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생명력
디모데전서 1:12~20
오늘 이 땅의 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선한 싸움을 싸울 능력은 고사하고 의지조차 잃어버렸다는 점입니다. 아니 무엇이 선한 싸움인지 분별력조차 소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목표 없이 달리는 듯하고, 허공을 치듯 권투’를 합니다(고전 9:26). 무엇인가 열심히는 하는데 언제나 허무합니다. 도리어 선한 싸움을 명분 삼아 악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습니다. 이 땅에 교회는 많으나 나라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예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1:18). 바울은 그런 이들이 양심을 버렸고, 믿음에 관하여서는 파선하였다고 말합니다(1:19). 본래부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150여 년 전 이 땅에 들어온 교회는 존재 자체가 희망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유교가 만든 세상에서 유교 가르침의 본질은 사라지고 각종 차별과 사색당파로 얼룩져있어 절망을 반복하는 때에 소개된 복음은 그 자체로서 희망의 등불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통하여 인간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에 사랑이 전재 되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개인이나 국가가 잘되기 위하여 남과 이웃 민족을 곤경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인류애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한 계몽 활동과 나라를 살리는 애국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그렇게 하여 민족의 근대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땅의 교회는(물론 일부라고 위안을 삼습니다만) 부끄러움도 잊고 믿음의 가치도 잃고 말았습니다. 저들은 그동안 누려온 특권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사랑과 평화 대신에 증오와 분쟁을 도구 삼습니다. 바울은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사탄에게 넘겨주었다고 말합니다(1:20). 과연 이 땅에는 사탄에게 넘겨진 이들이 없을까요? 그런 이들이 도리어 교회에서 큰소리치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아픕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실수할 수 있고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그가 믿음을 갖기 전에는 주님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1:13). 그래서 스스로를 ‘죄인의 우두머리’라고 하였습니다(1:15). 하지만 주님의 긍휼을 입은 후에 그는 주님으로부터 충성된 직분을 받았습니다(1:12). 오늘 이 땅 교회의 지도자들이 새겨들을 말씀입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예언의 가르침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양심과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저희를 붙잡아 주십시오.
2024. 11. 2 토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