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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곤 칼럼] 도덕성 자신 없거든
수즉다욕(壽돴多辱)이라고 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욕되는 일도 늘어간다는 말이겠다. ‘장자’ 천지편에 나오는 말이다.
요(堯)임금이 화(華) 지방을 순행할 때였다. 그 곳의 봉인(封人·경계를 지키는 관리)이 인사를 드리며 축수(祝壽)를 허락해 달라고 했다. 요임금은 손을 내저으며 장수하길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부(富)를 빌게 해달라고 했으나 이도 싫다고 했다. 다시 다남(多男)을 빌어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이 또한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이 많으면 못난 자식도 생겨 오히려 걱정거리가 될 것이고,부자가 되면 그만큼 쓸데 없는 일도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또 오래 살면 욕을 후세에 남기게 된다. 요임금이 설명이었다.
“성인이라고 하더니 기껏해야 군자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사나이군. 아들이 많다고 해도 하늘이 그 직분을 주는데 무슨 걱정인가. 재산이 늘면 느는 대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아무 일도 없을 것 아닌가. 자유자재한 삶을 산다면 장수한다 해서 욕될 까닭이 있으랴”
요가 물어볼 게 있다고 불러 세웠으나 봉인은 가버렸다.
장자의 유가(儒家)에 대한 우화적 비판일 뿐 사실이 아니다. 유가적 성인이란 그처럼 얽매이는 데가 많지 않느냐,그러고도 무슨 성인이냐는 조롱이겠다. 그렇지만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수즉다욕’은 정말 아픈 매가 된다.
J 스위프트의 이런 말은 어떨지 모르겠다.
“현자의 후반생은 그 전반생에 범한 우행,편견,사견(邪見)의 시정에 충당된다” <다제다상(多題多想)>
성인,현자로서도 그럴진대 하물며 필부이랴. 장대환 총리 지명자보다 몇 살 더 많도록 살았으니 마냥 젊다고 고집하지는 못할 나이다. 그렇다고 마음쓰일 정도의 나이도 아닌데,이즈음은 날이 갈수록 허물만 쌓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스스로 거북하다. 두 차례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을 따지는 특위위원들의 준엄한 목소리에 마음 속으로 장단을 맞추다가 문득 그렇게 느낀다.
“너는 그간 부끄럼 없이 살았느냐?” “웬걸요, 한 걸음 한 걸음 흠만 남기고 흘리며 살아 온걸요”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진다. 어느 세월에 그 얼룩들을 다 지워낼까 해서다.
그렇다 해서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을 너무 따지지 말자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만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가 민주정치로서는 취약기다. 타락의 속도와 정도가 급격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청문회뿐 아니라 동의안 처리과정도 엄정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은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공직 접근을 저지하는 것이 국회의원들의 책무이자 국민에 대한 도리다.
다만 마음에 분명한 전제를 둬야 한다. 의원 자신에 대한 잣대도 결코 달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양심의 다짐이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요구 수준을 낮추라는 뜻이 아니라,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요구 수준을 높이라는 거다. 그게 자신 없으면 스스로 정치의 장이나 공직에서 떠나는 게 그나마 허물을 줄이는 길이다. 인사청문회와 임명 동의제도의 의의는 여기까지 미친다. 그렇지 않은가?
“민주정치는 모든 정부 형태 가운데 가장 어려운 형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성의 가장 광범위한 확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를 주권자로 만들 때 스스로를 지성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기 일쑤다.?왜냐하면 무지는 본래 여론을 조성하는 세력들에 의해 조종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W J 듀란트 부부가 쓴 ‘역사의 교훈’(천희상 역) 가운데 한 대목이다.
정말 그렇다. 소수의 정치 리더들과 그 추종자들은 끊임없이 여론을 조종하면서 주권자의 우민화(愚民化)를 추구한다. 듀란트의 지적처럼 ‘교육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지만’ 지성에 이르는 길은 권력자나 권력 추구자들에 의해 가로막히곤 하는 것이 현실이다.
권력을 향한 격렬하고 천박한 투쟁,지위와 돈에 대한 집요한 집착,리더라는 사람들(일부이겠으나)의 끝간데 모를 오만과 타락?. 이 반지성·부도덕의 사회에서 민주정치가 성숙되길 바란다? 차라리 부지깽이에 새싹이 나기를 기대하지.
그건 그렇다 하고,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 있다. 총리 인사 청문회에서 장지명자가 겸손하고 솔직하고 차분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그러므로 인준받을 자격이 있지 않느냐는 투로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에게 많은 장점이 있겠지만) 단지 과오를 시인하는 게 합격 기준이라고 할 때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총리 못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만한 조건 충족시킬 사람이면 총리 시켜줄테니까 손들고 나서라고 해보시지.
이진곤 수석논설위원 jingon@kmib.co.kr
수즉다욕(壽돴多辱)이라고 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욕되는 일도 늘어간다는 말이겠다. ‘장자’ 천지편에 나오는 말이다.
요(堯)임금이 화(華) 지방을 순행할 때였다. 그 곳의 봉인(封人·경계를 지키는 관리)이 인사를 드리며 축수(祝壽)를 허락해 달라고 했다. 요임금은 손을 내저으며 장수하길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 부(富)를 빌게 해달라고 했으나 이도 싫다고 했다. 다시 다남(多男)을 빌어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이 또한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이 많으면 못난 자식도 생겨 오히려 걱정거리가 될 것이고,부자가 되면 그만큼 쓸데 없는 일도 많이 생기게 마련이다. 또 오래 살면 욕을 후세에 남기게 된다. 요임금이 설명이었다.
“성인이라고 하더니 기껏해야 군자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사나이군. 아들이 많다고 해도 하늘이 그 직분을 주는데 무슨 걱정인가. 재산이 늘면 느는 대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아무 일도 없을 것 아닌가. 자유자재한 삶을 산다면 장수한다 해서 욕될 까닭이 있으랴”
요가 물어볼 게 있다고 불러 세웠으나 봉인은 가버렸다.
장자의 유가(儒家)에 대한 우화적 비판일 뿐 사실이 아니다. 유가적 성인이란 그처럼 얽매이는 데가 많지 않느냐,그러고도 무슨 성인이냐는 조롱이겠다. 그렇지만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수즉다욕’은 정말 아픈 매가 된다.
J 스위프트의 이런 말은 어떨지 모르겠다.
“현자의 후반생은 그 전반생에 범한 우행,편견,사견(邪見)의 시정에 충당된다” <다제다상(多題多想)>
성인,현자로서도 그럴진대 하물며 필부이랴. 장대환 총리 지명자보다 몇 살 더 많도록 살았으니 마냥 젊다고 고집하지는 못할 나이다. 그렇다고 마음쓰일 정도의 나이도 아닌데,이즈음은 날이 갈수록 허물만 쌓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스스로 거북하다. 두 차례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을 따지는 특위위원들의 준엄한 목소리에 마음 속으로 장단을 맞추다가 문득 그렇게 느낀다.
“너는 그간 부끄럼 없이 살았느냐?” “웬걸요, 한 걸음 한 걸음 흠만 남기고 흘리며 살아 온걸요”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진다. 어느 세월에 그 얼룩들을 다 지워낼까 해서다.
그렇다 해서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을 너무 따지지 말자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만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가 민주정치로서는 취약기다. 타락의 속도와 정도가 급격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청문회뿐 아니라 동의안 처리과정도 엄정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은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공직 접근을 저지하는 것이 국회의원들의 책무이자 국민에 대한 도리다.
다만 마음에 분명한 전제를 둬야 한다. 의원 자신에 대한 잣대도 결코 달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양심의 다짐이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요구 수준을 낮추라는 뜻이 아니라,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요구 수준을 높이라는 거다. 그게 자신 없으면 스스로 정치의 장이나 공직에서 떠나는 게 그나마 허물을 줄이는 길이다. 인사청문회와 임명 동의제도의 의의는 여기까지 미친다. 그렇지 않은가?
“민주정치는 모든 정부 형태 가운데 가장 어려운 형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성의 가장 광범위한 확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를 주권자로 만들 때 스스로를 지성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기 일쑤다.?왜냐하면 무지는 본래 여론을 조성하는 세력들에 의해 조종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W J 듀란트 부부가 쓴 ‘역사의 교훈’(천희상 역) 가운데 한 대목이다.
정말 그렇다. 소수의 정치 리더들과 그 추종자들은 끊임없이 여론을 조종하면서 주권자의 우민화(愚民化)를 추구한다. 듀란트의 지적처럼 ‘교육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지만’ 지성에 이르는 길은 권력자나 권력 추구자들에 의해 가로막히곤 하는 것이 현실이다.
권력을 향한 격렬하고 천박한 투쟁,지위와 돈에 대한 집요한 집착,리더라는 사람들(일부이겠으나)의 끝간데 모를 오만과 타락?. 이 반지성·부도덕의 사회에서 민주정치가 성숙되길 바란다? 차라리 부지깽이에 새싹이 나기를 기대하지.
그건 그렇다 하고,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 있다. 총리 인사 청문회에서 장지명자가 겸손하고 솔직하고 차분했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그러므로 인준받을 자격이 있지 않느냐는 투로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에게 많은 장점이 있겠지만) 단지 과오를 시인하는 게 합격 기준이라고 할 때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총리 못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만한 조건 충족시킬 사람이면 총리 시켜줄테니까 손들고 나서라고 해보시지.
이진곤 수석논설위원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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