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남은 자
열왕기하 25:8~30
못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킵니다. 잘난 나무는 재목감으로 잘라가고, 정원수로 뽑혀가지만, 쓸모없이 자란 쓸데없는 나무들이 숲을 채웁니다. 보잘것없는 것에 귀한 가치가 담겨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란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는 나사렛에 터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성전은 파괴되었고 성읍은 폐허로 변했습니다.
“느부사라단 근위대장은 도성 안에 남아있는 나머지 사람들과 바빌로니아 왕에게 투항한 사람들과 나머지 수많은 백성을, 모두 포로로 잡아갔다. 그러나 근위대장은, 그 땅에서 가장 가난한 백성 가운데 일부를 남겨 두어서, 포도원을 가꾸고 농사를 짓게 하였다.”(25:11~12)
바빌로니아는 그 빈 땅을 다스릴 총독으로 그달리야를 세웠습니다. 그달리야는 남아있는 백성을 향하여 ‘바빌로니아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 왕을 섬기는 것이 이롭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민족주의자왕족 이스마엘이 반기를 들고 총독과 바빌로니아 관리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백성을 이끌고 이집트로 망명하였습니다. 성경은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을 바빌로니아 왕이 복권시켜주고 죽을 때까지 생계비를 주었다고 기록하므로 민족주의에 기반한 이스마엘의 행동이 의로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을 비유적으로 묘사합니다. 세상사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의로워 보이는 행동 속에 불의가 있고, 옳아 보이는 의거가 하나님을 대적할 수도 있습니다. 분별력과 지혜로 가릴 수 있어야겠습니다.
좋든 싫든 시대와 지역에는 자기들의 질서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뛰어넘기란 불가능합니다. 조선시대는 왕조시대였습니다. 양반들이 세상을 책임지는 시대여서 일반 백성의 생각이 반영될 수 없었습니다. 오늘 민주 시민의 잣대로 그 시대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21세기 기준으로 16세기를 진단하려 한다면 그것은 무지이자 폭력입니다.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분단된 1945년부터 지금까지 북한에도 나름대로(?) 질서가 존재하였습니다. 그것이 우리 입맛에 좋든 싫든…. 그런데 그 질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시하거나 우리식으로 한꺼번에 바꾸라고 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폭력입니다. 평화의 길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와도 함께 가는 길입니다.
주님, 남은 자에게도 질서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이 아니기를 빌 뿐입니다. 지혜와 분별력을 주십시오.
2024. 10. 16 수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