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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애가 3:1~18
과녁
인생에는 고통이 있기 마련입니다. 성공과 승리의 길만 걸은 인생이더라도 아픔과 슬픔이 없을 수 없습니다. 누구라도 고통을 견디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유 없이 당하는 고난이 있고, 그 이유를 알면서 당하는 시련이 있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당하는 고통이 욥이 당하는 고난이라면, 지금 유다는 자신이 당하는 망국노의 설움과 고통의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훨씬 나아 보입니다. 비교해 보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편한 고통이란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고난을 피하는 것이 좋고, 고통 가운데 있다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고통 그 너머의 세계를 보는 안목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에 얻어맞고, 고난당하는 자다. 주님께서 나를 이끄시어, 빛도 없는 캄캄한 곳에서 헤매게 하시고, 온종일 손을 들어서 치고 또 치시는구나.”(3:1~3)
활을 기가 막히게 잘 쏘는 사람을 신궁이라고 합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은 활쏘기에 능란하였고 그 전통을 이은 고구려는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무술을 중시하였습니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병을 기마궁수이라고 하고, 궁기병이라고도 하는데 기동성을 이용하여 적진의 대형을 흐트러지게 하고 적을 교란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런 무술은 유목민족에게서 발전하였습니다. 14세기 초 스위스가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 빌헬름 텔은 폭정을 일삼는 지도자에게 절을 하지 않은 이유로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80보 밖에서 그 사과를 활로 맞추는 벌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빌헬름 텔이 명궁이라고는 하지만 그 과녁이 된 아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립니다. 지금 유다의 심정이 그랬으리라 생각합니다. 빌헬름 텔은 아들 머리 위에 있는 사과를 겨냥하였지만, 하나님은 유다를 과녁 삼아 심장을 뚫으시겠다고 하니 그 떨림이 기가 막히도록 두렵습니다. 이런 심정으로 살아야 바른 삶이 가능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과녁으로 삼아서, 활을 당기신다. 주님께서 화살통에서 뽑은 화살로 내 심장을 뚫으시니, 내 백성이 모두 나를 조롱하고, 온종일 놀려댄다.”(3:12~14)
주님, 오늘 주님의 화살이 교회를 과녁 삼고 있는데 이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것같아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저희가 주님의 과녁이 될 때 그 이유를 알고 주님을 마주할 기회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2024년 10월 21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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