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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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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크리스쳔 칼럼 (21회) by 임성은
“평신도와의 대화...”
1.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 긍정적 요소 많아
2. 담임목사와 평신도간 교회의 지향점 논의에 대한 열린 대화 필요
평검사와 대통령의 공개 대화가 무척 화제꺼리입니다.
“평검사가 잘 했다, 대통령이 잘 했다”라는 내용에서부터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파격적이다” 등 텔레비전, 신문, 인터넷 등 미디어 공간은 물론 사무실 등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다양한 의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걱정과 우려도 있었습니다. “문제마다 대통령이 나설 수 있느냐?” 혹은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면 중간층과 실무자들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느냐?”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양반문화와 군사독재의 권위주의에 눌려왔던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토론하는 모습은 신선하고 의미가 있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이번 토론을 보면서 ‘평신도와의 대화’, 이런 주제로 한번 나누어 볼까 합니다.
교회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구조를 민주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당회와 제직회, 공동의회(혹은 전체교인총회)로 이어지는 구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의 제도는 민주정치 제도의 근간이 되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체계적이고 뿌리가 깊다는 이야기지만, 교회가 커지고 활동이 많아지면서 사실상 형식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우선, 전체 교인이 참석하는 회의는 예결산 처리 등의 안건을 형식적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참석자 수가 많지 않은 실정이며, 제직회의 경우 또한 심도있는 논의보다는 교회 주요 안건의 개략적 보고나 통보에 가까운 실정입니다. 즉, 승인을 위한 회의, 또는 보고를 위한 회의에 가깝지 활발한 토론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하겠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무회의와 비슷한 실정이 됐다는 평가입니다.
대형교회의 경우는 제직회 주관을 부교역자에게 맡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담임목사의 과중한 업무를 덜어주고, 때로는 권한을 분산시킨다는 점에서는 일부 긍정적인 요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원인이 크게 중요하지도 않은 모임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는 지적은 담임목사 스스로 의사결정, 혹은 교인과의 대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반영하는 결과로도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어떠합니까? 그리고, 이런 결정구도에 대한 교인들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전반적인 사회 변화의 물결을 타고, 교인들의 문화도 많이 변했습니다. 과거의 교인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교회의 중대사를 논했습니다. 때로는 이 자리에 교역자의 흉을 보는 내용도 포함되는 등 지극히 음성적으로 진행돼 왔습니다. 최근에는 교인들의 표현 방법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젊은이를 중심으로 홈페이지 게시판에 비판적인 표현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안에 대한 찬반공방을 벌이기도 합니다.
교역자 중에서는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토론에 동참하는 분도 있고, 주도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여전히 담임목사와의 대화를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와의 개인적 만남은 매우 드물고, 심방을 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교회에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 그 일의 정확한 배경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하나의 안에 대한 간단한 제안 설명과 가부 의사를 묻는 절차만 따릅니다. 어지간해선 토론이란 일어나기 힘든 분위기입니다.
조그마한 문제 제기라도 할라치면, 신앙이 약하거나 순종의 미덕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합니다.
청취자 여러분!
대부분의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보면, 선과 악의 다툼이라기보다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 어떤 것이 더 급한가 라는 논쟁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정답 없는 논쟁에 직분을 이용하여 밀어붙이는데서 생기는 여러 가지 부작용들, 토론으로 한번 해결해 보면 어떨까요? 제자들과, 혹은 서기관들과 대화를 즐겨했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평신도와의 대화...”
1. 대통령과 평검사와의 대화, 긍정적 요소 많아
2. 담임목사와 평신도간 교회의 지향점 논의에 대한 열린 대화 필요
평검사와 대통령의 공개 대화가 무척 화제꺼리입니다.
“평검사가 잘 했다, 대통령이 잘 했다”라는 내용에서부터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파격적이다” 등 텔레비전, 신문, 인터넷 등 미디어 공간은 물론 사무실 등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다양한 의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걱정과 우려도 있었습니다. “문제마다 대통령이 나설 수 있느냐?” 혹은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면 중간층과 실무자들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느냐?”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 양반문화와 군사독재의 권위주의에 눌려왔던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토론하는 모습은 신선하고 의미가 있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이번 토론을 보면서 ‘평신도와의 대화’, 이런 주제로 한번 나누어 볼까 합니다.
교회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구조를 민주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당회와 제직회, 공동의회(혹은 전체교인총회)로 이어지는 구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역사적으로 교회의 제도는 민주정치 제도의 근간이 되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체계적이고 뿌리가 깊다는 이야기지만, 교회가 커지고 활동이 많아지면서 사실상 형식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우선, 전체 교인이 참석하는 회의는 예결산 처리 등의 안건을 형식적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참석자 수가 많지 않은 실정이며, 제직회의 경우 또한 심도있는 논의보다는 교회 주요 안건의 개략적 보고나 통보에 가까운 실정입니다. 즉, 승인을 위한 회의, 또는 보고를 위한 회의에 가깝지 활발한 토론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하겠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무회의와 비슷한 실정이 됐다는 평가입니다.
대형교회의 경우는 제직회 주관을 부교역자에게 맡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담임목사의 과중한 업무를 덜어주고, 때로는 권한을 분산시킨다는 점에서는 일부 긍정적인 요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원인이 크게 중요하지도 않은 모임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한다는 지적은 담임목사 스스로 의사결정, 혹은 교인과의 대화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반영하는 결과로도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는 어떠합니까? 그리고, 이런 결정구도에 대한 교인들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전반적인 사회 변화의 물결을 타고, 교인들의 문화도 많이 변했습니다. 과거의 교인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교회의 중대사를 논했습니다. 때로는 이 자리에 교역자의 흉을 보는 내용도 포함되는 등 지극히 음성적으로 진행돼 왔습니다. 최근에는 교인들의 표현 방법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젊은이를 중심으로 홈페이지 게시판에 비판적인 표현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안에 대한 찬반공방을 벌이기도 합니다.
교역자 중에서는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토론에 동참하는 분도 있고, 주도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은 여전히 담임목사와의 대화를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담임목사와의 개인적 만남은 매우 드물고, 심방을 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교회에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 그 일의 정확한 배경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하나의 안에 대한 간단한 제안 설명과 가부 의사를 묻는 절차만 따릅니다. 어지간해선 토론이란 일어나기 힘든 분위기입니다.
조그마한 문제 제기라도 할라치면, 신앙이 약하거나 순종의 미덕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합니다.
청취자 여러분!
대부분의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보면, 선과 악의 다툼이라기보다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 어떤 것이 더 급한가 라는 논쟁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정답 없는 논쟁에 직분을 이용하여 밀어붙이는데서 생기는 여러 가지 부작용들, 토론으로 한번 해결해 보면 어떨까요? 제자들과, 혹은 서기관들과 대화를 즐겨했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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