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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로에서>`비전없는 정치` 설 땅 좁다

무엇이든 이태희............... 조회 수 517 추천 수 0 2002.09.05 00: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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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최근 지지율 추세는 흥미로운 정치적 테마다. 정국이 아무리 요동쳐도 변화 폭이 아주 적다. 김대중 정권이 수개월 동안 아들들 비리라는 수렁에 빠져 허덕였지만 이 후보의 지지율은 크게 오른 편이 아니다. 반사이익을 거의 얻지 못했다. 반면 최근 한달간 검찰의 병풍수사로 정치적 곤경에 처했으나 별로 손해 본 것도 없다. 지지율 낙폭은 아주 미미하다.

‘싸움질 정치’에 혐오감을 느낀 유권자들이 정치공방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일까. 같은 기간에 민주당 노무현 후보나 정몽준 의원의 지지율이 거의 20% 포인트 대의 등락을 겪은 것을 보면 그렇게 보기도 힘들다. 정치 이슈의 변화는 대선 후보지지율 경쟁에서 파괴력이 큰 변수라는게 정설이다.

이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명료하다. 영남민심의 막강한 지원사격이 가장 큰 힘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지역 유권자의 70%이상은 이 후보를 선택하고 있다. 또 다른 변수는 상대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이 후보의 경력과 정치적 이미지다. 이 후보가 집권하면 국정운영면에서 큰 실수는 없을 것이라는 평가는 이 후보를 공격하는 측도 부인하지 못하는 대목이다.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다르다. 우리 시대에 넘쳐나는 변화와 개혁에 대한 욕구를 담아낼 청사진이 약한 탓이다. 오히려 이 후보가 집권하면 각분야 정책이 ‘현상유지’에 주력할 것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이 후보를 보좌하는 핵심 그룹이 ‘기득계층’ 중심으로 짜여진 점도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다.‘안정감’이라는 강점이 가진 또 다른 얼굴이다. 변화를 바라는 20,30대 계층에서 이 후보가 줄곧 약세를 면치 못하는 현상은 이를 뒷받침한다. .

이 후보의 대북정책은 비전 제시면에서 특히 취약한 사례로 꼽힌다. 남북관계가 누구도 예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급류를 타고 있지만 이 후보의 대북정책은 원칙론에 사로잡힌 느낌이다. 햇볕정책의 대안 개념으로 제시해온 ‘전략적 상호주의’는 “쌀 주고 뺨 맞았다”는 비판은 분명히 피할 수 있다. 반면 햇볕정책에 비해 남북관계의 진전을 유도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북한의 군사적 신뢰조치에 상응하는 교류.협력만을 펴나간다는 이 후보의 대북정책은 남북관계를 냉전시대의 대결적 구도로 회귀시킬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시집 ‘악의 꽃’에서 “한 겨울 병실의 벽난로쪽 침상에서는 창가쪽 침상을 부러워한다”고 적었다. 벽난로(안정된 현실)보다는 창밖 풍경(비전)을 꿈꾸는 선택을 하고 싶다는 얘기다. 물론 보통사람들의 경우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따뜻한 벽난로를 끼고서 동시에 찬바람이 주는 상쾌한 각성을 느끼길 원한다. 이 후보측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병풍공방보다는 대선 후보로서의 취약한‘비전 제시’가 지지율 정체의 더 큰 요인일지도 모른다. 안정감에만 기대는 정치가 설 자리는 그리 넓지 않다.

/이태희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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