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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자유 제1호
2002년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계의 가장 큰 화두는 ‘색깔론’이다. 각당의 예비대선후보들이 보수와 개혁, 진보의 색깔을 들고 자신이 가장 적합한 대선후보임을 주장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중심 이슈가 되는 색깔론이지만 2002년 정치판에서는 여야를 넘어 여당의 대선후보경선에서도 색깔론이 중심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색깔론은 IMF와 같은 특별한 이슈가 없는 2002년 대선에서 거의 모든 선거에서처럼 향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보수와 개혁, 그리고 혁신(혁명)이라는 색깔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것은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가장 근본적인 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경제정책의 방향이나 문화정책, 사회정책과 같은 모든 정책의 방향은 정권의 색깔이 보수냐 개혁이냐 아니면 혁신이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어떤 색깔의 정권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것은 현재의 정세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근본적으로 보수와 개혁, 혁신(혁명)이라는 색깔은 근본적으로 좋고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시대적 상황에 어느 것이 맞느냐 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어느 시대건 보수가 필요한 시대가 있고 개혁이 또는 혁신 또는 혁명이 필요한 시대가 있다. 문제는 그 시대적 상황을 잘 파악해서 적합한 색깔을 선택해야만 그 시대에 그 국민과 나라는 약(弱)과 쇠(衰)가 아니라 강(强)과 성(盛)을 누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정치권의 문제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회 또한 각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보수와 개혁, 혁신의 세 가지 색깔이 필요하며 그 시대 교회가 흥하느냐 쇠하느냐는 그 시대에 교회가 지녀야할 색깔을 제대로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 지난 반세기 동안 급속한 성장과 부흥기를 맞이하였던 한국 교회가 위기상황에 놓여있음에 대해서 모두들 공감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 교회가 이 시대에 맞는 색깔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한국교회가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 다시 한 번 부흥의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개혁과 혁신이라는 세 가지 색깔 중에서 이 시대에 맞는 한국교회의 색깔을 찾아야 할 것이다.
본론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가져야 할 색깔은 무엇인가?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한 마디로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이 어떠한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내리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보수와 개혁과 혁신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 의미있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첫째로 보수와 개혁과 혁신은 각각 어떠한 방식으로 시대를 움직여 나가는 가에 대한 분석과 둘째로 현재 한국교회 상황은 어떠한 가를 분석한다면 현재 한국교회 상황에 적합한 색깔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시대를 움직이는 세 가지 방식
모든 시대를 움직이는 방식은 보수와 개혁, 혁신(혁명)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각 방식은 그 시대의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적합한 기능을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로 보수는 격변기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사회 구조의 초기적 불안으로부터 사회를 안정시키고, 안정된 사회를 지켜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보수는 사회 구성원들간에 대립과 갈등보다는 일정한 원칙에 복종하고 일치하여 단일화된 명령체계와 조직체계, 일사분란한 행동원칙을 가장 중요시하며 바람직한 도덕규범의 중심에 두게 된다.
둘째는 개혁으로 일정한 제도와 규범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가 일정한 기간을 지나면서 안정기를 지나 타성에 젖어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고 지나치게 제도화, 조직화가 됨으로 다양하게 분출되는 구성원의 요구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폐단과 문제점이 발생하게 될 때 이를 수정보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개혁은 기존의 사회구조를 유지하되,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고정된 구조의 틀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정체된 구조의 틀로 인해 발생한 무사안일과 부패를 잘라내고 새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모든 정책과 행동의 원칙을 정한다.
셋째가 혁신(혁명)으로 기존의 구조가 완전하게 관료화, 고형화되고 사회의 기득권층이 한 사회의 절대적인 권력과 경제적인 부를 장악함으로 단순한 개혁만으로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를 바로 잡을 수 없을 때, 또한 권력의 일방적인 장악으로 인해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세력이 됨으로 스스로의 자발적인 개혁의 능력을 상실했을 때 사회를 유지하되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제도와 구조를 전면혁신하며 특별히 권력과 경제적 기득권의 관계를 완전히 재분배하게 된다.
2. 그러면 지금 이 시대의 한국교회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나?
지금 한국사회는 거대한 사회적 변이가 진행되고 있다. 과거와는 확연하게 다른 국민들의 높은 자아의식은 정치적으로 소홀했던 국민 각자의 정치적 주권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갈수록 활동의 영역과 강도가 높아가는 NGO의 역할은 이런 새로운 정치적 시민의식의 성숙을 대변하고 있다. 가치관에서는 과거의 유교적 가치관에서 개인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가부장적인 권위보다 합리적 권위를 중시하는 서구적 가치관으로 중심이동을 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에서 부의 재분배를 통한 상대적인 박탈감을 해소하고 삶의 가치와 질을 추구하는 생활의 문제가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이는 한국 교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유교적 가부장제의 영향 아래 목회자의 절대적인 권위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피라미드형으로 이루어진 권력구조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일반 교인들은 목사의 권위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을 유일한 미덕으로 생각해왔다. 또한 한국 교회가 부흥의 가장 큰 무기로 삼았던 경제적 축복의 메시지는 급속한 경제적 성장의 와중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도약에 대한 교인들의 관심을 충족시켜주어 교회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헌신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거대한 사회적 변이는 교회의 상황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교인들은 더 이상 목회자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합리적인 지도력을 요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축복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 충족된 경제적 요구에 의해 삶의 가치와 질을 추구하게 되면서 교회에 대해 단순한 물질적 축복보다는 도덕적 요구와 사회적 기능을 통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종교적 가치와 질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기존의 종교적 권력을 지키려는 세력과의 마찰과 그동안 도덕적 욕구에 대해 충족시켜주지 못한 목회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교회 안에 갈등이 심화되고 심지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교회의 중심인 30-40대로부터 시작하여 자의식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청년, 대학생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 안에서 30-40대들이 사라지고 있고, 젊은이들은 급격하게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부흥하는 몇몇 교회들을 살펴보면 이런 문제에 대해 재빨리 대처함으로 기존 교회에 등을 돌린 교인들이 수평이동함으로 부흥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 한국 교회의 상황은 분명 기존의 구조를 유지하고 견고히 해나가는 보수의 방식을 유지할 때가 아님은 분명하다. 물론 현재 한국 교회에서 보수에 관한 목소리가 여전히 드세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종교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라는 것을 주목한다면 그런 주장은 변화의 시대에 권력의 상실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종교 권력가들의 자기방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목소리가 높아져 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위기가 다가오고 있고, 현재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한국 교회를 지켜낼 수 없다는 생각을 더 확고히 할 뿐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개혁과 혁명이다. 과연 이 둘 중에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개혁과 혁명의 정확한 분기점을 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역사에 발생하였던 개혁과 혁명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황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기독교의 개혁은 여러번, 때때마다 있어왔지만 종교혁명은 몇 번 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종교혁명 사건과 오늘날 한국교회 상황을 비교해본다면 우리는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경에서도 종교혁명의 예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우상을 부수고 산당을 제거하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시켰던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역대하30,31장)은 종교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명확한 역사적 사건을 살펴보면 종교라는 사회적 틀만 두고 기존의 모든 종교적 구조와 권력, 교리를 모조리 뒤엎어버리고 새로운 종교적 형태를 만들어낸 두 번의 종교혁명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유대교를 뒤엎어버린 예수의 제 1차 종교혁명과 로마카톨릭을 엎어버린 루터로부터 촉발된 종교혁명이다. 어떤 사람은 루터의 종교개혁이라고 부르지만 개혁이란 기존 사회의 틀과 구조를 인정하고 그 속에 발생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고치는 것이란 점에서 기존의 로마카톨릭의 교리와 체계를 전면 부정한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의 주장과 행동은 사실상 종교혁명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역사 속에 발생했던 두 번의 종교변혁을 간단히 살펴보자.
1) 제1의 종교변혁(예수의 종교변혁)
▶ 잘못된 유대주의의 타파(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아니라 모든 이방 민족들까지도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임을 설파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이 지상에서의 메시야 왕국 건설이 아니라 종말적인 하나님 나라 건설임을 가르치심)
▶ 종교형식주의의 타파(율법에 얽매인 예배와 안식일 준수를 비난하시고 신령과 진정이 담긴 예배를 드릴 것을 요구하시고, 사람들의 멍에가 되는 율법주의를 배격하시고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를 가르치심)
▶ 종교권력가들의 타파(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일부 종교 권력가들에 의해 마음대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민중들의 의사가 철저히 배제되는 것에 대해 비난하고 모든 택함받은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함을 주장하심)
▶ 종교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말로는 율법을 외치며 뒤로는 과부의 재산을 뺏고, 뇌물을 받고, 성적으로 타락한 행음을 일삼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으며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심)
2) 제2의 종교변혁(루터의 종교변혁)
“오직 믿음으로”
▶ 권력구조의 타파: 구원을 얻기 위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성례전을 금지할 권한과 고해성사를 통해 죄의 사면권을 사제들이 독점함으로 말미암아 권력을 독점하고 특히 교황의 무오설을 통해 절대적 권력장악을 확보한 로마 카톨릭의 권력독점에 대해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모든 자들이 그의 피를 의지하고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만인사제주의를 주장함으로 로마 카톨릭의 권력독점을 공격함.
▶ 종교형식주의의 타파: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할 말씀을 사제들이 독점하고 성도들을 오직 사제가 해석해주는 말씀만을 듣고 철저하게 예전이 되어버린 미사에 참석해서 그리스도의 진짜 피와 살이 된다는 성례전에 참석함으로 구원을 보장받는다고 가르침으로 미사를 형식적이고 예전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하였으며, 세례, 혼인, 견진, 고해, 병자, 신품, 성체 등의 7가지 성사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강조함으로 철저하게 신앙을 예전화 시킨 로마 카톨릭을 공박하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받으며, 말씀으로 구원에 이름을 주장함으로 신앙을 형식적 예전이 아니라 개인의 신앙적 결단과 하나님과의 영적 만남으로 나아가게 함. 또한 바른 신앙과 경건함보다 화려한 성당축조를 통해 교회의 권위를 높이려는 외형주의에 대한 반격.
▶ 종교적 부패 타파: 교황을 비롯한 사제들이 사제직 매매와 고리대금업을 통해 재산을 축적하고, 축첩과 같이 성적으로 타락했으며, 성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는 행위 등에 대해 비판하며 하나님 앞에 신앙적, 도덕적으로 순결할 것을 요구함.
3)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황
▶ 종교형식주의의 팽배(많은 교회가 예배에 대한 감격이 없고,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기대와 감사와 헌신을 위해 예배에 참석하는 것보다 종교적인 의무감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기본적인 십일조와 주일헌금을 드림으로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종교적 의무를 이행했다고 생각한다. 심하게 말하면 예배와 헌금은 하나님의 징계를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제에 의해 전적으로 집전되고 말씀이 선포되는 카톨릭의 미사처럼 목사에 의해 전적으로 주도되고, 목사의 말씀이 철저하게 중심이 되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예배에 주역으로 참여할 틈이 전혀없이 그저 구경꾼으로 전락시켜 버린 목회자의 잘못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교회의 권위와 위엄을 멋있고 화려하게 지은 교회건물과 목사가 타고 다니는 차량의 크기로 표현하려는 외피주의.)
▶ 기득권층의 권력독점(지금 한국 교회의 대부분은 교회의 의사 결정에 평신도들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 예전에는 목사 한 사람에 의해 교회의 모든 일이 결정되어 왔으나 요즘에는 그동안 목사의 절대적인 권력에 눌려왔던 장로들이 자신들도 권력의 지분을 가지기 위해 목사에게 반기를 들고, 개척 1세대였던 목사들이 은퇴하는 시점부터 오히려 장로들이 후임 목사보다 많은 권력의 지분을 누리게 되었다. 어쨌든 모든 경우를 합쳐도 교회의 권력은 목사와 몇 명의 장로들에 의해 완전히 독점되어 평신도들은 그저 그들에 의해 결정된 것에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실정이다.)
▶ 가치관의 변질(오늘날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대부분이 신앙을 통하여 물질적인 축복과 세상에서의 출세와 성공,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얻게 될 것이라는 기복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교인들의 기도 또한 그런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헌금을 드릴 때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헌신의 표현이 아니라 헌금을 통해 되돌아올 하나님의 물질적 축복을 기대하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돈놓고 돈먹는 장사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원론적인 가치관으로 인해 교회 안에서는 교인이고 교회 밖을 나가면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생활을 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도덕적 타락: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범죄에 기독교인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과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이유의 대부분이 사랑이 없고, 이기적이고, 오히려 더 부패했다는 지적은 한국교회의 심각한 도덕적 타락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지도자인 목사의 도덕적 타락이 위험 수위에 달했음을 볼 수 있다. 청빈해야 할 목사가 보다 넓은 아파트와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많은 보수를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격적으로도 성도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심지어 성적으로 타락한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총회와 노회에서 권력을 얻기 위해 수십억원의 돈까지 뿌리는 부정과 타락선거를 서슴치 않는(그 선거자금을 위해 교인들에게 개인적인 헌금을 강요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4) 각 혁명의 시대의 공통점
▶ 종교 지도자의 타락: 물질적 탐욕과 도덕적 해이
▶ 종교 형식의 극대화: 본질이 없는 종교적 엄숙성과 외피의 극대화
▶ 종교 권력의 폐쇄화: 언로를 막고 최상위의 몇몇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됨
결론
이상과 같이 역사상 일어났던 두 번의 종교혁명과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지금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보수나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재 교회의 곳곳에서 개혁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고 있으나 실제로 교회 자체 내에서의 개혁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현재 교회의 권력구조상 개혁을 주도해야 할 주체세력이 사실상 개혁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기존의 권력구조나 예배형식, 가치관 등을 그대로 유지하고서 부분적인 개혁을 한다고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교회혁명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교회혁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현재의 교회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진 세력들, 즉 평신도들이 교회혁명의 주체세력으로 일어서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변화할 수 있으며, 그런 변화를 통해서 현재의 위기로부터 탈출하여 역사 속에서 다시 한 번 부흥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2002년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계의 가장 큰 화두는 ‘색깔론’이다. 각당의 예비대선후보들이 보수와 개혁, 진보의 색깔을 들고 자신이 가장 적합한 대선후보임을 주장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중심 이슈가 되는 색깔론이지만 2002년 정치판에서는 여야를 넘어 여당의 대선후보경선에서도 색깔론이 중심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색깔론은 IMF와 같은 특별한 이슈가 없는 2002년 대선에서 거의 모든 선거에서처럼 향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보수와 개혁, 그리고 혁신(혁명)이라는 색깔이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는 것은 그 시대를 이끌어가는 가장 근본적인 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즉, 경제정책의 방향이나 문화정책, 사회정책과 같은 모든 정책의 방향은 정권의 색깔이 보수냐 개혁이냐 아니면 혁신이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어떤 색깔의 정권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것은 현재의 정세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근본적으로 보수와 개혁, 혁신(혁명)이라는 색깔은 근본적으로 좋고 나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시대적 상황에 어느 것이 맞느냐 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어느 시대건 보수가 필요한 시대가 있고 개혁이 또는 혁신 또는 혁명이 필요한 시대가 있다. 문제는 그 시대적 상황을 잘 파악해서 적합한 색깔을 선택해야만 그 시대에 그 국민과 나라는 약(弱)과 쇠(衰)가 아니라 강(强)과 성(盛)을 누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정치권의 문제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교회 또한 각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보수와 개혁, 혁신의 세 가지 색깔이 필요하며 그 시대 교회가 흥하느냐 쇠하느냐는 그 시대에 교회가 지녀야할 색깔을 제대로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 지난 반세기 동안 급속한 성장과 부흥기를 맞이하였던 한국 교회가 위기상황에 놓여있음에 대해서 모두들 공감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 교회가 이 시대에 맞는 색깔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한국교회가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 다시 한 번 부흥의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개혁과 혁신이라는 세 가지 색깔 중에서 이 시대에 맞는 한국교회의 색깔을 찾아야 할 것이다.
본론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가져야 할 색깔은 무엇인가? 어떻게 찾을 것인가? 한 마디로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이 어떠한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내리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보수와 개혁과 혁신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 의미있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첫째로 보수와 개혁과 혁신은 각각 어떠한 방식으로 시대를 움직여 나가는 가에 대한 분석과 둘째로 현재 한국교회 상황은 어떠한 가를 분석한다면 현재 한국교회 상황에 적합한 색깔이 무엇인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시대를 움직이는 세 가지 방식
모든 시대를 움직이는 방식은 보수와 개혁, 혁신(혁명)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각 방식은 그 시대의 상황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적합한 기능을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로 보수는 격변기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사회 구조의 초기적 불안으로부터 사회를 안정시키고, 안정된 사회를 지켜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보수는 사회 구성원들간에 대립과 갈등보다는 일정한 원칙에 복종하고 일치하여 단일화된 명령체계와 조직체계, 일사분란한 행동원칙을 가장 중요시하며 바람직한 도덕규범의 중심에 두게 된다.
둘째는 개혁으로 일정한 제도와 규범에 의해 유지되는 사회가 일정한 기간을 지나면서 안정기를 지나 타성에 젖어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고 지나치게 제도화, 조직화가 됨으로 다양하게 분출되는 구성원의 요구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폐단과 문제점이 발생하게 될 때 이를 수정보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개혁은 기존의 사회구조를 유지하되,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고정된 구조의 틀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정체된 구조의 틀로 인해 발생한 무사안일과 부패를 잘라내고 새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모든 정책과 행동의 원칙을 정한다.
셋째가 혁신(혁명)으로 기존의 구조가 완전하게 관료화, 고형화되고 사회의 기득권층이 한 사회의 절대적인 권력과 경제적인 부를 장악함으로 단순한 개혁만으로 사회의 불합리한 구조를 바로 잡을 수 없을 때, 또한 권력의 일방적인 장악으로 인해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세력이 됨으로 스스로의 자발적인 개혁의 능력을 상실했을 때 사회를 유지하되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제도와 구조를 전면혁신하며 특별히 권력과 경제적 기득권의 관계를 완전히 재분배하게 된다.
2. 그러면 지금 이 시대의 한국교회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나?
지금 한국사회는 거대한 사회적 변이가 진행되고 있다. 과거와는 확연하게 다른 국민들의 높은 자아의식은 정치적으로 소홀했던 국민 각자의 정치적 주권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갈수록 활동의 영역과 강도가 높아가는 NGO의 역할은 이런 새로운 정치적 시민의식의 성숙을 대변하고 있다. 가치관에서는 과거의 유교적 가치관에서 개인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가부장적인 권위보다 합리적 권위를 중시하는 서구적 가치관으로 중심이동을 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에서 부의 재분배를 통한 상대적인 박탈감을 해소하고 삶의 가치와 질을 추구하는 생활의 문제가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이는 한국 교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유교적 가부장제의 영향 아래 목회자의 절대적인 권위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피라미드형으로 이루어진 권력구조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일반 교인들은 목사의 권위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을 유일한 미덕으로 생각해왔다. 또한 한국 교회가 부흥의 가장 큰 무기로 삼았던 경제적 축복의 메시지는 급속한 경제적 성장의 와중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도약에 대한 교인들의 관심을 충족시켜주어 교회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헌신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거대한 사회적 변이는 교회의 상황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교인들은 더 이상 목회자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합리적인 지도력을 요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축복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 충족된 경제적 요구에 의해 삶의 가치와 질을 추구하게 되면서 교회에 대해 단순한 물질적 축복보다는 도덕적 요구와 사회적 기능을 통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종교적 가치와 질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기존의 종교적 권력을 지키려는 세력과의 마찰과 그동안 도덕적 욕구에 대해 충족시켜주지 못한 목회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교회 안에 갈등이 심화되고 심지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교회의 중심인 30-40대로부터 시작하여 자의식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청년, 대학생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 안에서 30-40대들이 사라지고 있고, 젊은이들은 급격하게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부흥하는 몇몇 교회들을 살펴보면 이런 문제에 대해 재빨리 대처함으로 기존 교회에 등을 돌린 교인들이 수평이동함으로 부흥한 것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 한국 교회의 상황은 분명 기존의 구조를 유지하고 견고히 해나가는 보수의 방식을 유지할 때가 아님은 분명하다. 물론 현재 한국 교회에서 보수에 관한 목소리가 여전히 드세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종교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라는 것을 주목한다면 그런 주장은 변화의 시대에 권력의 상실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 종교 권력가들의 자기방어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목소리가 높아져 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위기가 다가오고 있고, 현재의 모습으로는 도저히 한국 교회를 지켜낼 수 없다는 생각을 더 확고히 할 뿐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개혁과 혁명이다. 과연 이 둘 중에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개혁과 혁명의 정확한 분기점을 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역사에 발생하였던 개혁과 혁명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황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역사상 기독교의 개혁은 여러번, 때때마다 있어왔지만 종교혁명은 몇 번 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종교혁명 사건과 오늘날 한국교회 상황을 비교해본다면 우리는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성경에서도 종교혁명의 예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우상을 부수고 산당을 제거하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시켰던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역대하30,31장)은 종교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명확한 역사적 사건을 살펴보면 종교라는 사회적 틀만 두고 기존의 모든 종교적 구조와 권력, 교리를 모조리 뒤엎어버리고 새로운 종교적 형태를 만들어낸 두 번의 종교혁명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유대교를 뒤엎어버린 예수의 제 1차 종교혁명과 로마카톨릭을 엎어버린 루터로부터 촉발된 종교혁명이다. 어떤 사람은 루터의 종교개혁이라고 부르지만 개혁이란 기존 사회의 틀과 구조를 인정하고 그 속에 발생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고치는 것이란 점에서 기존의 로마카톨릭의 교리와 체계를 전면 부정한 루터와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의 주장과 행동은 사실상 종교혁명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역사 속에 발생했던 두 번의 종교변혁을 간단히 살펴보자.
1) 제1의 종교변혁(예수의 종교변혁)
▶ 잘못된 유대주의의 타파(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 아니라 모든 이방 민족들까지도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임을 설파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이 지상에서의 메시야 왕국 건설이 아니라 종말적인 하나님 나라 건설임을 가르치심)
▶ 종교형식주의의 타파(율법에 얽매인 예배와 안식일 준수를 비난하시고 신령과 진정이 담긴 예배를 드릴 것을 요구하시고, 사람들의 멍에가 되는 율법주의를 배격하시고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를 가르치심)
▶ 종교권력가들의 타파(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일부 종교 권력가들에 의해 마음대로 모든 것이 결정되고 민중들의 의사가 철저히 배제되는 것에 대해 비난하고 모든 택함받은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함을 주장하심)
▶ 종교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말로는 율법을 외치며 뒤로는 과부의 재산을 뺏고, 뇌물을 받고, 성적으로 타락한 행음을 일삼고,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으며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책망하심)
2) 제2의 종교변혁(루터의 종교변혁)
“오직 믿음으로”
▶ 권력구조의 타파: 구원을 얻기 위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성례전을 금지할 권한과 고해성사를 통해 죄의 사면권을 사제들이 독점함으로 말미암아 권력을 독점하고 특히 교황의 무오설을 통해 절대적 권력장악을 확보한 로마 카톨릭의 권력독점에 대해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모든 자들이 그의 피를 의지하고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만인사제주의를 주장함으로 로마 카톨릭의 권력독점을 공격함.
▶ 종교형식주의의 타파: 예배의 중심이 되어야 할 말씀을 사제들이 독점하고 성도들을 오직 사제가 해석해주는 말씀만을 듣고 철저하게 예전이 되어버린 미사에 참석해서 그리스도의 진짜 피와 살이 된다는 성례전에 참석함으로 구원을 보장받는다고 가르침으로 미사를 형식적이고 예전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하였으며, 세례, 혼인, 견진, 고해, 병자, 신품, 성체 등의 7가지 성사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고 강조함으로 철저하게 신앙을 예전화 시킨 로마 카톨릭을 공박하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받으며, 말씀으로 구원에 이름을 주장함으로 신앙을 형식적 예전이 아니라 개인의 신앙적 결단과 하나님과의 영적 만남으로 나아가게 함. 또한 바른 신앙과 경건함보다 화려한 성당축조를 통해 교회의 권위를 높이려는 외형주의에 대한 반격.
▶ 종교적 부패 타파: 교황을 비롯한 사제들이 사제직 매매와 고리대금업을 통해 재산을 축적하고, 축첩과 같이 성적으로 타락했으며, 성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는 행위 등에 대해 비판하며 하나님 앞에 신앙적, 도덕적으로 순결할 것을 요구함.
3)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황
▶ 종교형식주의의 팽배(많은 교회가 예배에 대한 감격이 없고,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기대와 감사와 헌신을 위해 예배에 참석하는 것보다 종교적인 의무감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기본적인 십일조와 주일헌금을 드림으로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종교적 의무를 이행했다고 생각한다. 심하게 말하면 예배와 헌금은 하나님의 징계를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수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제에 의해 전적으로 집전되고 말씀이 선포되는 카톨릭의 미사처럼 목사에 의해 전적으로 주도되고, 목사의 말씀이 철저하게 중심이 되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예배에 주역으로 참여할 틈이 전혀없이 그저 구경꾼으로 전락시켜 버린 목회자의 잘못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교회의 권위와 위엄을 멋있고 화려하게 지은 교회건물과 목사가 타고 다니는 차량의 크기로 표현하려는 외피주의.)
▶ 기득권층의 권력독점(지금 한국 교회의 대부분은 교회의 의사 결정에 평신도들의 의견이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 예전에는 목사 한 사람에 의해 교회의 모든 일이 결정되어 왔으나 요즘에는 그동안 목사의 절대적인 권력에 눌려왔던 장로들이 자신들도 권력의 지분을 가지기 위해 목사에게 반기를 들고, 개척 1세대였던 목사들이 은퇴하는 시점부터 오히려 장로들이 후임 목사보다 많은 권력의 지분을 누리게 되었다. 어쨌든 모든 경우를 합쳐도 교회의 권력은 목사와 몇 명의 장로들에 의해 완전히 독점되어 평신도들은 그저 그들에 의해 결정된 것에 무조건 따라야만 하는 실정이다.)
▶ 가치관의 변질(오늘날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의 대부분이 신앙을 통하여 물질적인 축복과 세상에서의 출세와 성공, 자녀들의 대학 진학을 얻게 될 것이라는 기복주의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교인들의 기도 또한 그런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헌금을 드릴 때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헌신의 표현이 아니라 헌금을 통해 되돌아올 하나님의 물질적 축복을 기대하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돈놓고 돈먹는 장사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원론적인 가치관으로 인해 교회 안에서는 교인이고 교회 밖을 나가면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생활을 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도덕적 타락: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많은 범죄에 기독교인들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과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이유의 대부분이 사랑이 없고, 이기적이고, 오히려 더 부패했다는 지적은 한국교회의 심각한 도덕적 타락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지도자인 목사의 도덕적 타락이 위험 수위에 달했음을 볼 수 있다. 청빈해야 할 목사가 보다 넓은 아파트와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많은 보수를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격적으로도 성도들에게 존경받지 못하고, 심지어 성적으로 타락한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총회와 노회에서 권력을 얻기 위해 수십억원의 돈까지 뿌리는 부정과 타락선거를 서슴치 않는(그 선거자금을 위해 교인들에게 개인적인 헌금을 강요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너무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4) 각 혁명의 시대의 공통점
▶ 종교 지도자의 타락: 물질적 탐욕과 도덕적 해이
▶ 종교 형식의 극대화: 본질이 없는 종교적 엄숙성과 외피의 극대화
▶ 종교 권력의 폐쇄화: 언로를 막고 최상위의 몇몇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됨
결론
이상과 같이 역사상 일어났던 두 번의 종교혁명과 오늘날 한국 교회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지금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보수나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재 교회의 곳곳에서 개혁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고 있으나 실제로 교회 자체 내에서의 개혁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현재 교회의 권력구조상 개혁을 주도해야 할 주체세력이 사실상 개혁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기존의 권력구조나 예배형식, 가치관 등을 그대로 유지하고서 부분적인 개혁을 한다고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교회혁명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교회혁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현재의 교회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진 세력들, 즉 평신도들이 교회혁명의 주체세력으로 일어서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변화할 수 있으며, 그런 변화를 통해서 현재의 위기로부터 탈출하여 역사 속에서 다시 한 번 부흥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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