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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어느 날 아침,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작은애가 놀란 듯이 말했다.
“엄마! 계단에 개똥이 있어.”
“어디? 아니 이게 웬일이지?”
“응, 아랫집에 강아지가 생겼는데 그 강아지가 그랬나봐.”
딸애의 말에 내려다보니 강아지가 멀뚱하게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줄이 느슨하게 매여 있어 우리 집 계단까지 올라와 실례를 한 것이 분명했다. 아침 출근길에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줄을 조금만 짧게 매면 계단까지 올라오지 못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은근히 화가 났다.
“왜 남의 집 계단에 똥을 싸. 다음부턴 그러지 마!”
강아지가 알아듣든 말든 한 마디 톡 쏘아주고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그 후 며칠 동안 우리 집 계단에는 반갑지 않은 선물이 놓여졌다 없어지곤 했다. 아이들도 계단을 오르내릴 때 잔뜩 신경이 쓰였나 보다. 하루는 큰애가 자랑하듯 말했다.
“엄마! 학교 갔다 오는데 강아지가 또 우리 계단에 응가를 하고 있어서 발로 뻥 차버렸어요.”
“그래도 그러면 안 돼.”
“자꾸 우리 계단에 실례를 하니까 화가 나잖아요.”
엄마도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았던 큰애는 강아지를 한 번 혼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날 저녁 잠자리에 누워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작은애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 강아지똥을 모아두자. 강아지똥은 좋은 일을 하잖아.”
“무슨 말이니?”
“강아지똥은 비가 오면 녹아서 풀도 꽃피게 하잖아.”
강아지를 도울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던 아이가 권정생 님의 <강아지똥> 동화를 기억해 낸 것이다. 개학하고 얼마 후부터 병아리를 키우고 싶다고 한동안 떼를 쓰던 작은애는 비록 우리 집에서 키우는 건 아니지만 아랫집에 강아지가 있다는 사실이 은근히 좋았던 모양이다. 강아지똥과 화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 때였다. 강아지똥을 보고서도 아랫집에서 치우겠지 하는 마음 반, 바쁘다는 핑계 반으로 치우지 않고 비껴 가기만 했던 내 행동이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인가, 아이들과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계단 위쪽에 이쁘게 놓인 선물을 보고 큰애에게 “엄마를 위해 치워줄 수 있겠니?” 했더니 아이는 스스럼없이 비와 쓰레받기를 들고 와 가뿐하게 처리했다. 큰애도 이미 강아지똥과 화해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강아지보다 강아지똥을 먼저 보고 한동안 이어졌던 강아지와의 불화는 이 일로 종지부를 찍었다.
우리 식구는 요즘 한 가지 일(?)이 늘었다. 집을 드나들면서 강아지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 아랫집 강아지를 한 식구로 받아들이게 한 작은애, 어느 목사님도 <아이에게 배우는 아빠>라는 책을 펴냈지만 나도 아이에게 참 많이 배우고 있다.
이성숙 기자 (주간기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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