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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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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제가후(修身齊家後)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얼마전 오래된 서류들과 기타 여러 가지 소지품을 정리하다 보니 많은 서류들 가운데 반갑게 눈에 띠며 추억을 더듬게 만드는 서류들이 있었다. 다름아닌 필자가 한창 혈기왕성한때인 20대 말부터 30대 중반이 넘는 오랜 세월을(8년동안) 보내다시피한, 직업군인으로서의 미육군 복무시절의 서류와 사진과 많은 표창장, 그리고 미육군성 장관으로부터 받은 공로(?)메달만도 4개나 되었다.
그중에 눈에들어오는 반가운 사진속의 얼굴하나, 번쩍번쩍 빛나는 무거운 별을 두 개나 어깨에 달고 얼굴에는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성조기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위에 친필로 간단한 감사와 이별의 섭섭함을 메모와 함께 사인을 해서 필자에게 준 autograph속의 주인공은 바로 지난번에 미육군 참모총장직을 마지막 임기로 정년 퇴직한 Dennis R Rimer 육군대장(1987-88년 당시에는 ★★).
필자가 1985년부터 제대하던 1989년도 4월까지 한국에 가서 근무할 당시 용산에 있는 한미연합사에 근무하며 모시고 있던 상관이 바로 이 Rimer(라이머) 장군, 그 당시의 장군이 맡고있던 직책명은 조금 길었다. UN군사령부 . 한미연합사 . 주한미군 . 미 8군의 작전참모부장직을 모두 겸임하고 있었으며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Team split작전을 비롯한 모든 한미연합작전을 통괄 지휘하는 부서의 장으로서 많은 한국군과의 접촉 및 부대 방문 등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의 임무는 매우 막중하였다.
필자의 보직은 60이 거의 다된 백인 할머니(?) 비서가 장군의 매일매일의 스케줄을 작성해주면 그 시간에 맞추어서 장군의 업무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안전하게 모시고 다니는, 다시 말해서 사병(하사관)이지만 부관의 역할이자 운전기사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사실 그 당시 서울의 분위기는 양키 Go-home을 외치며 Anti-America가 한창인 때라 미군 제복을 입고, 차가 일반 Sedan일지라도 별판을 단 미군소속의 차량으로 장군을 태우고 서울시내를 다니는 것이 조금은 불안할 정도였기 때문에 신호대기에서 정차하고 있는 동안에 사람들이 길을 건너려고 우르르 몰려오면 혹시 데모대가 아닌가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실지로 당시에 데모대를 만나 돌 세례를 받은 장군차량이(다행히 방탄차량임) 있었음)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그 복잡한 서울시내에서의 운전을 아무사고없이 모든업무수행을 마칠 수 있었음을 다시 한번 감사....
서울에서 운전을 하는 동안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잊지 못할 한가지, 어느 날 저녁에 워커힐에서 모임이 있어서 가는데 데모대로 인하여 교통이 막혀서 제시간에 맞추어 정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재빠르게 U-Turn하여 후문으로 갔더니 아뿔싸 후문은 One Way(Do not Enter)로서 들어갈 수 없는 입장,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후진(Back-Up)으로 들어가서 무사히 시간 내에 도착하고 나니 타고있던 장군도 혀를 내둘렀음을 직감...*^^_^^*
어느 하루, 부부동반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장군내외가 대화를 주고받는데 조금은 심각(?)하다. 내용을 들어보니 돌아오는 주일날 대통령이(5공당시) 골프 초청을 하였는데(1년에 몇 차례 미군 장성들을 초청하여 골프를 즐김) 그 날이 마침 High School에 다니는 딸아이의 평생에 한번 하는 종교적인(카톨릭의 견진 성사 . 개신교의 입교식과 같은) 행사에 꼭 참석하기로 딸과의 선약이 되어있는 상황이라 이것을 어떻게 하나 난감해하며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데(만약 필자나 우리 한국의 남성분들이 이 상황이라면 정답은 이미 이렇게 나와있지 않을까! "여보! 미안하지만 당신이 혼자 딸을 데리고 갔다오구려, 나는 각하와 골프를....) 결론은 골프에 불참하고 딸과의 귀한 약속을 이행하기로 결정하니 Wife가 조금은 불안한 듯이 물어본다. "여보! Mr. President가 초청했는데 괜찮겠어요?" "할 수 없지 중요한 선약이 있어서 그렇다고 Excuse를 하는 수밖에.."
운전을 하며 듣고있던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역시 가정과 가족을 일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미국인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 후로 임기를 모두 마치고 돌아간 장군은 성탄절에는 카드를 사병이었던 나에게까지 잊지 않고 보내는 배려를 보였는데 그 후에 필자도 제대를 하고, 가끔 펜타곤(미국방성) 뉴스에 보이는 그 장군의 견장에는 별이 3개가되더니 어느 날인가는 4개를 달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육군의 최고위직에 있다가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정년 퇴직하는 것을 보았다. 수신제가후(修身齊家後)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고...역시 가정을 잘 다스리더니 결국은 육군의 최고위직에까지.....
우리 주님께서 만약 우리 믿음의 지체들을 보시면 혹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실 까?.....
"수신제가후(修身齊家後) (집사 . 권사 . 장로 . 목회)하거라....
"수신제가후(修身齊家後) (봉사 . 선교 . 전도 . 헌신)하거라".....
미국 CA에서 윤집사
얼마전 오래된 서류들과 기타 여러 가지 소지품을 정리하다 보니 많은 서류들 가운데 반갑게 눈에 띠며 추억을 더듬게 만드는 서류들이 있었다. 다름아닌 필자가 한창 혈기왕성한때인 20대 말부터 30대 중반이 넘는 오랜 세월을(8년동안) 보내다시피한, 직업군인으로서의 미육군 복무시절의 서류와 사진과 많은 표창장, 그리고 미육군성 장관으로부터 받은 공로(?)메달만도 4개나 되었다.
그중에 눈에들어오는 반가운 사진속의 얼굴하나, 번쩍번쩍 빛나는 무거운 별을 두 개나 어깨에 달고 얼굴에는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성조기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 위에 친필로 간단한 감사와 이별의 섭섭함을 메모와 함께 사인을 해서 필자에게 준 autograph속의 주인공은 바로 지난번에 미육군 참모총장직을 마지막 임기로 정년 퇴직한 Dennis R Rimer 육군대장(1987-88년 당시에는 ★★).
필자가 1985년부터 제대하던 1989년도 4월까지 한국에 가서 근무할 당시 용산에 있는 한미연합사에 근무하며 모시고 있던 상관이 바로 이 Rimer(라이머) 장군, 그 당시의 장군이 맡고있던 직책명은 조금 길었다. UN군사령부 . 한미연합사 . 주한미군 . 미 8군의 작전참모부장직을 모두 겸임하고 있었으며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Team split작전을 비롯한 모든 한미연합작전을 통괄 지휘하는 부서의 장으로서 많은 한국군과의 접촉 및 부대 방문 등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의 임무는 매우 막중하였다.
필자의 보직은 60이 거의 다된 백인 할머니(?) 비서가 장군의 매일매일의 스케줄을 작성해주면 그 시간에 맞추어서 장군의 업무수행에 차질이 없도록 안전하게 모시고 다니는, 다시 말해서 사병(하사관)이지만 부관의 역할이자 운전기사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사실 그 당시 서울의 분위기는 양키 Go-home을 외치며 Anti-America가 한창인 때라 미군 제복을 입고, 차가 일반 Sedan일지라도 별판을 단 미군소속의 차량으로 장군을 태우고 서울시내를 다니는 것이 조금은 불안할 정도였기 때문에 신호대기에서 정차하고 있는 동안에 사람들이 길을 건너려고 우르르 몰려오면 혹시 데모대가 아닌가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실지로 당시에 데모대를 만나 돌 세례를 받은 장군차량이(다행히 방탄차량임) 있었음)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그 복잡한 서울시내에서의 운전을 아무사고없이 모든업무수행을 마칠 수 있었음을 다시 한번 감사....
서울에서 운전을 하는 동안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잊지 못할 한가지, 어느 날 저녁에 워커힐에서 모임이 있어서 가는데 데모대로 인하여 교통이 막혀서 제시간에 맞추어 정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서 재빠르게 U-Turn하여 후문으로 갔더니 아뿔싸 후문은 One Way(Do not Enter)로서 들어갈 수 없는 입장,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후진(Back-Up)으로 들어가서 무사히 시간 내에 도착하고 나니 타고있던 장군도 혀를 내둘렀음을 직감...*^^_^^*
어느 하루, 부부동반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장군내외가 대화를 주고받는데 조금은 심각(?)하다. 내용을 들어보니 돌아오는 주일날 대통령이(5공당시) 골프 초청을 하였는데(1년에 몇 차례 미군 장성들을 초청하여 골프를 즐김) 그 날이 마침 High School에 다니는 딸아이의 평생에 한번 하는 종교적인(카톨릭의 견진 성사 . 개신교의 입교식과 같은) 행사에 꼭 참석하기로 딸과의 선약이 되어있는 상황이라 이것을 어떻게 하나 난감해하며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데(만약 필자나 우리 한국의 남성분들이 이 상황이라면 정답은 이미 이렇게 나와있지 않을까! "여보! 미안하지만 당신이 혼자 딸을 데리고 갔다오구려, 나는 각하와 골프를....) 결론은 골프에 불참하고 딸과의 귀한 약속을 이행하기로 결정하니 Wife가 조금은 불안한 듯이 물어본다. "여보! Mr. President가 초청했는데 괜찮겠어요?" "할 수 없지 중요한 선약이 있어서 그렇다고 Excuse를 하는 수밖에.."
운전을 하며 듣고있던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역시 가정과 가족을 일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미국인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그 후로 임기를 모두 마치고 돌아간 장군은 성탄절에는 카드를 사병이었던 나에게까지 잊지 않고 보내는 배려를 보였는데 그 후에 필자도 제대를 하고, 가끔 펜타곤(미국방성) 뉴스에 보이는 그 장군의 견장에는 별이 3개가되더니 어느 날인가는 4개를 달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육군의 최고위직에 있다가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정년 퇴직하는 것을 보았다. 수신제가후(修身齊家後)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고...역시 가정을 잘 다스리더니 결국은 육군의 최고위직에까지.....
우리 주님께서 만약 우리 믿음의 지체들을 보시면 혹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실 까?.....
"수신제가후(修身齊家後) (집사 . 권사 . 장로 . 목회)하거라....
"수신제가후(修身齊家後) (봉사 . 선교 . 전도 . 헌신)하거라".....
미국 CA에서 윤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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