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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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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2001-12-07 오전 10:22:45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전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미식가 한 사람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러분은 석화젓이라는 젓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굴을 한자로 석화(石花)라고 한다. 생굴로 담은 젓이 굴젓이고 굴의 껍질을 벗기고 짜지 않게 젓을 담은 뒤 삭으려 할 때에 고춧가루나 마늘 따위를 쓴 게 어리굴젓이다. 어리굴젓은 충청도 서산, 당진, 예산이 유명한데 특히 서산 간월도에서 생산된 것은 왕에게 올리는 진상품으로 썼다고 전해진다.
그나저나 석화젓은 굴젓이 아니다. 어리굴젓은 더더구나 아니다. 석화가 굴인데 왜 석화젓이 굴젓이 아니냐.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는 참이다. 이 석화젓은 내가 분류한 젓갈의 서열에 따르더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단히 뛰어난 젓갈이다. 어쩌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젓은 오직 군산에서만 난다. 그것도 첫눈이 내린 뒤, 두 번째 장날이 되는 날쯤에 구할 수 있다. 군산항에서 걸어서 십분 쯤 동쪽으로 가다보면 ○○약국이 있고 약국을 오른쪽으로 돌아 일제시대 적산가옥이 즐비한 거리를 따라가다가.......(이 부분은 기억도 희미하지만 공개해도 안 될 것 같아서 생략함) ○○정미소의 뒷골목 세 번째 파란 대문집에 가면 그 젓갈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집에도 석화젓이 언제나 있는 게 아니고 첫눈이 내린 뒤 두 번째쯤 되는 장날에 운이 좋으면 구할 수 있다. 일찍 가도 소용없고 늦게 가면 남이 다 가지고 가고 없다.
이 젓갈은 군산 앞바다에서 ○킬로미터 떨어진 ○도에서 온 것이다.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먹기 위해 섬 주변의 바다에서 석화를 따서 젓을 담근다. 그런데 농사고 고기잡이고 모두 흉년이 들면 자기들이 먹으려고 담아두었던 그 젓, 석화젓을 배에 실어 군산 장날에 맞추어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이들은 수줍음이 많고 석화젓의 값을 얼마나 쳐서 받을지 몰라 원래 섬에서 살다가 군산으로 나온 사람의 집에 그 젓을 맡긴다. 그 젓이 팔리기를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그 돈으로 식구들의 양식과 옷가지 등속을 사간다.
그 젓갈을 먹으려면 섬사람들이 섬 주변의 석화를 따서 젓을 담은 해에 섬에 흉년이 들어야 한다. 섬에 사는 어느 가장이 펄펄 내리는 첫눈을 바라보며, 아무리 생각해도 겨울을 나기 어렵겠다, 젓갈이라도 팔아야 양식을 사올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눈이 사정없이 내려야 한다. 하여튼 나는 그 굴을 먹어보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자축하며 입속으로 조용히 만세를 불렀다."
근래에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을 땅을 구하러 다니는 내 친구에게 몇 년 전에 귀향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 귀향민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나도 이 땅을 살 때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싸게 샀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알고 나니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이 시골도 사실 어지간한 땅은 서울 사람들이 다 붙잡아두고 있다. 어쩌다가 시골 사람들이 농사짓던 땅이 나오면 좋은데 그것도 중간에 사람이 들면 파는 사람은 파는 사람대로, 사는 사람은 사는 사람대로 억울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서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밭을 판다고 하자. 나처럼 땅을 사서 농가를 짓고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 밭은 평당 3만 원쯤 받을 것이다. 댁처럼 전원주택이니 뭐니 하는 걸 찾으러 다니는 사람한테는, 비록 성의가 조금 있어 보이긴 하지만 서울 사람은 서울 사람이니 평당 5만 원은 받는다. 심술을 부리거나 텃세를 하는 게 아니라 당신 같은 사람은 우리보다 돈이 많고 땅이 마음에 들면 그 돈을 아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에 서울에서 한 번 와보지도 않고 땅만 사놓은 다음에, 같은 서울에서 임자가 나서면 크게 부풀려서 한 몫 보려고 한다면 이 땅 생긴 걸로 봐서 7만원은 줘야할 게다. 사는 데도 부동산 업자를 끼고 사야 하고 나중에 팔 때도 부동산 업자를 끼워야 하는데 그 사람들, 자기들끼리 서류만 보고 사고 팔며 값만 올려놓는다. 시골에서는 마을 이장이 부동산 중개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가 살 것처럼 3만 원에 사가지고 하루만에 어벙한 외지인한테 7만 원에 팔아먹고 이사를 간 사람도 있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실수요자인 당신이 좋은 땅을 싸게 잡을 수가 있느냐. 우선 첫눈이 내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땅에 풀이나 곡식, 나무가 서 있으면 모양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첫눈이 내릴 때쯤이 되어야 풀도 다 말라죽고 나뭇잎도 떨어져서 땅의 생김새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눈이 내려야 좋은 땅이 나온다. 농협에 가면 농부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대부계가 있다. 내가 아는 대부계는 아주 똑똑한 젊은 친구인데 일단 농부들에게 대출을 해주면 영원히 못 돌려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알다시피 요즘 농사가 농사인가. 첫눈이 내리면 정말 농부들 허파가 갑갑해진다. 앞날이 보이지 않으니 땅을 쥐고 있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계에서 매일 전화를 해서 융자금 상환하라고 독촉을 해대면 너도 나도 땅을 내놓게 된다. 바로 그런 땅을 잡아야 한다. 대부계를 잘 사귀어 두었다가 좋은 땅이 나올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당장 농부와 담판을 지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현금을 가지고 가서 그날 계약을 끝내야 한다는 거다. 농부들은 현금을 보면 절대 안 팔고는 못 배긴다. 농협 입장에서는 농부가 파산해서 그 땅 경매에 넘어가면 시간 깨지고 욕 먹어가며 제 값 못 받는다. 똑똑한 대부계는 실수요자와 농부를 잘 연결해서 대출금을 잘 회수한다. 실수요자는 싸게 살 수 있어서 다행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농부? 농부는 앞으로 어쩔지 잘 모르겠네, 땅도 없이 앞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을동."
올해 첫눈이 왔던가. 첫눈이 오면 짐승들의 첫발자국이 찍힌 눈 덮인 빈 들판에 서 보리라 다짐했는데.
성석제(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생. 86년에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그 해에 「문학사상」을 통해 시로 등단하여 시집으로 「낯선 길에 묻다」, 「검은 암소의 천국」을 냈다. 94년부터 소설과 산문을 쓰기 시작, 짧은소설을 모은 책으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재미나는 인생」을 냈고 중단편집으로 「새가 되었네」,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호랑이를 봤다」, 「홀림」을 냈다. 장편소설로는 「왕을 찾아서」, 「궁전의 새」, 「순정」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동서문학상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십여년 전에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미식가 한 사람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러분은 석화젓이라는 젓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굴을 한자로 석화(石花)라고 한다. 생굴로 담은 젓이 굴젓이고 굴의 껍질을 벗기고 짜지 않게 젓을 담은 뒤 삭으려 할 때에 고춧가루나 마늘 따위를 쓴 게 어리굴젓이다. 어리굴젓은 충청도 서산, 당진, 예산이 유명한데 특히 서산 간월도에서 생산된 것은 왕에게 올리는 진상품으로 썼다고 전해진다.
그나저나 석화젓은 굴젓이 아니다. 어리굴젓은 더더구나 아니다. 석화가 굴인데 왜 석화젓이 굴젓이 아니냐.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는 참이다. 이 석화젓은 내가 분류한 젓갈의 서열에 따르더라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단히 뛰어난 젓갈이다. 어쩌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젓은 오직 군산에서만 난다. 그것도 첫눈이 내린 뒤, 두 번째 장날이 되는 날쯤에 구할 수 있다. 군산항에서 걸어서 십분 쯤 동쪽으로 가다보면 ○○약국이 있고 약국을 오른쪽으로 돌아 일제시대 적산가옥이 즐비한 거리를 따라가다가.......(이 부분은 기억도 희미하지만 공개해도 안 될 것 같아서 생략함) ○○정미소의 뒷골목 세 번째 파란 대문집에 가면 그 젓갈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집에도 석화젓이 언제나 있는 게 아니고 첫눈이 내린 뒤 두 번째쯤 되는 장날에 운이 좋으면 구할 수 있다. 일찍 가도 소용없고 늦게 가면 남이 다 가지고 가고 없다.
이 젓갈은 군산 앞바다에서 ○킬로미터 떨어진 ○도에서 온 것이다.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먹기 위해 섬 주변의 바다에서 석화를 따서 젓을 담근다. 그런데 농사고 고기잡이고 모두 흉년이 들면 자기들이 먹으려고 담아두었던 그 젓, 석화젓을 배에 실어 군산 장날에 맞추어 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이들은 수줍음이 많고 석화젓의 값을 얼마나 쳐서 받을지 몰라 원래 섬에서 살다가 군산으로 나온 사람의 집에 그 젓을 맡긴다. 그 젓이 팔리기를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그 돈으로 식구들의 양식과 옷가지 등속을 사간다.
그 젓갈을 먹으려면 섬사람들이 섬 주변의 석화를 따서 젓을 담은 해에 섬에 흉년이 들어야 한다. 섬에 사는 어느 가장이 펄펄 내리는 첫눈을 바라보며, 아무리 생각해도 겨울을 나기 어렵겠다, 젓갈이라도 팔아야 양식을 사올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눈이 사정없이 내려야 한다. 하여튼 나는 그 굴을 먹어보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자축하며 입속으로 조용히 만세를 불렀다."
근래에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을 땅을 구하러 다니는 내 친구에게 몇 년 전에 귀향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 귀향민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나도 이 땅을 살 때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싸게 샀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알고 나니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이 시골도 사실 어지간한 땅은 서울 사람들이 다 붙잡아두고 있다. 어쩌다가 시골 사람들이 농사짓던 땅이 나오면 좋은데 그것도 중간에 사람이 들면 파는 사람은 파는 사람대로, 사는 사람은 사는 사람대로 억울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를 들어서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밭을 판다고 하자. 나처럼 땅을 사서 농가를 짓고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 밭은 평당 3만 원쯤 받을 것이다. 댁처럼 전원주택이니 뭐니 하는 걸 찾으러 다니는 사람한테는, 비록 성의가 조금 있어 보이긴 하지만 서울 사람은 서울 사람이니 평당 5만 원은 받는다. 심술을 부리거나 텃세를 하는 게 아니라 당신 같은 사람은 우리보다 돈이 많고 땅이 마음에 들면 그 돈을 아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에 서울에서 한 번 와보지도 않고 땅만 사놓은 다음에, 같은 서울에서 임자가 나서면 크게 부풀려서 한 몫 보려고 한다면 이 땅 생긴 걸로 봐서 7만원은 줘야할 게다. 사는 데도 부동산 업자를 끼고 사야 하고 나중에 팔 때도 부동산 업자를 끼워야 하는데 그 사람들, 자기들끼리 서류만 보고 사고 팔며 값만 올려놓는다. 시골에서는 마을 이장이 부동산 중개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가 살 것처럼 3만 원에 사가지고 하루만에 어벙한 외지인한테 7만 원에 팔아먹고 이사를 간 사람도 있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실수요자인 당신이 좋은 땅을 싸게 잡을 수가 있느냐. 우선 첫눈이 내리기를 기다려야 한다. 땅에 풀이나 곡식, 나무가 서 있으면 모양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첫눈이 내릴 때쯤이 되어야 풀도 다 말라죽고 나뭇잎도 떨어져서 땅의 생김새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눈이 내려야 좋은 땅이 나온다. 농협에 가면 농부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대부계가 있다. 내가 아는 대부계는 아주 똑똑한 젊은 친구인데 일단 농부들에게 대출을 해주면 영원히 못 돌려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알다시피 요즘 농사가 농사인가. 첫눈이 내리면 정말 농부들 허파가 갑갑해진다. 앞날이 보이지 않으니 땅을 쥐고 있어 봐야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게다가 대부계에서 매일 전화를 해서 융자금 상환하라고 독촉을 해대면 너도 나도 땅을 내놓게 된다. 바로 그런 땅을 잡아야 한다. 대부계를 잘 사귀어 두었다가 좋은 땅이 나올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당장 농부와 담판을 지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현금을 가지고 가서 그날 계약을 끝내야 한다는 거다. 농부들은 현금을 보면 절대 안 팔고는 못 배긴다. 농협 입장에서는 농부가 파산해서 그 땅 경매에 넘어가면 시간 깨지고 욕 먹어가며 제 값 못 받는다. 똑똑한 대부계는 실수요자와 농부를 잘 연결해서 대출금을 잘 회수한다. 실수요자는 싸게 살 수 있어서 다행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농부? 농부는 앞으로 어쩔지 잘 모르겠네, 땅도 없이 앞으로 어떻게 농사를 지을동."
올해 첫눈이 왔던가. 첫눈이 오면 짐승들의 첫발자국이 찍힌 눈 덮인 빈 들판에 서 보리라 다짐했는데.
성석제(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생. 86년에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그 해에 「문학사상」을 통해 시로 등단하여 시집으로 「낯선 길에 묻다」, 「검은 암소의 천국」을 냈다. 94년부터 소설과 산문을 쓰기 시작, 짧은소설을 모은 책으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재미나는 인생」을 냈고 중단편집으로 「새가 되었네」,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호랑이를 봤다」, 「홀림」을 냈다. 장편소설로는 「왕을 찾아서」, 「궁전의 새」, 「순정」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동서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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