 것이다. 그러므로 명칭들이 하나님께 대해 말해지는 것은 시간적으로가 아니라 영원에서 말해지는 것이다.
⑧하나님이란 명칭은 본성에 대한 명칭이 아니다. 어떤 것이 우리에게 명칭되는 것은 인식되기 때문인데, 하나님의 본성은 우리에게 알수 없는 것이기에 인식되지 않는다. 고로 명칭 되지도 않는다.
⑨‘하나님’이라는 명칭은 공통적(共通的)인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보통명사이고 고유명사가 아니다. 하나님 자신은 보편적인 것도 특수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신적 본성’을 표시하기 위해 부여된 것이다.
⑩‘하나님’이라는 명칭은 분유(分有)의 하나님과, 본성의 하나님과, 억견(臆見)의 하나님께 일의적(一義的, 동명동의적<同名同義的>)으로 말해진다.
⑪‘있는 자(者)’라는 명칭이 하나님의 가장 고유한 명칭은 아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을 통해서가 아니면 알려지지 않는다. 그런데 ‘있는 자’라는 명칭은 피조물과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장 고유한 명칭일 수 없다.
⑫긍정적 명제들(肯定 命題)은 하나님께 대해 형성될 수 없다.
14.하나님의 지식에 대하여
①하나님 안에는 지식이 없다. 모든 지식은 보편적이거나 특수적이거나 개별적인 것이며 어떤 결론에 관계된 원인이 되는 어떤 인식이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는 원인이 되는 어떤 것도 없으므로 하나님 안에는 지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②하나님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인식은 인간이 ‘지성’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방법일 뿐, 하나님 자신이 인식이므로 자신을 인식할 필요가 없다.
③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파악하지 못한다. ‘파악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을 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어떤 모양으로든 무한하신 분이며, 어떤 한계로 한정되어 있으신 분이 아니시다. 고로 하나님께는 하나님 자신을 더 알기 위해 자기 자신을 파악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④하나님은 인식하는 것(인식활동) 자체가 그의 실체(實體)는 아니다.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작용이다. 작용은 작용자에게서 나오는 어떤 것을 표시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식하는 것은 하나님의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 어떤 것이 없다.
⑤하나님은 자기와 다른 것을 인식하지 못하신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당신 밖에서 아무것도 보지(투시)않으신다.’고 했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 밖에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다른 것 자체가 없기에 하나님은 자기와 다른 것을 인식하지 못하신다.
⑥하나님은 자기와 다른 것들을 [각 사물에] 고유한 인식으로 인식하지 않으신다. 각 사물은 하나님 안에 있기에 사물의 보편적인 제1원인은 하나님이시다. 고로 하나님 밖에 다른 사물이 존재할 수 없으니 하나님은 각 사물을 고유한 인식으로 인식할 일 자체가 없다고 하겠다.
⑦하나님의 지식은 추론적이다. 추론하는 자는 원인을 통하여 결과를 인식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른 것들을 자기 자신을 통해 인식하신다. 이것은 원인을 통해 결과를 인식하는 것과 같으므로 하나님의 인식은 추론적이다.
⑧하나님의 지식은 사물들의 원인이 아니다. 원인이 주어지면 결과도 주어진다. 하나님의 지식은 영원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식이 피조물의 원인이라면 피조물은 영원부터 있었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⑨하나님은 비유(非有)들에 대한 지식을 갖지 않는다. 지식은 아는 자와 알려진 것 사이에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께는 어떤 유사성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알려질 수 없다.
⑩하나님은 악들을 인식하지 않으신다. 인식되는 모든 것은 그것의 유사성이나 그것과 대립되는 것을 통해 인식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을 인식하실 때 자기 본질을 통해 인식하신다. 하나님의 본질은 악의 유사성도 아니며 악과 대립되는 것도 아니기에 그러므로 하나님은 악을 인식하지 않으신다.
⑪하나님은 개개의 것들을 인식하지 않으신다. 인간의 지성은 비물질적인 것이어서개개의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인간의 지성은 단절되지 않은 어떤 형상(刑象)을 받아들여 인식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성은 인간보더 더 비물질적이다.
⑫하나님은 무한한 것들을 인식할 수 없다. ‘지식으로 파악되는 것은 어떤 것이든 그 파악까지로 한정되며, 그것은 무한이 아니다. 무한은 끝으로 한정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한’을 인식했다면 그 순간 그것은 ‘유한’이 되고 만다.
⑬하나님의 지식은 미래의 우연적(偶然的)인 것들에 관계되지 않는다. 필연적인 원인에서만 필연적인 결과가 나온다. 하나님의 지식은 필연적인 것이니 그 결과도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우연적인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은 없는 것이다.
⑭하나님은 언표적(言表的)인 것들을 인식하지 않으신다. 인간은 지성으로 언표적인 것을 유사를 통해 인식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전적으로 단순하시기에 언표적인 것들에 대한 어떤 유사도 없으므로 그것을 인식하지 않으신다.
⑮하나님의 지식은 가변적(可變的)이다. ‘지식’은 ‘알려질 수 있는 것, 지식의 대상’에 대해 관계적이다. 그런데 피조물과 관계된 것들이 하나님께 대해 말해지는 것은 시간적으로 되는 것이며, 피조물들의 변동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식은 피조물의 변화에 따라 가변적(可變的)이 된다.
?하나님이 사물들에 대해 사색적, 관조적(觀照的) 지식을 갖지 않는다. 하나님의 지식은 사물들의 원인이다. 그런데 사색적, 관조적 지식은 알려진 사물의 원인이 아니다. 고로 하나님의 지식은 사색적, 관조적이 아니다.
15.이데아에 대하여
①이데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데아(idea 변하지 않는 어떤 형식)는 사물들이 인식되도록 하는 어떤 것인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자기 자신 안에서 인식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이데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②이데아들은 많지 않다. 하나님 안에 있는 이데아는 하나님의 본질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이데아도 하나다.
③하나님이 인식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이데아들이 하나님 자신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악의 이데아는 하나님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악은 하나님께 인식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인식된다고 해서 하나님께 모든 이데아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6.진리(眞理)에 대하여
①진리는 지성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물들 안에 존재한다. 어거스틴은 ‘있는 바로 그것이 진(眞)이다.’라고 한다.
②진리는 복합하고 분할하는 지성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포함한 모든 사물들 안에 존재한다.
③진(眞)과 유(有)는 전환(轉換, 환치換置)되지 않는다. 진은 본래적으로 지성과 사물들 안에 있고, 유는 본래적으로 사물들과 지성 안에 있다. 그러므로 진과 유를 바꿀 수 없다.
④선(善)은 개념상으로 진(眞)에 선행(先行)한다. 선은 진보다 더 보편적이다. 그것은 진이 어떤 선, 곧 지성의 선이기 때문이다.
⑤하나님은 진리인가? 하나님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지성의 복합과 분할’에 성립된다. 그런데 하나님 안에는 복합과 분할이 없다. 진리는 ‘근원에 대한 유사’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근원에 대한 유사가 없다. 고로 하나님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포함한 훨씬 더 포괄적으로 더 크신 원인이시다.
⑥모든 것이 그것에 의해 진(眞)인, 다만 하나의 진리(제1 진리)는 존재한다.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정신보다 더 큰 것은 없다. 그런데 진리는 인간의 정신보다 더 크다. 따라서 하나님을 ‘제1 가지적(可知的) 진리’라고 한다.
⑦창조된 진리는 영원하다. 어떤 것도 원(圓)의 개념이나 2+3=5라는 것보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런데 이런 진리는 창조된 지리이다.
⑧진리는 불변(不變)한 것이다. 진리는 정신과 같은 것이 아니다. 정신과 같은 것이라면 변할 수 있는데, 그러나 진리는 모든 변화 후에도 남는 제1질료이다. 그래서 진리는 불변적이 것이다.
17.허위(虛僞)에 대하여
①허위(거짓)가 사물들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거스틴은 “진(眞)이 있는 그것이라면, 허위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사물들은 자기 형상과 다른 것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허위는 사물들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다.
②감각 안에 허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거스틴은 “만일 신체의 모든 감각이 느껴지는 대로 내가 반응하고 행동하게 된다면 나의 의지는 감각에게 요구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감각들 한테서 속지 않는다. 그러므로 감각 안에는 허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③지성 안에 허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거스틴은 “속는 모든 사람은 자기가 속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고로 지성 안에는 허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④진(眞)과 위(僞)는 서로 모순된 것이 아니다. 어거스틴은 “진은 있는 그것이다.”라고 했다. 진과 위는 마치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 곧 없는 것이 대립하는 것과 같은데, 있지도 않은 것과 어떻게 대립하겠는가.
18.하나님의 생명에 대하여
①사는 것은 모든 자연적 사물들에 속하는 것이다. ‘운동은 자연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있어서 마치 생명과 같은 것’이다. 모든 자연적 사물은 운동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고로 모든 자연적 사물은 생명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
②생명은 어떤 한 작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는 것을 네 가지로 구분한다. 영양을 섭취하는 것, 감각하는 것, 장소를 따라 운동하는 것,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어떤 한 작용이다.
③하나님께는 생명이 적합하지 않다. 사는 것은 스스로를 움직이는 것이다. 사는 것은 어떤 삶의 원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는 것은 성장하는 것인데, 이것은 물체적 사물에만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으신다.
④모든 것이 다 하나님 안에서 생명은 아니다. 선(善)들과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것들은 하나님 안에서 생명이지만, 악(惡)들은 하나님이 만들수는 있지만 결코 만들지 않으실 것이기에 그것들은 생명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 안에서 생명은 아닌 것이다.
19.하나님의 의지에 대하여
①하나님 안에는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의지의 대상과 목적은 선(善)이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어떤 목적이 없으시다. 의지는 어떤 욕구이다. 욕구는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은 갖지 못한 욕구가 없으시다. 의지는 움직여주고 움직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1동자(第一動者)로서 부동적(不動的)이신 분이다.
②하나님은 자기 이외의 어떤 것들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자기의 신성으로 충분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어떤 원하는 것으로 충족되는 의지가 아니시다.
③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든 그것은 다 필연성에서 원하시는 것이다. 모든 영원한 것은 다 필연적이다.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든 다 영원으로부터 원하신다.
④하나님의 의지가 모든 사물들의 원인은 아니다. 하나님은 ‘의지’를 통해 행동하지 않으신다. 마치 태양이 모두에게 비추는 것처럼, 하나님의 선(善)도 존재하는 모든 것에 자기의 선성(善性)의 빛을 침투시키신다.
⑤하나님의 의지에 어떤 원인이 있는가? 의지적인 행동자에게 작용의 이유(근거)는 원함이 그 원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지는 어떤 원인을 갖는다.
⑥하나님의 의지가 항상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깨달음에 도달하기를 원하신다.’(딤전2:4)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지가 항생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⑦하나님의 의지는 가변적(可變的)이다. ‘나는 사람을 만든 것을 후회한다’(창6:6) 또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삼상15:11)
⑧하나님의 의지는 그 원한 사물들에 필연성을 부과한다. 어거스틴은 “누구도 하나느님 구원되기를 원하시지 않는다면 구원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도록 청원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이루어지는 것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⑨하나님은 악(惡)들을 원하신다. 하나님이 생성하는 모든 것은 선하다. 악들이 생성되는 것도 선인 것이다. 어거스틴은 “악인 것들은 그것들이 악인 한 선들은 아닐지라도 그러나 선들 뿐만이 아니라 악들도 존재한다는 것은 선이다.”라고 한다.
⑩하나님은 자유의사(自由意思)를 갖지 않으신다. 히에로니무스는 “다른 것들은 다 자유의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두 쪽 중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질 수가 있지만, 자유의사가 없기 때문에 죄가 그에게 떨어지지 않고 또 떨어질 수도 없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라고 했다.
⑪하나님에 있어서 ‘표시의 의지’는 구별된다. 지식이 생성되는 원인은 오직 의지에 의해서다. 우리는 아는 것일지라도 원하지 않고서는 행하지 못한다. 따라서 표시는 의지에 귀속되는 것처럼 지식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⑫하나님의 의지에 대해 금지, 계명, 조언, 작용, 허용의 다섯 표지가 주어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고 또는 조언하는 것들을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작용시키기 때문이며, 또 하나님이 금지하는 것들을 그분이 허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리:최용우
월간<들꽃편지>668호 연재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