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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대전4권] 위격들의 구별 

 

토마스 아퀴나스<신학대전>1부 제4권 (31-38)

S.T Aquinatis 지음/정의채 옮김

328쪽 26,000원 바오로딸 1997.2024 2판

 

31.하나님 안에서 단일성 혹은 복수성

32.하나님의 위격들의 인식에 대하여

33.성부의 위격에 대하여

34.성자의 위격에 대하여

35.모습(혹은 모상〈模像〉)에 대하여

36.성령의 위격에 대하여

37.사랑이라는 성령의 명칭에 대하여

38.은사라는 성령의 명칭에 대하여

 

31. 하나님 안에서 단일성(單一性) 혹은 복수성(複數性)에 속하는 것들

①하나님 안에 삼일성(三一性) 즉 삼위일체(三位 一體)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안에서의 모든 명칭은 실체를 표시하거나 관계를 표시한다. 그런데 삼일성은 다른 것에 대한 대타적 명칭이 아니기에 실체나 관계성이 없다. 그러므로 삼일성, 즉 삼위일체(三位 一體)라는 명칭은 하나님께는 적절하지 않다.

②성자는 성부께 대해 타자(他者)가 아니다. 성자는 성부와 차별되는 존재가 아니다. 어거스틴은 “우리가 세 위격을 말할 때 그것은 세 위격의 차별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하고 했다. 

③‘홀로’, ‘오직 …만’, ‘유독’ 또는 ‘유일한’이라는 배타사(排他詞)가 하나님 안에서 본질적 명사에 부가될 수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천사들과 거룩한 영혼들과 같이 있기 때문에 ‘홀로’라고 할 수 없다. 

④배타사(排他詞)가 위격적 명사에 부가되는 것은 가능하다. 술어가 공통적인 것일지라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하나의 위격은 다른 위격의 개념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성부는 성자의 개념 안에 있으며 성자의 개념도 성부 안에 있다. 그러므로 ‘오직 성부만이 하나님이다.’라고 하는 것이 성자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32. 하나님의 위격들의 인식에 대하여

①하나님의 위격들의 삼위성(三位性, 삼위일체성〈三位一體性〉)이 자연적 이성에 의해서도 인식될 수 있다. 철학자들은 자연적 이성에 의해서만 하나님 인식에 도달한다. 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만유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일 뿐이다.

②우리는 하나님 안에 인식적 표징(標徵)들을 조정(措定)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거룩한 말씀들에 의해 우리에게 명백하게 표명된 것 외에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어떤 것도 감히 스스로 상상하여 말해서는 안 된다.’

③하나님에 대한 고유한 인식적 표징은 넷만 있다. 즉, 원성(原性), 부성(父性), 자성(子性) 영성(靈性:성령)이다.

④인식적 표징들에 대해 상반되는 견해를 취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위격들은 인식적 표징들에 의해서만 인식되기 때문이다. 

 

33. 성부의 위격에 대하여

①성부는 성자 혹은 성령의 근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근원이라는 명칭은 더 먼저에서 온다는 뜻인데, 하나님 안에는 더 먼저와 더 후가 없다. 성부와 성자는 동등한 위치이며 먼저와 후가 없다. 

②‘성부’라는 명칭은 하나님 위격의 고유한 양태의 명칭이 아니다. 아버지라는 명칭은 관계를 표시한다. 그런데 위격은 개별적이거나 개체적인 실체이다. 그러므로 ‘성부 아버지’라는 명칭은 인간들의 이해를 위한 상징적인 명칭이지 하나님이 진짜 아버지라는 뜻은 아니다. 

③하나님에 있어서 성부라는 명칭은 그것이 위격적으로 취해지는 데 근거하여 더 전에 혹은 우선적으로 말해지는 것은 아니다. 삼위일체라(三位一體)라는 말에는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나중이라는 순서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④낳아지지 않은 것(낳아지지 않은 존재)은 성부께 고유한 것이 아니다. 고유성은 그 고유성이 소속되는 것 안에 어떤 것을 놓아주는데 ‘낳아지지 않는 자’는 성부 안에 어떤 것도 놓아주지 않고 오히려 성부에게서 어떤 것을 제거할 뿐이다. 

 

34. 성자의 위격에 대하여

①하나님에 있어 말씀은 본질적으로 말해지는가 아니면 위격적으로 말해지는가? 오리게네스는 ‘하나님 안에서 비유적으로 말해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말은 하나님 안에서 위격적이 아니다. 

②말씀은 성자께 고유한 명칭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서 성자는 자존(自存)하는 위격이다. 그런데 말은 우리 안에서 자존하는 사물을 표시하지 않는다. 

③말씀의 명칭에는 피조물과의 관련이 포함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피조물은 결과를 내포하는 모든 명칭이 본질적으로 말해진다. 그런데 말씀은 본질적으로가 아닌 ‘위격적’으로 말해지기 때문에 말씀은 피조물에 포함되지 않는다. 

 

35. 모습(혹은 모상〈模像〉)에 대하여

①모습(모상)은 하나님 안에서 위격적으로 말해지지 않는다. 어거스틴은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성과 인간이 그것에 따라 만들어진 모상(형상)은 하나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모습은 본질적으로 말해지는 것이며 위격적으로 말해지는 것은 아니다.

②모습 혹은 모상이란 명칭은 성자에게 고유한 명칭이 아니다. 그 이유는 성령도 성자의 모상이기 때문이다.

 

36. 성령의 위격에 대하여

①성령이라는 명칭은 하나님의 어떤 위격에 고유한 것이 아니다. 세 위격들의 공통된 명칭은 어떤 한 명칭에 고유한 명칭이 아니다. 그런데 성령이라는 명칭은 세 위격들에 공통된 것이다. 

②성령은 성자로부터 발출하지 않는다. 다만 성경은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출한다고 한다.(요15:26)

③성령은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해 발출하지 않는다. 성자는 출생으로 그 존재를 갖게 된다. 따라서 만일 성령이 성자를 통해 있게 된다면 성자가 먼저 출생하고 후에 성령이 발출한다는 결론인데 그런 경우 성령을 영원한 것이라고 할 수 없으니 그것은 이단적인 생각이다. 

④성부와 성자는 성령의 한 근원이 아니다. 그 이유는 성령의 본성이 성부와 성자와 하나이기 때문이다. 

 

37. 사랑이라는 성령의 명칭에 대하여

①사랑은 성령의 고유한 명칭이 아니다. 그 이유는 성자도 성령도 사랑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사랑은 성령만의 고유한 명칭이 아니다.

②성부와 성자는 성령에 의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그 어떤 개념적 작용도 그 작용의 근원으로 되돌려져 말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38. 은사라는 성령의 명칭에 대하여

①은사는 위격적 명칭이 아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위격들에는 주체와 종속자가 결코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은사는 그것이 주어지는 자와 그것을 주는 자에 대한 어떤 종속을 내포하기 때문에 은사는 위격적 명칭이 아니다.

②은사는 성령에게 고유한 명칭이 아니다. 고유함 명칭은 그 위격의 어떤 고유성을 표시한다. 그런데 은사라는 명칭은 성령의 어떤 고유성도 표시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에게 고유한 명칭이 아니다. 

 

-요약,정리-최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