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보다는 칭찬을...
큰딸이 이번 중간고사에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무척 고민했습니다.
과연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딸이 자신의 잘못된 학습태도를 깨닫고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까하고요
저는 딸을 앉게 한 후에
이번 시험에서 왜 떨어졌는지를 스스로 생각해 보라하면서
반성문을 쓰라고 했습니다.
큰딸은 이번 시험에서 잘못한 원인 7가지와
시험 향상을 위한 7가지 계획을 썼습니다.
저는 그것을 딸에게 읽어주면서 그대로 실천할 것을 약속 한 후에
축복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큰애는 한참동안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이전 같으면 저는 분명 큰 소리로 잔소리 한 후에
경고의 의미로 매를 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대했습니다.
그것은 백 마디 잔소리보다 사랑의 격려가
훨씬 나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서
사람은 힘으로 돈으로 명예로 그리고 권세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의 격려'로 산다고 했습니다.
저는 짧은 목회를 통해 그 진리를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것은 '잔소리'를 통해서는 사람이 절대로
변화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뒷받침할 만한 좋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미개한 남아프리카 '바벰바부족'에서는
범죄가 거의 없는 마을인데 어쩌다가 범죄자가 생기면
그 범인을 마을 한 복판 광장에 세운 후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범죄자에 대한 장점과 선행들에 대해
아이들까지 칭찬을 하게 합니다.
판사도 검사는 없고
오직 수 백 명의 변호사만 있는 이상한 법정에서
범인은 자신의 칭찬을 듣고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눈물겨운 결심이 섰다고 인정 될 때
그 때부터 마을 축제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는 그런 축제를 기다려도
축제가 열 일이 거의 없어서
오히려 섭섭하게 여길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칭찬은 바보를 천재로 만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GE 전 회장 잭 웰치는
어린 시절 심한 말 더듬이였다고 합니다.
이런 잭에게 어머니는 늘 이런 말로 격려했습니다.
"네가 말을 더듬는 이유는,
생각이 너무 빨라서 입이 그 속도를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너는 커서 큰 인물이 될 것이라."
지금 제 딸에게 필요한 것은
'잔소리'가 아니라 부모의 '따뜻한 격려'와 '칭찬'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사람은 Lip Service(입술서비스)가 약합니다.
'말'은 돈 한푼 안 들어가는 일인데도 '말'로서
상대를 격려하고 세워주는 일에는 얼마나 인색한지 모릅니다.
저도 남에게는 립 서비스를 잘하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집에서는 인색한 모양입니다.
저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지금 누구를 비판하고 있는가
그리고 누가 나를 자주 비판하고 있는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인생의 황금률처럼
인생은 역시 뿌린 대로 거두는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적극적으로 칭찬했던 사람들은 저를 칭찬하고
그리고 제가 평소 칭찬하지 않았던 사람이
저를 비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반대 경우도 많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
사람은 받은 대로 베푼다고
칭찬 받았던 아이는 나중에 커서도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사람이 되고
언제나 비난만 받았던 아이는
다른 사람을 똑같이 비난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런 실험이 있었습니다.
밥 3공기를 각기 다른 그릇에 넣었습니다.
첫 번째 밥은 그냥 넣어두었고
두 번째는 칭찬을 많이 하고서 넣었고,
세 번째는 욕을 실컷 하고서 넣어두었습니다.
몇 일 뒤에 그 밥이 든 그릇을 커내 보니,
그냥 넣어두었던 밥은 썩기만 했고
칭찬을 하고서 넣어둔 밥은 묘한 향을 품기면서 썩어있고
욕을 하고 넣어둔 밥은 심한 악취가 나더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물을 냉동실에 각각 넣어두었습니다.
그냥 넣어둔 물은 보통 얼음처럼 얼려 있었고
칭찬을 하고 넣어 둔 물은
결정체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고,
욕을 하고 넣어 둔 물은
결정체가 각기 다른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무 느낌도 없는 밥과 물도
칭찬에 따라 이런 변화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은 얼마나 큰 영향을 받을까요...
그러므로 칭찬은
우리 생의 기쁨의 시작이요
우리가 일할 때 일의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연약한 우리들이 자신을 지키는 것도 칭찬이요
인격의 최종관문도 역시 칭찬에 달려있습니다.
시편의 구조를 살펴보면
개인의 '탄식'이 있은 후에 이웃을 위한 '탄원'이 나옵니다.
그 후에야 비로서 '찬양'이 나옵니다.
찬양이란 쉬운 말로 '칭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누군가를 칭찬한다는 것은
자신의 탄식과 이웃의 탄원이 있은 후
이제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미요 찬양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인에게 칭찬하기를 꺼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찬양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타인에게 자신도 칭찬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자화자찬(自畵自讚)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자기영광'이요,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자기우상'입니다.
바로 이것을 우리는 가장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
이제는 잔소리보다는
칭찬하는 입술이 되게 하소서
이제는 허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장점을 바라보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종이 되게 하소서
주님,
후에 당신을 만날 때 당신께
칭찬 받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이 땅에서 내 이웃을 칭찬하고
저도 또한 그들에게 칭찬을 받게 하소서
주님,
가장 조심해야할 일은
타인에게 욕을 얻어먹는 한이 있다해도
이 종이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는 어리석음에 범하게 않게 하소서
2003년 6월 9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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