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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화상엔 바를 약도 아깝다

보시니............... 조회 수 1348 추천 수 0 2003.07.27 09: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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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화상엔 바를 약도 아깝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맞이하는 홀가분한 여름, 텔레비전으로만 동해바다를 구경했던 나는 가르치던 교회 중등부 아이들 네 명을 데리고 무작정 동해안 행 고속버스에 올라탔다. 늘 누군가의 그늘 아래서 지내던 내가 책임자라니! 그러나 부담감보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첫 번째 도전'이라는 거창한 자위 의식이 앞섰다. 함께 가는 아이가 좋은 해수욕장을 안다고 해서 그곳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그런데, 장엄한 첫발부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강원도 양양에 도착한 우리는 목적지를 잘 몰라서 택시를 잡아탔다. 하차하면서 요금을 내려니 따블이란다. 윽, 출발부터 재정에 구멍이 ….
몇 마디 궁시렁궁시렁(물론 속으로) 한 후에 터를 잡았다. 폴대가 필요없이 공기만으로 세우는 텐트였다. '이거 편하네'하며 열심히 바람을 넣었는데, 이궁 꽉 막아주는 마개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어찌어찌 대충 틀어막았다.
이제 두 번째 재정 버그가 발생할 시점. 두 사람이 손에 무슨 장부를 들고 다가오더니 자릿세가 얼마란다. 눈물 젖은 돈뭉치를 건네고 또 한번 한숨 푸욱∼.
낙심한 아이들을 독려하면서 저녁은 둘째치고 짠물 좀 먹어 보자며 바다를 향해 전력 질주! 믿거나 말거나 동해에 발 담근 건 처음이어서 애들보다 내가 더 설쳤다. 서해의 시금털털한 물빛과는 확연히 달랐다. 물장구 치다가 저녁은 라보때로 끝냈다. 그게 뭐냐구? '라면 보통으로 때워!' 날은 어두워지고 텐트에 들어갈 시간. 이게 웬일? 아까까지 위태롭지만 서 있던 텐트가 바람 빠진 공처럼 흔적만 있다. 원인은 마개. 다시 바람을 대충 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머슴아들끼리 안에서 진지한 대화로 즐거움을 찾긴 어렵고 거금을 투자해 산 '블루마블'이라는 주사위 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행복했다. 침침한 랜턴 불빛마저 정겨웠다. 잘 무렵 되니 텐트는 또 주저앉고 있었다. 좁은 데서 다섯 장정이 텐트마저 이불보 삼자니 너무 더웠다. 그렇다고 밖에서 자자니 그쪽은 모기 군단이 작전 활동중이고. 할 수 없이 대충 시간을 정해 돌아가면서 발로 천정을 받치는 봉사를 하기로 했다. 선생님이라고 순번에서 빼줄 줄 알았더니 괘씸한 녀석들. 이렇게 첫날은 흐지대충 어리버리 지나갔다 ….
다음 날, 아침밥은 걍굼(그냥 굶어), 점심은 바다에서 주워 온 모시조개에 고추장과 기타 양념을 대충 풀어서 조개탕을 끓여 먹었다. 라면과 계란프라이 말고 내가 해 본 최초의 요리였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동해안 모래사장 처음 밟아 본 촌놈이 썬텐이란 것을 해 본답시고 기름을 온몸에 덕지덕지 바르고 낮 1시부터 2시까지 모래사장에 벌렁 누워버렸다. 못 견디게 뜨거웠지만 바다 갔다 온 티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 그 정도 고통은 참을 수 있었다 ….
말이 필요 없다. 돌아올 때 반바지, 나시 차림이었는데 버스 안에서 꾸벅 졸다가 허벅지가 어디에 닿을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깨어났다. 칼로 슬쩍 베어내는 느낌. 알만한 사람만 안다. 3일 간을 불지옥을 드나들며 회개(후회)했고, 주일 성가대 찬양 때는 화상으로 발목이 부어 올라 앉아서 찬양해야 했다. '내가 다시는 이렇게 미련한 짓을 하나 봐라 ….'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일주일만에 전교인 수련회를 가게 되었는데 장소는 동해안.
여전히 모래사장에 누워 땀을 뻘뻘 흘리며 태양과 싸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 26: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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