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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시대와 와이키키 부라더스

무엇이든 김재성 목사............... 조회 수 721 추천 수 0 2002.05.18 08: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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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성 (민들레성서마을지기)

장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 불확실하던 고3 때에 모교회의 담임목사님과 장래에 대해 의논을 한 적이 있다. 목사님은 내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고, 나는 뭐든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다. 장남으로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집안을 세우는 길을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목사님은 그때 서른 정도였으니 역시 젊은 나이셨다. 그런데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다들 가난하게 사니까 그저 돈 벌려고 하지만, 재성이가 사회 활동을 할 시대가 되면 그때는 돈 많은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될 거야.”

그 다음 말씀은 분명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러니까 너무 돈 버는 데 집착하지 말고 뭔가 뜻을 세워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 같다.

그런 말씀을 들은 지 벌써 30년여 년이 지났고, 이제 나는 사회 활동을 하는 중년이 되었다. 이 시점에서 그 옛날 목사님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정말 오늘날은 돈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것이 되었는가. 목사님의 ‘예언’은 얼마나 정확하게 들어맞았는가.

먼저 사회 현상을 보면 목사님의 예언은 빗나간 것 같이 보인다. 사람들은 분명히 70년대보다 훨씬 더 잘 살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돈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돈이 많을수록 더 열심히 돈을 벌려고 하고 더 돈에 집착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절대적 빈곤의 문제는 어느 정도 극복이 되었다고 해도 상대적 빈곤은 더 견디기 힘든 것이 되어서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만족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나 자신을 보면 목사님의 예언은 어느 정도 적중하였다고 생각된다. 지난 삼십여 년 간 목사님의 그 말씀은 늘 내게서 떠나지 않았고, 난 늘 돈 버는 것과는 거리가 먼 쪽으로 결정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늘 내가 가는 길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고, 내가 하는 일이 옳고 뜻있는 것이면, 돈은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는 누구를 크게 도와주지는 못했어도, 돈 문제로 할 일을 못하거나, 돈 문제로 무슨 고생을 해 본 적은 없다. 한 번뿐인 인생을 돈을 벌기 위해서 산다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젊은 날에 돈보다 더 귀중한 가치를 일깨워 준 목사님이 늘 고맙다.

난 교회가 할 일이 많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그 목사님이 나를 일깨워 주신 것처럼 사람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에 대한 가치를 일깨워주고 돈에 매이지 않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위해서 삶을 바치도록 안내하고 훈련시키는 곳이 교회일 것이다. 헌금을 하는 것도 봉사를 하는 것도 나눔을 실천하는 것도 다 돈에 매여 돈만을 쌓아올리는, 돈을 섬기는 삶을 살지 않도록 훈련하고 돕는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것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으로 여기고 가난한 것을 복을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사고가 번지고 있는 것 같다.

1905년에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서 그는 영국 네덜란드 등 칼빈주의 개신교가 발달한 곳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것을 보았다. 칼빈주의는 세속에서의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보기 때문에 세상일에 성실한 것이 곧 하나님께 성실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세상일에 금욕적이고 검약하여 저축을 하므로 재산을 축적하게 되고 거기서 자본이 축적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을 잘 믿어서 성실하고 근검절약하는 사람이 부를 누리는 것은 복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스 베버가 이런 분석을 할 당시의 자본주의는 아주 초기 형태이며 오늘날의 자본주의와는 아주 다른 것이다. 오늘날도 역시 믿음 있고, 성실하고 근검절약하는 사람은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보다 더 잘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부자가 믿음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금은 반짝이지만, 그렇다고 반짝이는 것이 모두 금은 아닌 것이다. 부자 가운데는 투기나 부정한 방법으로 번 사람도 있고, 또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유산을 물려받아 부를 누리는 사람도 있다.

또 가난한 사람은 복을 받지 못한 것이라는 말도 맞지 않는다. 얼마 전 IMF를 겪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아무 문제 없는 중산층의 삶을 살던 사람이 사회적 여건 때문에 졸지에 가난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노숙자가 되기도 하는 일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비일비재하다. 때로 그것은 개인의 성실성이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개개인에게 사고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와는 아주 다르기 때문에 먼저 이 사회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있은 다음에 부의 축적을 어떻게 볼 것인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그것을 개개인의 신앙과 연결시키는 것은, 막스 베버의 시대에는 가능했는지 몰라도, 오늘날은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서에서도 부를 좋은 것으로 말하는 데가 있다. 시편에서는, 주님을 경외하고 주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사람은 복이 있으며, 그의 집에는 부귀와 영화가 있다고 한다(시 112:1-3). 그러나 이런 구절들은 부 자체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 자신이 이룬 것인 양 교만해서는 안 됨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신 8:17-18; 시 52:1-7 참조), 반대로 부자가 곧 하나님의 복 받은 사람임을 말하고 있지 않다.

특별히 예수의 가르침에는 부에 대한 경고가 많이 나온다. 예수를 찾아온 어느 부자 청년은 어떻게 해야 그가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예수는 계명을 지키라고 했고 그는 그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다고 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악덕 기업가나 불의하게 돈을 모은 사람이 아닌 셈이다. 그래서인지 예수는 그를 사랑스럽게 여기셨다고 한다(막 10:21). 그러나 예수가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서 가서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자, 그는 근심하면서 예수를 떠나갔다. 그가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가 떠난 다음에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하셨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예수는 돈 자체를 죄나 악한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는 그 청년이 부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가 계명을 지킨 것에 대해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또 예수가 삭개오에게 갔을 때, 그가 돈을 많이 가진 것에 대해서 그를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예수가 함께 계신 것에 감격해서 삭개오는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또 누구에게서 강탈을 했으면 네 배로 갚아 주겠다고 약속을 한다. 그가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 준다 해도 그는 여전히 큰 부자이다. 하지만 예수는 그에게 구원을 선포하고 그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한다.

누가복음에서는 독특하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축복 선언뿐만 아니라, 부자들에 대한 화 선언이 나온다. 어찌하여 부요한 사람이 화가 있는가? 그들은 그들이 받을 위안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눅 6:24). 즉 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부가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하게 하고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게 하고 더 이상 위로받을 것이 없게 하고 더 이상 하나님께 구할 것이 없게 하는 것이 화가 된다는 것이다. 부자 청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 부가 그로 하여금 예수께로 나오지 못하게 하고 근심하며 떠나가게 하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예수는 가난 자체를 미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필요가 있고 목마름이 있기 때문에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부족함, 아직 필요가 있음, 이것을 예수는 복의 근원으로 보았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한 것이다.

예수 자신도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살았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보금자리가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 처지를 비관하거나 푸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들의 백합화를 보라, 하늘의 새를 보라고 하면서, 그렇게 재물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롭게 날고 자신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내는 것들을 귀하게 여기셨다. 인간 또한 그런 향기와 자유로움이 있는 존재인데, 돈 때문에 소유 때문에 근심에 싸여 살므로 예수는 늘 그런 의미에서 재산에 집착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가난할 수도 있고 부유할 수도 있다. 예수 믿고 성실해지고 밝아지고 열심히 사는데 어찌 전보다 가난해지겠는가. 부유해질 것이다. 하지만 예수 믿지 않으면서도 머리가 좋아서 수완이 좋아서 주식을 잘해서 부동산투기를 잘해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그를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수를 잘 믿으면서도 착해서 잘 속아주기 때문에 자기 것 챙기지 못하기 때문에 늘 평범하게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어떻게 복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저 좋은 차에 좋은 집에 명문학교에 다니면 예수 잘 믿고 복 받은 거고, 가난하거나 고생하면 뭔가 잘못을 한 것이고 복이 없는 것이라는 사고는 예수의 사고가 아니라 바리새주의이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병이 들면 죄를 지은 탓이라고 하고 멸시하였다. 그것은 가난이 죄의 탓이라는 것과 꼭 같은 사고이다.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처음 시작할 때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 가문도 변변치 못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고전 1:26-28). 교회가 커지고 부유한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교회 안에서도 빈부격차가 생겼고, 부유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지식 있는 사람들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일들이 생겼다. 그것은 교회가 처음 맞이한 위기였다.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벌써 배가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벌써 부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제쳐 놓고 왕이라도 된 듯이 다스리려 하였습니다 …… 우리는 약하나, 여러분은 강합니다. 우리는 천대를 받고 있으나, 여러분은 영광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바로 이 시각까지도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얻어맞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일을 하면서, 고된 노동을 합니다. 우리는 욕을 먹으면 도리어 축복하여 주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비방을 받으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되고, 이제까지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고전 4:8-13).

생각해 보라. 바울 같은 이가 하나님의 복을 못 받아서 그렇게 사형수처럼 살고, 손으로 노동을 하면서 돈을 벌겠는가. 그저 바울이 그들에게 당신들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렇게 부자가 되었다고 추켜세워 주었다면, 그들이 헌금도 많이 냈을 것이고, 그 돈으로 또 선교 비용도 대고 바울 자신도 편히 지낼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어찌하여 바울은 그런 삶을 살지 않은 것인가. 바울은 어찌하여 자신이 이 세상의 쓰레기처럼, 만민의 찌꺼기처럼 되었다고 말하는가. 이것은 과장법이 아니다. 바울은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 순교하지 않았는가.

얼마 전에 TV에서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거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처음에는 고생을 하다가 나중에 성공을 한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낙제생이거나 퇴학을 맞았는데 미국 가서 어떻게 장기를 살려서 유명한 벤처 기업의 사장이 된 사람, 한국 전쟁 이후 가난 때문에 고생한 사람이 미국에 가서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그 많은 봉급을 뿌리치고 한국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적은 봉급에도 고국의 암 센터 원장직을 맡은 사람 등등이다. 그런데 그들은 한결같이 뒤에 가서 어디 장이 되고 성공한 사람들이다. 물론 그런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난해도 저렇게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만, 왠지 해피엔드가 뻔한 주제인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결같이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 뒤에 남는 의문은 그럼 꼭 그렇게 성공을 하고 어디의 장이 되어야 이런 프로에도 나오고 그러는 건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인간극장>이라는 프로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아무런 성공도 거두지 못했지만 가난이나 장애를 극복하고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비춰주고 있다. <성공시대>를 보고나서는 늘 나는 왜 저런 성공을 못해보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인간극장>에 나오는 그들의 아름다운 삶을 보고나서는 마음이 젖어오는 느낌이었다.

또 하나, 최근 <와이키키 부라더스>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요즘 사양길을 걷고 있다는 삼류 밴드 마스터의 이야기였다. 거기에 나온 주인공은 음악이 좋아서 음악만 하는 사람이다. 난 음악을 하는 사람은 대개 부자이고 유명하고 잘 된 사람들만 생각했다. 정명훈 가족이나 조수미 같은 스타들만 생각했다. 그런데 임순례 감독의 눈은 달랐다. 음악을 하면서도 성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들을 비추는 감독의 눈은 얼핏 냉정하고 객관적인 것 같이 보이지만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나면 그들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생 음악만 하다가 알콜 중독에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한 어느 선생님, 그리고 일할 곳이 없어서 이러저리 전전하는 밴드 마스터들……. 특히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룸살롱 같은 데서 졸부들이 여종업원들에게 돈을 주면서 옷을 벗기고 자기들도 벗는, 광란의 파티 장면이 잠시 나온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음악을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이 흥을 돋우기 위해 기타를 치고 있었다. 한참 즐거워하던 졸부가 그에게로 오더니 강제로 위스키를 마시게 하고 그 다음에는 “우린 다 벗었는데, 너는 왜 안 벗어” 하면서 그에게 옷을 벗으라고 하였다. 난 그가 화를 내면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잠시 후 카메라는 옷을 홀라당 벗고 슬픈 듯한 표정으로 기타를 치고 있는 그의 모습은 비춰 주었다.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것이 자꾸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중에 포장마차에서 이른바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하는 친구가―그는 늘 돈 문제로 동창들과 싸움을 하곤 한다―음악을 사랑하는 그 주인공에게 ‘너 행복하니?’ 하고 물었을 때 아무 말 없이 웃음을 짓는 그의 모습에서 그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삼류 밴드 마스터이지만, 술집을 전전하며 그런 수모도 당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을 따뜻한 눈으로 비춰주는 감독의 눈이 오늘 우리가 가져야 할 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PD, 이런 영화감독들은 이미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성공제일주의, 물질제일주의에서 벗어나서 삶을 새롭게 보고 있다. 세상도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교회가 아직도 성장제일주의나 성공제일주의를 외치고 있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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