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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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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혼여행차 제주도엘 갔다가 우연히 <제주 기독신문>을 읽게되었다. 그 신문에 난 기사 가운데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슈퍼를 운영한다는 어느 여 집사님의 글이었다. 그 글은 천 원짜리 지폐를 이용하여 거기에 붉은 글씨로 "예수 믿으면 천국 안 믿으면 지옥"이라고 고무인을 찍어 전도하는 이들을 꾸짖고 있었다. 그 집사님은 손님에게 받은 돈 가운데 그런 돈을 발견하고는 다른 사람들이 행여 볼까봐 일부러 얼른 감추어 버리셨단다.
나는 일부 양식 없는 기독교인들의 소행이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최근에 집안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식으로 전도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널리 퍼져있음을 알게 되었다. 광주에서 미용실을 하는 누님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나도 그런 돈 가지고 있는데, 보여 줄까?" 하며 실제로 천 원짜리에 붉은 고무인이 찍힌 걸 꺼내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누님도 어찌하여 천 원짜리에까지 이렇게 고무인을 찍어 전도하는가 해서 그 돈을 간직해 두고 있었다고 했다.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극성스런 기독인들의 전도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땅에 떨어뜨리고 희화시키며 사람들이 오늘의 기독교를 싸구려 종교의 하나쯤 여기도록 만드는데 톡톡히 공헌하고 있다. 복잡한 지하철 내에서 "예수천당, 불신 지옥"을 외쳐대는 볼썽 사나운 이들과 구걸을 하는 이들까지 죄다 찬송가를 테잎을 틀고 다니며 적선을 요구하고 있고, 핸드 마이크 하나 들고 거리를 누비며 "이 세상은 멸망 길로 나가고 있으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워대는 세례 요한 뺨치게 용감한 시대의 선지자(?)들도 심심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수많은 교회들이 해마다 절기마다 '무슨 초청잔치'를 기획하여 마치 백화점 세일하듯 '복음의 사은 상품'(?)을 나눠주며 호객 경쟁을 목숨 걸고 벌이고 있지 않는가. 그러고도 전혀 부끄러워 할 줄 모르니 이 어찌된 일인가? 교회가 시장바닥이 아니고서야 이럴 순 없다.
하기야 그렇게 용기있는 이들일수록 자신들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1,16)라고 말한 사도 바울의 말씀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허나 착각하지 마시라. 바울의 말씀이 그런 뜻으로 말함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찬찬히 전후 맥락을 읽어 보라. 과연 "너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딤후4,2)는 말씀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대뽀로, 막가파식으로 예수쟁이 만들어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하나?
피로 사신 '값비싼 은혜'를 '값싼 은혜'로 둔갑시키고 '진리의 복음'을 '싸구려 복음'으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일제시대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처음 외친 최권능 목사님 당시의 전도 방식을 오늘날까지 고집해서 어찌하겠다는 건가? 시대변화에 맞춰 더욱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전도를 해야할 게 아닌가? 전도를 한다는 게 오히려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오정같이 귀가 꽉막히고 고집불통이며 상식도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느끼게 만들어서야 어디 이게 전도일까?
죄인의 괴수가 내뱉는 헛소리
http://column.daum.net/babo2002/
나는 일부 양식 없는 기독교인들의 소행이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최근에 집안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식으로 전도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널리 퍼져있음을 알게 되었다. 광주에서 미용실을 하는 누님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나도 그런 돈 가지고 있는데, 보여 줄까?" 하며 실제로 천 원짜리에 붉은 고무인이 찍힌 걸 꺼내서 보여주는 것이었다. 누님도 어찌하여 천 원짜리에까지 이렇게 고무인을 찍어 전도하는가 해서 그 돈을 간직해 두고 있었다고 했다.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극성스런 기독인들의 전도방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땅에 떨어뜨리고 희화시키며 사람들이 오늘의 기독교를 싸구려 종교의 하나쯤 여기도록 만드는데 톡톡히 공헌하고 있다. 복잡한 지하철 내에서 "예수천당, 불신 지옥"을 외쳐대는 볼썽 사나운 이들과 구걸을 하는 이들까지 죄다 찬송가를 테잎을 틀고 다니며 적선을 요구하고 있고, 핸드 마이크 하나 들고 거리를 누비며 "이 세상은 멸망 길로 나가고 있으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워대는 세례 요한 뺨치게 용감한 시대의 선지자(?)들도 심심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수많은 교회들이 해마다 절기마다 '무슨 초청잔치'를 기획하여 마치 백화점 세일하듯 '복음의 사은 상품'(?)을 나눠주며 호객 경쟁을 목숨 걸고 벌이고 있지 않는가. 그러고도 전혀 부끄러워 할 줄 모르니 이 어찌된 일인가? 교회가 시장바닥이 아니고서야 이럴 순 없다.
하기야 그렇게 용기있는 이들일수록 자신들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롬1,16)라고 말한 사도 바울의 말씀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허나 착각하지 마시라. 바울의 말씀이 그런 뜻으로 말함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찬찬히 전후 맥락을 읽어 보라. 과연 "너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딤후4,2)는 말씀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대뽀로, 막가파식으로 예수쟁이 만들어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야 하나?
피로 사신 '값비싼 은혜'를 '값싼 은혜'로 둔갑시키고 '진리의 복음'을 '싸구려 복음'으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일제시대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처음 외친 최권능 목사님 당시의 전도 방식을 오늘날까지 고집해서 어찌하겠다는 건가? 시대변화에 맞춰 더욱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전도를 해야할 게 아닌가? 전도를 한다는 게 오히려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오정같이 귀가 꽉막히고 고집불통이며 상식도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느끼게 만들어서야 어디 이게 전도일까?
죄인의 괴수가 내뱉는 헛소리
http://column.daum.net/babo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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