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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빤스의 제왕'인가?

무엇이든 최용식............... 조회 수 803 추천 수 0 2002.11.27 09: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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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천국을 건설해 주겠다는 한나라당의 무모한 공약에 대하여  

우리 경제를 기어이 아르헨티나 꼴로 만들자는 것인가?

중국 제16차 전국인민대표자대회가 지난 11월 중순에 있었다. 나는 경제학자로서 이 대회가 부럽기 짝이 없었다. 이 대회에서 중국정부는 국민경제를 경영하는 이념을 제시함으로써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했다는 점, 국민경제의 경영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국민들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주었다는 점, 국민경제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국민들이 희망과 꿈을 안고 살아갈 수 있게 했다는 점 등이 특히 부러웠다.

지금 우리나라도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대통령선거가 코앞에 닥친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경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는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에 의해서 명확하게 드러났다. 한 사람은 우리 경제를 경제질병 중 가장 악질인 환란에 몰아넣었고, 다른 한 사람은 좀처럼 치유가 어렵고 후유증도 크다는 환란을 경제전문가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성공적으로 극복해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가도 국민경제의 향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틀림없다.

한나라당의 공약집은 '엠마뉴엘의 비밀'인가? 왜 대외비 인가?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보름 전쯤 각각 선거공약을 발표했다. 민주당 공약집은 한나라당보다 며칠 늦게 발표되었지만 구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렇지만 한나라당 공약집은 좀처럼 구할 수 없었다. 중앙언론사 간부에게 부탁해도 얻어지지 않았다. 공약집으로 인쇄하여 배포할 때까지는 '대외비'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미 언론에 공표된 공약집이 '대외비'인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언론에 발표하지를 말든지.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렵사리 구해서 내용을 살펴봤더니, 그 이유를 알만 했다. 페론의 공약집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세계7대 부국으로서 국민소득이 스위스나 스웨덴보다 높았던 아르헨티나 경제를 오늘날처럼 구제불능으로 만들었던 그 페론 말이다. 공약집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모두 들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파퓰리즘(인기영합주의)의 전형을 보는 듯 했다. 여기에서 잠시, 페론이 어떤 인물이고 아르헨티나를 어떤 지경으로 몰아갔는지 간단하게나마 살펴보자.

페론은 원래부터 노동자와 빈민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사람이 결코 아니다(우리나라의 어떤 신문이 그렇게 몰아갔을 뿐이다). 진보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극우주의자라고 불려야 할 사람이며, 야심으로 똘똘 뭉친 정치군인에 불과했다. 대공황이 세계를 휩쓸던 1930년, 아르헨티나 군부는 경제난과 사회혼란을 빙자하여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페론도 여기에 참여했다. 그 군사정권이 부정부패로 지탄을 받자, 1943년에는 페론이 직접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으며,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을 지지하고, 히틀러 식의 국가사회주의라는 극우이념을 도입했다.

페론은 세계대전 직후 미국의 압력으로 군부에 의해 구금되지만, 국민들의 격렬한 시위로 풀려났고, 곧이어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취임 직후 '경제독립'을 선언하며 외국자본을 추방하고, 철도와 전화 등 기간산업을 국유화시켰다. 전쟁특수로 축적한 대규모 국제수지 흑자를 재원으로 과감한 공업발전전략도 추진했다. 히틀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극우주의 경제정책을 채택한 것이다. 정치도 히틀러처럼 권력집중을 획책하고, 언론 등 반대세력을 탄압했으며, 그의 부인인 에바를 부통령에 앉히려다 군부의 반발을 샀다. 그래서 권력기반이 약화되었고, 자연스럽게 노동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분에 넘치는 공업화 정책과 지나친 인기주의 정책은 재정난과 물가불안 그리고 국제수지 악화 등 총체적인 경제난을 불렀다. 이 경제난을 돌파하기 위해 1955년에는 자립노선을 포기하고 적극적인 외자유치정책으로 돌아섰고, 이를 반대하던 노동자의 격렬한 반발을 불렀다. 페론은 노동자 탄압으로 대응했고, 노동자 편에 섰던 천주교까지 적대하면서 권력기반이 무너지는 결과를 빚었다.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자 다시 군사쿠데타가 발생했고, 페론은 실각하여 망명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경제는 처참하게 망가져 있었다. 페론의 뒤를 이은 군사정권은 경제를 회생시키지 못하고 무능력과 부패상만을 보여주었다. 경제가 더욱 엉망으로 악화되자, 1973년에 다시 권좌에 복귀하지만 경제는 살려내지 못한 체 곧 운명을 달리 했다. 이로써 페론은 아르헨티나를 영원히 떠났지만, 극심한 좌우익 대립과 함께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외환위기 및 초인플레이션을 아르헨티나에 고질병으로 남겼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페론은 진보주의자도 아니고 친 노동자적인 인물도 아니다. 정치권력을 강화하고 정권연장을 위해서 잠시 빈민과 노동자의 힘을 빌렸던 적이 있을 따름이다. 독재정권의 유지에 방해가 되는 듯 하자, 노동자를 탄압한 데에서도 이 점은 확실하게 드러난다. 정리하자면, 페론은 권력에만 눈이 멀어 인기주의에 영합했던 극우주의자에 불과했다. 한나라당의 공약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페론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나라당 선거공약은 무조건 정권만 잡고 보자는 인상을 짙게 풍긴다. 국민경제의 장래를 위해서는 한나라당의 정책공약(公約)이 제발 거짓약속(空約)이 되기를 바래야 할 지경이다. 만약 한나라당이 집권하여 공약집처럼 정책이 실제로 집행된다면, 환란보다 더 무서운 경제위기를 부를 것이고, 결국 아르헨티나 경제처럼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이 문제를 지금부터 조목조목 따져보도록 하자.

대저, 경제란 우리 인체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건강하지 못하면 질병에 걸리기 쉽다. 주색에 빠지거나 마약에 빠지는 등 방탕하면, 건강은 물론이고 목숨조차 보장하기 어렵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꾸만 흐트러지고 유혹에 넘어가려는 마음을 다잡아야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해서 체력을 길러야 한다. 듣기에는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여간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 아니다. 땀을 흘려야 하고 귀중한 시간을 대가로 지불해야 한다. 귀찮음과 고통을 이겨내는 강한 의지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안정된 가운데 순조롭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이라는 경제체력을 꾸준히 길러줘야 한다. 그래야 경제체가 건강할 수 있고, 그래야 환란과 같은 경제재앙을 다시는 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경제체력을 키우는 일은 우리 몸의 건강을 증진하는 일이나 하나도 다르지 않다. 땀과 고통과 의지를 요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땀과 고통과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있겠는가!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업 노동자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의 효율성이 꾸준히 증진되어야 한다. 우선, 정부는 한없이 늘어나려는 몸집을 절제하고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업은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시키고 신기술개발과 신제품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하며, 경영수지 개선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노동자도 자기계발은 물론이고 생산성 향상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고, 가계는 무분별한 소비를 절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모든 일은 국민들의 땀과 인내와 고통을 요구한다. 즐기고 보자는 심리를 억제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정책공약이 국민들에게 땀과 인내와 고통을 요구한 바는 무엇일까?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내 눈에는, 국민이 원하는 바를 모두 들어주겠다는 사탕발림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국민들을 방탕으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개인으로서도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등을 다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좀 더 잘 살기 위해서 웬만한 것은 참고 지내야 한다. 국민경제는 두 말할 필요조차 없다. 국민들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는 없다. 그러다가는 국민경제가 파산하기 딱 알맞다. 페론이 이미 이를 증명했지 않은가! 어린아이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겠다고 나서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버릇없고 사회적응력이 떨어지는 아이로 만들뿐이다. 자, 한나라당이 각계각층의 국민들에게 어떤 일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는지, 구체적으로 한번 따져보자.

우선, 과거의 우리나라 군사독재정권이나 아르헨티나 페론정권이 취했던 바처럼 정권안보를 위한 선심공약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공무원 처우의 획기적 개선, 경찰인력과 장비의 대폭 보강, 경찰예산 증액, 의무경찰 순경 대체, 파출소 근무인력 보강, 법관 증원, 자원봉사활동 지원, 군복무 기간 2개월 이상 단축, 내무반 환경 대폭개선, 사병봉급 현실화, 참전유공자 지원금 대폭인상, 전몰군경 유자녀와 무공수훈자에 대한 지원 확대, 특수임무요원에 대한 국가보상 현실화, 장기복무 제대군인에 대한 취업알선, 주택마련, 군인복지시설 지원, 국가유공자에 대한 지원비 인상, 군사시설로 인한 국민재산권 피해 최소화 등이 그것이다.

경제분야는 더욱 가관이다. 각계각층이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 모두 들어주겠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법인세 부담 완화 및 세율 인하, 연대보증 피해예방을 위한 신용보험제도 확대, 공적자금 조속 상환, 첨단분야 핵심고급인력 7만명 육성, 세계적인 연구개발 중심기지 건설, 과학기술인 처우와 복지 증진, 과학기술 거점도시 집중육성, 해양과학기술 투자확대, 2005년까지 농어촌 및 도시영세민 지역 초고속서비스, 농어촌지역 초고속인터넷 사용료감면, 생활보호대상자 이동전화요금 및 인터넷요금 대폭인하, 첨단기술산업 집중육성, 5년내 소프트웨어 고급인력 7만명 육성, 중소기업 준조세부담 획기적 완화, 신용보증기관 정부출연금 확대, 중소기업 법인세 최저세율 인하, 벤처기업 금융지원 확대, 소상공인 공제기금 형성지원, 지역특화산업 집중육성, 지방 유통업과 재래시장 활성화, 폐광지역 개발사업 지속추진, 동북아 최고의 물류거점 육성, 철도투자 확대, 항만투자 확대, 물류제도 개선 등등 숨이 가쁠 정도로 모든 것을 정부가 다 해주겠다고 나섰다. 이런 일을 모두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이렇게 하고도 국가재정이 견뎌낼 수 있을까?

농어민을 위해서는, 농어촌특별세 시한 연장, 농어업 각종기금 확대, 농어민 정책금리 3%로 인하, 농어민 직접지불제 확대 및 단가현실화, 농기계 및 농자재 저가공급, 농어민에 대한 조세감면, 쌀 공공비축제 도입, 최저보장가격제 도입확대, 출하촉진자금 공급확대, 동식물방역청 신설, 재해복구비 선집행 후 정산, 환경축산 직접지불제 도입, 농어촌복지 특별법 제정, 농어민자녀 학비지원 인문고까지 확대, 농어촌 학교급식 확대, 원양어업 및 기르는 어업 지원확대 등을 하겠단다. 이제 농어민은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재정이 이런 정책을 과연 충분히 뒷받침해줄 수 있을까?

또한 서민을 위해서, 주택 230만호 건설, 주택보급률 110% 수준까지 확대, 서민용 임대주택 공급, 장기저리 주택할부금융제도 활성화, 집값의 20∼30%로 내 집 마련, 대중교통에 대한 세제지원 강화, 가정용 전기요금 인하, 도시가스 특소세 폐지 등 서민생활과 밀접한 일들도 모두 해주겠단다. 참 대단한 정부가 등장할 것 같다.

교육분야에서는, 예체능 등 외부 전문가 학교초빙, 교사보수 인상, 교사정년 단계환원, 교사자녀 교육비 지원확대, 교사 잡무부담 대폭완화, 여교직원 편의시설 확대, 교사 안식년제 도입, 교사 해외연수 확대, 연수비 지원, 수석교사제 도입, 5세아 무상교육 실시, 유아교사 인건비 및 연수비 지원, 유아교육기관 종일반 지원, 신도시 과밀학급 조속해결, 모든 학교 전자도서관 설치, 학내 전산망과 교육전산망 정비, 학교시설설비 대폭확충, 사립대운영비 국고지원 대폭확대, 대학교수 확보율 제고, 시간강사 처우개선, 실업고 장학금 대폭확대, 2007년까지 실업고 무상교육, 장애인 특수학교 취학률 확대, 방송통신대학 국고지원 확대, 교육불리계층 대학특례입학 추진 등을 실시하겠단다. 교육의 모든 것도 돈으로 해결하겠단다. 이래도 국민경제가 견뎌낼 수 있을까?

문화분야는 문화예산 대폭확충, 문예진흥기금 확대, 문화예술활동지원 조세감면 확대, 예술회관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대중공연장 등 문화시설 건립, 예술인회관 완공지원, 지방문화원 국고지원 확대, 문화예술인복지조합 설립, 특화된 문화산업단지 조성, 전통문화 전수회관 건립, 영화제작 지원확대, 영화진흥금고 확충, 영화 해외진출 지원확대, 문화예술학자 해외학술대회 참여지원, 해외동포방송국 설립, 국제문학교류센터 설립, 대형 컨벤션센터 건립 지원 및 국제회의산업 육성, 공공체육시설 건립지원, 청소년육성기금 확충, 청소년용 문화공간 체육시설 오락시설 대폭확충, 청소년 해외연수 국제교류 현장체험 기회확대 등을 추진하겠단다. 이 모든 것을 무슨 돈으로 하겠다는 것일까?

엄청난 공약실행에 엄청난 돈이 필요한데, 세금을 감면해 주면서 어디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인가?

사회복지에 있어서는, 의료급여 대상자 확대, 저소득층 대학생 학자금 전액 저리대출, 결손가정 생계급여 의료비 교육비 가사지원 등 확대, 저소득층 난치병 국가지원 확대, 저소득층 아동수당제 도입, 저소득층 공부방 확충 및 학습도우미 배치, 장애인 및 거동불능노인 최저생계비 보장, 노숙자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 및 최저생계비 보장, 근로소득 소득공제 확대, 자활기금제도 활성화, 사회복지 종사자의 교육강화 및 급여와 처우를 국공립 수준으로 상향조정, 사회복지전담공무원 확대 배치, 미인가 복지시설 양성화 및 국가 지원, 6대 암에 대해 전 국민 건강검진 정기실시, 저소득층 보건지소 확충, 의료사각지대 해소 등을 내세웠다.

노인복지를 위해서도, 만성퇴행성 질환 요양급여체계 정비, 노인취업 우대직종 지정, 경로연금 지급대상 확대 및 급여수준 현실화, 노부모 부양가정 세제혜택 확대, 노인 격년제 무료 건강검진, 저소득층의 보청기 등 보장구 구입지원, 치매중풍 노인부양 저소득층 부양수당 지급, 무료 및 실비 노인요양시설 확대설치, 치매중풍 전문병원 확대, 장기요양보험 도입 등을 하겠단다.

장애인을 위해서, 장애수당 대상자 확대, 학교내 장애인 편의시설 확충, 장애인 대표선수 지원확대, 장애인 체육시설 전국 설치, 저상버스 도입, 공공시설 장애인 편의시설 의무화, 장애인 정보접근권 확보, 장애인 보장구의 건강보험급여 확대, 국공립 의료기구에 여성장애인 특별의료팀 구성, 출산시 가정봉사원 파견제 실시 등도 하겠단다.

물론 이런 모든 일들은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한 것이 없고 시급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재정사정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해주겠다고 했다가 못해주었을 때를 고려해야 한다. 실망이 분노로 바뀌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중요한 일은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환경분야에서는, 먹는물 수질기준 강화, 상수도시설 획기적 개량, 축산폐수 및 생활오수 정화시설 대폭확충, 식수전용저수지 확충, 하수처리장 등 환경기초시설 확대, 대기환경기준 강화, 지하생활공간 오염예고제 강화 등도 하겠단다.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연평균 6%의 성장률을 달성하여 매년 50만명씩 5년간 250만명의 일자리 창출,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해결,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 해결, 근로자가 안심할 수 있는 근로복지제도 구축, 근로자의 주택자금융자, 학자금 융자, 장학기금 확충, 산업재해 없는 안전한 일터 등도 만들겠단다.

여성을 위해서는, 보육예산 2배 이상 대폭 확대, 영아보육시설 국공립시설 중심으로 확대, 저소득층 보육비 지원 확대, 보육료 지급비율 상향조정, 모든 아동에게 보육혜택 제공, 장애아동에 대한 완전무상교육, 직장보육시설 설치에 대해 세제혜택, 신규 아파트 등 보육시설 의무화, 보육교사 인건비 현실화, 자녀보육비용 소득공제 확대, 여성 임명직 및 선출직후보 비율 30%로 확대, 육아휴직급여 현실화, 출산육아 기간 중 사회보험료 면제, 가족간호 휴직제 제도화, 여성 직업훈련 강화, 여성의 재산권 권리강화, 여성폭력 보호, 여성 농어업인 보호 육성, 고령여성 여성가구주 여성장애인에 대한 종합복지대책 수립 등을 내세웠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한나라당은 국민들이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해주겠단다. 서구의 어느 진보정당보다 더 진보적인 정책들도 추진하겠단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진보이던가? 이것은 전형적인 인기영합주의의 발로로서, 아르헨티나 경제를 골병 들게 한 페론 식 정책공약과 하나도 다름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자세이다. 그러나 국가의 장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이래서는 결코 안 된다. 국민경제의 장래를 생각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정책공약은 아무리 낮은 강도로 추진되더라도, 환란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이 점도 한번 따져보자.

우선, 한나라당은 우리 국민경제를 매년 6% 이상 성장시켜서 1인당 국민소득을 5년 안에 1만5천 달러, 10년 안에 2만5천 달러로 올려놓겠단다. 실현되면 이처럼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목표는 반드시 경제체력에 의해서 뒷받침 해줘야 한다. 국제경쟁력과 성장잠재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경제재앙을 부를 뿐이다. 실제로 김영삼 정권은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 향상은 외면한 체 '국민소득 1만 달러' 목표만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결국 환란을 불렀었다. 무리한 경기부양으로 국내 공급능력을 벗어난 초과수요를 발생시켰고 환율의 탄력성까지 떨어뜨림으로써, 국제수지를 눈덩이처럼 키웠으며, 결국 외환보유고가 고갈되는 사태를 불렀다.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 향상은 '6% 이상의 성장률과 10년 내 2만5천 달러 소득'이라는 목표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과연 무엇을 하겠다고 했을까? 공약집은 교육과 과학기술 투자를 대폭 확대하여 성장엔진으로 삼겠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교육과 과학기술 투자확대는 이에 대한 수요가 충분히 뒷받침하지 않으면 공급과잉만 부를 뿐이다. 우리 경제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대졸자는 취업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그 원인은 교육의 과잉투자에 있었다고 해야 한다. 또한 러시아의 과학기술은 세계 최고수준이고 아르헨티나조차 비교적 높은 수준인데, 경제수준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교육과 과학기술 투자확대는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장엔진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밖에 한나라당은 기업환경을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며, 수출확대를 위해 지원체재와 인프라를 강화하겠다는 등의 공약도 제시했다. 그러나 실현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우선, 어떻게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는 주목할만한 방안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국부유출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등장시켰던 한나라당이기에 외국인 투자유치는 공허한 소리로 들릴 뿐이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은 대북정책에 있어서 상호주의를 채택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것은 남북관계의 악화를 부를 것이 뻔하며, 이에 따라 전쟁위협은 더욱 커질 것이다. 전쟁위협이 커지는데 외국인들이 국내투자를 활발하게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외국인들은 한나라당의 집권가능성이 높았을 경우에는 주식시장에서 팔기에 바빴고, 반대의 경우에는 사기에 바빴다. 또한 수출 지원체제나 인프라의 강화가 수출확대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아.. 알았다.. 한나라당은 전설에 등장하는 '도깨비 방망이'를 구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무엇으로 성장엔진을 삼을 수 있을까? 어떻게 성장잠재력을 키우고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까? 설마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이 자연히 향상된다고 믿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방안이 전혀 없다. 오직 무지개나 신기루 같은 꿈만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영삼 정권의 'OECD 가입'과 '국민소득 1만 달러'라는 정치구호와 하나도 다르지 않으며, 그 결과도 환란으로 귀결될 것은 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한나라당은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국방예산을 GDP 대비 3%로 늘리고, 정부예산 중 연구개발예산 비중을 6% 이상, 농어업투자를 정부예산의 10% 이상, 교육재정은 GDP 7%까지, 문화예산도 정부예산의 1.5% 등으로 확대하겠단다. 그 외에도 위에서 언급한 각종 선심성 정책공약들도 모두 재정지출의 확대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우리나라 재정규모를 얼마까지 늘리겠다는 것일까?

2001년 GDP와 2002년 예산 기준으로, 구체적인 숫자로 언급한 것만 합산해도 국방비 16.4조원, 연구개발비 6.8조원, 농어업투자 11.6조원, 교육재정 38.2조원, 문화예산 1.7조원 등 74.7조원에 달한다. 전체 예산의 35%에 불과한 예산만 따져도 이처럼 엄청난 규모인데, 사회개발예산, 경제개발예산, 일반행정예산, 예비비, 재정융자, 채무상환 등의 예산까지 합하면 그 규모가 도대체 얼마나 될까? 금년 예산 기준으로, 20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재정지출은 국민총생산(GDP)의 40%를 훨씬 넘어서게 된다. 여기에다 각종 공기업과 정부산하기관까지 합하면, 우리나라의 공공부문은 바야흐로 과거 소련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런 나라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이고 '활력이 넘치는 경제'가 될 수 있을까? 공공부문이 유능한 인재와 한정된 재화를 모두 쓸어 가버리는데, 국제경쟁에 직접 나서야 할 민간기업들이 어떻게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성장잠재력을 키울 수 있겠는가!

더욱 웃기는 것은 '알뜰한 나라살림'과 '국민의 세부담 경감'을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정지출을 위와 같이 늘리는 것이 과연 '알뜰한 나라살림'일까? 무엇보다, '국민의 세부담을 경감'시키고도 '국가채무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공약이 지켜질 수 있을까? 실제로 저 위에서 언급한 각종 정책공약들을 보면, 법인세 부담 완화 및 세율 인하, 중소기업 법인세 최저세율 인하, 근로소득 소득공제 확대 등 세금을 감면해주겠다는 공약들이 많이 보인다. 이러고도 국가채무를 줄일 수 있을까?

가장 한심하고 위험한 정책공약을 두 가지만 들자면, 주택 230만호 건설과 매년 50만명씩 250만명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선, 일자리를 매년 50만개씩, 5년동안 250만개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일까? 내 눈으로 보기에는 실현성 있는 방안이 한나라당 공약집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설령 일자리를 250만개나 만들 수 있다고 치자. 이 250만개의 일자리를 채울 인력은 어디에서 조달한다는 것일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금년 9월 현재 실업자수는 57.3만명이고, 실업률은 2.5%이다. 실업자를 모두 취업시킨다고 하더라도 200만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채워야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물론 현재 61.8%에 불과한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율은 15세 이상의 인구에 대한 비율이며, 학생과 군인 등을 모두 포함한 비율이다. 따라서 200만개의 일자리를 채울 사람은 전업주부가 대부분이다. 전업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을 200만개나 과연 만들 수 있을까?

여기에서 주시할 점은 우리나라는 지금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현실이다. 오직 대졸자의 실업난이 문제일 따름이다. 뿐만 아니라 지방기업과 중소기업은 대졸자조차 구할 수 없어서 아우성인 곳도 많다. 대졸자의 눈높이가 문제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인력난을 해소해주는 일이고, 취업 희망자의 눈높이를 낮추어주는 일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일자리를 200만개나 만들겠다니, 인력난은 어떻게 극복할 것이며, 취업희망자 눈높이는 어떻게 낮추겠다는 것인가?

다음으로, 만약 한나라당이 집권하고 진짜로 주택을 230만호를 건설하려고 나서면, 우리 국민경제는 과연 어떻게 될까? 장담하건대,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을 극도로 약화시킬 것이고, 결국은 환란과 같은 중증의 경제위기를 부를 것이다. 노태우 정권이 이를 이미 입증했지 않은가! 신도시 건설 등 주택 2백만호 건설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열풍을 불러온 것은 차치하더라도, 초과수요를 발생시켜 국제수지를 악화시켰다. 그리고 한정된 자원이 소비적인 부분으로 집중시킴으로써,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을 극도로 쇠약하게 했었다. 이런 일을 벌써 잊었다는 말인가! 환란은 바로 이 때에 발병하여 긴 잠복기간을 거쳤다는 사실을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이러다가 진짜로 다시 환란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 정책공약집을 보면, 도대체 국민경제를 이끌어가 이념이나 정책방향을 찾을 수가 없다. 민주당 정책공약도 한나라당과 큰 차이가 없다.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의 허풍이 조금 약하고 인기영합적 정책들이 조금 적을 뿐이다. 국민들이 흔쾌하게 따를만한 이념과 정책방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실현되리라고 믿어지는 꿈과 희망이 없다. 그러나 이래서는 안 된다. 중국의 제16차 전인대를 본받아야 한다. 국민들에게 국가경제를 이끌어갈 이념을 밝혀서 등대불 역할을 해야하고, 실현 가능한 꿈과 희망을 보여주어서 국민들이 따르게 해야 한다. 이것저것 다 해주겠다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책공약은 아니다. 한나라당은 각성하기 바란다. 민주당도 함께 각성할 일이다.

* 필자인 최용식님은 21세기 경제학연구소 http://www.taeri.org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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