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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나는 답답한 목사다.
나를 보는 성도들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때론 내가 나를 봐도 답답하다.
언젠가 나와 상담을 한 목사님이 나를 두고
답답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답답함"
그 후로 나는 내가 왜 답답한 사람인가 많이
고민을 했다.
오늘은 그런 고민을 적어볼까 한다.
나의 기질은 점액질이다.
측정수치가 높은 점액질이다.
점액질의 대표적 특징은
잘참는다. 잘 참는것은 좋은데, 밖으로 부터 오는
위험, 느낌, 강도에 무디다.
다른말로 예민하지 못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만약 피부가 약한 사람은 작은 열에도 데이거나 화상을 입지만
피부가 두꺼운 사람은 "견딜만하네"라고 하듯 외부적 압력에 대하여 점액질 기질은 둔감하다.
이렇게 둔감하기 때문에 비교적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맡은 일을 잘 감당하는 기질이다.
참 좋은 장점이다.
점액질 기질은 다른 사람은 화가나는 상황에서도 이런 상황에서는
화를 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그때 고민하고 있다.
이러니 외부적 압력에 대하여 아주 민감한 우울질 기질의 사람은
미치고 발짝 뛸 지경이 된다.
그런데 나는 우울질 기질의 아내와 지금껏 잘살고 있다.
기적이다.
집안 식구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알아서 나름대로의 대처방법이 터득되었겠지만
교회안의 성도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잔잔하고 인격적이어서
좋게만 보였던 목사님이
비가오나 눈이오나 그 속에 든 개인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니 환장할 노릇인가 보다.
성도들이 그 정도인데도 나는 잘 모르다가
어느 집사님이 그것도 조심스럽게
말씀해주셔서 사태를 알았다.
일반 평신도같으면 "좀 말좀해라. 이 답답한 인간아
더우면 덥다고 하고, 추우면 춥다고 해야지 이 곰같이 버티기만 하면 다냐?" 라고 쏘아주었을 텐데
목사라는 감투를 쓰고 있으니
벼르고별려서 한마디 했다.
"목사님은 목사님의 속을 드려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예의를 차려서 한 말이지만
그동안 답답해 했을 성도들 입장에서는
목사만 아니면 좀더 과격하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노릇을 어쩌면 좋다말인가?
성도들이여!
제발 오해는 말아다오. 내가 의도하고 점잖을 피운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어찌해볼 수 없는 기질이라서 나도 답답하다우!
이런 문제로 고민하다가
같은 기질의 어느 분께 내가 이런 고민이 있노라고 털어놓자
그분이 동감이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재료라고 그런다.
그리고 끔직하게 덧붙이는 말이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고 그런다.
아 절망적이어라~
이제는 내가 답답하다.
"성도들이여 곰같은 김목사와 한판 붙었으니
이 싸움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기대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부딛쳐오는 문제의 옳고 그름이 판결이 아니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에 쓰여지는 이야기는
곰같은 목사를 만났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운데 아름답게 진행되어 피어나는
소망교회의 꽃같은 이야기가 되리라 믿는다.
나를 보는 성도들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때론 내가 나를 봐도 답답하다.
언젠가 나와 상담을 한 목사님이 나를 두고
답답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답답함"
그 후로 나는 내가 왜 답답한 사람인가 많이
고민을 했다.
오늘은 그런 고민을 적어볼까 한다.
나의 기질은 점액질이다.
측정수치가 높은 점액질이다.
점액질의 대표적 특징은
잘참는다. 잘 참는것은 좋은데, 밖으로 부터 오는
위험, 느낌, 강도에 무디다.
다른말로 예민하지 못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만약 피부가 약한 사람은 작은 열에도 데이거나 화상을 입지만
피부가 두꺼운 사람은 "견딜만하네"라고 하듯 외부적 압력에 대하여 점액질 기질은 둔감하다.
이렇게 둔감하기 때문에 비교적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맡은 일을 잘 감당하는 기질이다.
참 좋은 장점이다.
점액질 기질은 다른 사람은 화가나는 상황에서도 이런 상황에서는
화를 내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그때 고민하고 있다.
이러니 외부적 압력에 대하여 아주 민감한 우울질 기질의 사람은
미치고 발짝 뛸 지경이 된다.
그런데 나는 우울질 기질의 아내와 지금껏 잘살고 있다.
기적이다.
집안 식구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알아서 나름대로의 대처방법이 터득되었겠지만
교회안의 성도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잔잔하고 인격적이어서
좋게만 보였던 목사님이
비가오나 눈이오나 그 속에 든 개인적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니 환장할 노릇인가 보다.
성도들이 그 정도인데도 나는 잘 모르다가
어느 집사님이 그것도 조심스럽게
말씀해주셔서 사태를 알았다.
일반 평신도같으면 "좀 말좀해라. 이 답답한 인간아
더우면 덥다고 하고, 추우면 춥다고 해야지 이 곰같이 버티기만 하면 다냐?" 라고 쏘아주었을 텐데
목사라는 감투를 쓰고 있으니
벼르고별려서 한마디 했다.
"목사님은 목사님의 속을 드려내지 않습니다"
이렇게 예의를 차려서 한 말이지만
그동안 답답해 했을 성도들 입장에서는
목사만 아니면 좀더 과격하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노릇을 어쩌면 좋다말인가?
성도들이여!
제발 오해는 말아다오. 내가 의도하고 점잖을 피운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어찌해볼 수 없는 기질이라서 나도 답답하다우!
이런 문제로 고민하다가
같은 기질의 어느 분께 내가 이런 고민이 있노라고 털어놓자
그분이 동감이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재료라고 그런다.
그리고 끔직하게 덧붙이는 말이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고 그런다.
아 절망적이어라~
이제는 내가 답답하다.
"성도들이여 곰같은 김목사와 한판 붙었으니
이 싸움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기대가 됩니다."
중요한 것은
부딛쳐오는 문제의 옳고 그름이 판결이 아니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다음에 쓰여지는 이야기는
곰같은 목사를 만났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운데 아름답게 진행되어 피어나는
소망교회의 꽃같은 이야기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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