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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근심으로(약4:6-10)
성경 : 약4:6-10
제목 : 즐거움을 근심으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는 외침은 어느새 기독교의 메시지 중심으로 자리잡
고 있습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의 방법이 하나님을 알고 신앙으로 살아
가는 일을 쉽고도 옳게 해결하는 것처럼 전하고 있지만,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은 결
코 생각 차이로 신앙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아주 부정적인 교훈으로 우리들의 정서를 현대인들의 적극적 사고
방식에서 돌이키게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더 큰 은혜를 받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적극적인 생각보다 오히려 본문에 의하면 기뻐하며 살아가는 생각을 근심하는 태도
로 바꾸라고 합니다. 주님의 속 깊은 뜻을 헤아리고자 합니다.
1. 세속적인 즐거움은 은혜가 아니다
9절,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라고 한 말은 세상적으로 얻는 즐거운 마음을 애통으로 바꾸라는 말입
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뻐하고 유쾌한 마음을 가져야 활기 차고 사는 맛이 납
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실 더 큰 은혜를 힘입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합
니다.
본문 6절과 10절에서 거듭 권면하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는 것입니다.하나
님 앞에 겸손하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본장 4절 후반에 기록한 말씀,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
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처럼 세상에서 얻는 명예욕이나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사로잡히는 것들은 모두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한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려 하면 그러한 욕심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이것을 성경은 하
나님 앞에 겸손이라 합니다. 동양윤리의 겸손은 인간에게 하는 인격적 겸손이지만
성경은 하나님께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는 것이 겸손이라고 가르칩니다.
현대를 풍요 속에 빈곤의 시대라고 일컫기도 하는 것은 그처럼 세상의 것들로 채운
행복한 마음은 책임 질 수 없이 공허하고 메마른 영혼의 갈증을 느끼게 한다는 것
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고, 없이 사는 것 같아도
마음이 풍요하게 되는 영적 부요를 가지게 하시는 행복입니다. 행복의 조건이 세상
의 문화적 환경이라고 여기면 기독교 신자라도 겉으로는 행복한 척 하는 것뿐이지
진정으로 행복한 마음은 없을 것입니다. 교인이라도 그런 가치관으로 살게 되면 공
허한 생각으로 고통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고후 6:9-10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
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와 같은 고백이 입술로 나올 수 있는 자라면 진실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입
은 자이며 땅에서도 분명히 잘되게 하시는 축복이 제공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세상으로는 슬프다
8절,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
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본문에는 하나님과 마귀를 대조시키며, 마귀는 대적하고 하나님께는 순복하라고 합
니다.
7절,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
하리라'
마귀(디아볼로, diabovlw)는 '비방하는 자',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이간질하여
하나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거짓 신입니다. 그리고 교만한 놈으로 세상에 거칠고
교만하고 잘난척하게 하고, 세상적으로 자랑하게 하고, 세상적인 방법과 가치와 이
해와 협상을 하게 하고, 하나님의 특별하고도 불변하신 창조와 능력과 힘과 축복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봉과 기도하는 것을 빼앗고, 기(氣) 운동, 점치는 일, 학
문적으로 진리를 거슬리는 일, 괴변을 늘어놓는 일 등을 시킵니다.
사람들의 근성에 알맞고 따르기 알맞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적당히 접근하기 편한
것들로 유혹하여 기독교보다 좋다든지, 혹은 기독교라는 종교의 이름으로 사이비
선생을 사용하여 이단이 되게 하고 그 이단을 따르게 하는 마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다 모르지만 계시하신 말씀을 따르려고 애쓰고, 그대로 살려
고 하면 세상적으로는 근심이 되고 아픔이 오고, 핍박과 오해와 갈등이 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이러한 일들이 생기는데, 주님은 이미 예언해주셨습니다.
마 10: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
하게 하려 함이니라'
바른 기독교적 생활을 계속하면 역시 계속적인 충돌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우리가
감당해야 할 어려운 운명적인 생활입니다.
핍박을 얻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마귀가 세상 끝날 까지 기독교 생활
을 핍박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생활은 문화적 양식 차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찾아도 되고 안해도 되
고, 예수교만 아니라 다른 종교도 믿어도 되고..., 이런 식으로 기독교를 이해하려
하면 하나님이 주실 진정한 혜택이 없을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종교는 자유가 있
다는 식으로 기독교를 이해하면 참으로 하나님이 주실 은총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
다.
진리는 단 한가지 뿐이며 하나님도 단 한분이십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
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
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이와 같은 일방적인 말씀에 근거하여 이 합리적인 세상을 살아가려고 하면 당연히
부딪히고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과 하나님을 반반씩 섞어서 잘 살아가 보려는 마음은, 본문 8절에 말하
고 있는 두 마음을 품은 자입니다.
두 마음, 하나님도 믿고자 하고 세속적인 가치나 평가를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마
음이 합쳐져서 진리가 구별되지 않고 추한 자가 되지 말고 마음을 성결하라고 했습
니다.
슬픈 마음, 근심되고 고난스러운 것은 말도 하지 말라는 오늘날 세상 교인들이 슬
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의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
는 이 가르침과 명령을 받을 때, 싫은 마음이 있겠지만 이 시대에 가장 평안의 축
복을 얻는 길은 이 말씀대로 순종해야 참된 구원과 은총을 힘입게 될 것입니다.
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어찌어다'고 하는 이 순복할지어다
(uJpotavghte, 휘포타게테)는, 원어상 단순과거, 명령법으로 이미 그렇게 순종해야
했었고, 또한 지금 즉시로 행동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은 나중에,다
음에가 아니라 즉시로 순종하여 행동하는 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3. 모든 복된 신자들은 겸손했다
우리들의 경험을 말하고자 합니다. 구약이나 신약에서 우리는 겸손한 자들이 은혜
를 받았던 사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겸손한 자의 말이나 행동이 현대인들에게는 약하게 보이거나 소극적인 태도로 여기
기 쉽지만 성경은 결코 소위 터프하고 강하게 비치는 태도가 승리자의 모습이라 하
지 않습니다.
우선 예수님을 연상할 때 어떠합니까? 주님이 활기차시고, 군중들 속에서 환희로
즐거워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세상을 향하여 아파하시고 줄
곧 기도하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소위 시쳇말로 하자면 부정적으로 보시고 회개하
여 변화되기를 기도하시며 권면하셨습니다. 베드로, 바울, 요한 그 모든 제자들도
주님을 닮아, 날마다 핍박과 고통을 받으면서 복음을 위하고 교회의 성결과 구별된
성도의 정체성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세가 겸손하여 이스라엘 영도자로 부름을 입었고, 사울왕은 교만하여 버림을 받
았으며,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리며 겸손하니 은혜를 입었으나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 섬기는 일을 막지 않고, 영화로운 왕좌에서 세상을 즐기니 나라가 나뉘어 지
고 어지러워졌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겸손하되 날마다 자신을 쳐 복종 시키니 날마다 주의 능력이 나타났
고, 한국교회가 하나님 제일주의로 섬길 때, 개화와 물질의 축복과 자유와 교육과
의술과, 갖가지 문화의 혜택을 입게되는 축복을 환난과 함께 입었습니다.
교회사적으로는 겸손으로 주를 섬길 때, 고신교단을 위시하여 여러 보수교단이 은
혜를 입었으나 교만한 뒤로는 전통만 자랑하는 가운데, 현 한국교회는 해마다 사회
에 너무 부끄러운 사고가 일어납니다. 현대교회가 해야 할 급선무는 하나님 앞에
겸손을 찾는 일입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이 없고, 세상에서 말하는 소리에 귀
를 기울이고, 선지자된 지도자들이 진리를 힘차게 외치기 보다 사람들을 이해하는
일에 급급하여 지극히 신성하고 계시적이며 주도적인 영권이 없고, 교회가 세인들
에게 정신적으로 무시를 당하는 형편에 와 있습니다.
교회가 큰 만큼 사람도 그렇게 교만할 수가 없고, 직분자들의 교만과 경제력 있는
신자들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성도들에게 위세를 부립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높아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라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까?
본문 10절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하신 말씀
을 기억하고 이제라도 우리가 세상의 힘에 의존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고 겸손히
주를 섬기려 하면 사람에게도 존경받을 뿐 아니라, 6절 첫 부분에 이른 말처럼 '더
욱 큰 은혜'를 입게 될 줄 믿습니다.
마 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
아지리라'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교회 지도자들만의 교훈이 아니라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복을
주실 때 선행되어야 할 성도의 정신을 말합니다. 그것은 인격적으로 겸손함과 동시
에 세속적의 처세나 가치관에서 절제하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는
간절한 태도를 뜻합니다.
어느 시대나 오늘 주시는 말씀, 9절,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
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라고 하신 말씀대로 성도는 앉으나 서
나, 어디에 가나 자랑하지 말고 겸손히 자신이 받은 은혜마저 조심스럽게 안으로
감추고 세상이 주는 즐거움이나 교만한 자랑의 마음이 튀어나오지 않게,
항시,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던
바울 사도의 말처럼,
우리 성도들의 모습은 세상이 볼 때, 항시 근심하는 자 같이 보일지라도 주님이 우
리 안에 계실 수만 있다면 그렇게 애통하고, 울고, 근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처세보다 훨씬 더 큰 힘을 하늘로부터
얻을 수 있는 축복의 생각인 줄 알고 세속주의에 안위를 찾고 즐거워하는 일에서
돌이키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 최용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2-0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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