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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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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3월 15일 (05시 15분)
의회는 과연 노무현을 제거할 것인가
3월 15일에 제거된 카이사르(시이저)를 추모하며
지금으로부터 약 2밀레니엄 전, 정확히는 2048년 전 오늘 로마의 카이사르는 원로원에 비무장으로 입장했다가 증오심에 미쳐버린 원로원 의원들의 칼날 아래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미 카이사르가 한 번의 대승을 거둔 후였습니다. 로마의 모든 기득권세력이 똘똘 뭉쳐 폼페이우스를 얼굴 마담으로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펼쳤으나 원로원으로 상징되는 기득권 세력은 무참히 패배했습니다.
1차 회전에서는 패배했지만 카이사르의 관용정책에 힘입어, 그리고 어차피 한 번의 전쟁으로 솎아지기에는 그 기득권의 뿌리가 너무도 깊고 넓기에 원로원 의원들은 카이사르 암살 당시 아직도 세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원로원파의 입지가 좁아질 거라는 건 명약관화한 상황이었지요.
거기다 조금 있으면 카이사르파 즉 민중파, 즉 개혁파의 결정적 승리가, 기득권파의 결정적 패배가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카이사르가 로마의 숙원이었던 파르티아 원정을 떠나기로 한 겁니다. 전쟁의 천재 카이사르가 출정하기만 한다면 승리하지 못 할 리가 없고 그렇게 되면 원로원파는 절대로 카이사르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 원로원파는 카이사르가 출정하기 전에 기습하기로 결심합니다.
원로원 회의장에는 무기를 지닐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건 로마인의 상식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로원 의원들은 카이사르의 신변을 지키겠노라고 약속까지 한 상황이었습니다.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도 로마인의 상식이었습니다. 그 상식을 믿고 카이사르는 경호대를 해산했으며 원로원에도 가벼운 차림으로 안심하고 입장했습니다.
하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몰락의 그림자에 미쳐버린 원로원파는 상식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칼을 품고 입장했고, 방심한 카이싸르를 십수명이 달려들어 난자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기득권 계급의 위기가 곧 로마의 위기라고 착각했고, 자기들의 위기감과 불쾌감을 전 민중이 함께 느끼고 있다고 오판했습니다.
카이사르를 죽이고 "(공화정의) 자유가 회복됬다!", "폭군은 죽었다!"라고 외치며 달려 나간 그들에게 돌아온 건 로마 시민들의 분노였습니다. 상식을 어긴 그들을, 민중의 지도자를 앗아간 그들을 민중은 증오했습니다.
"시민들이여! 마누라를 숨겨라. 대머리 난봉꾼이 나가신다!" 폼페이우스군과의 결전을 마치고 로마에서 거행된 카이사르의 개선식에서 카이사르 군단병(로마의 군단병은 시민이고 중산층이었습니다.)들이 외친 구호입니다. 카이사르는 이렇게 민중들에게 사랑받는 지도자였습니다. 마치 바보 노무현처럼 말입니다. "대머리 난봉꾼"이어서 근엄한 원로원파에게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일까요?
부평초 인생을 살다가 원로원파의 후안무치한 공격에 시달리는 노무현을 보다못해 컴잉아웃한 것이 작년 10월 경입니다. 그 때 "내년 3월 15일이 되면 카이싸르 추모글을 하나 써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메모해 둔 제목이 "의회는 과연 노무현을 제거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런데 원로원이 진짜로 노무현에게 일격을 가하자 공황에 빠져버린 저는, 어느 정도로 공황에 빠졌냐면 도저히 밝힐 수 없는 창피한 일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어제는 지하철에서 무심히 내리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는 이적까지 벌어졌는데요, 어쨌든 공황에 빠진 저는 카이사르 건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일요일 케이비에스 100인 토론에서 이동복이라는 추잡한 자가 의회는 호민관이라는 둥, 호민관으로서 원로원은 로마의 지도자와 싸웠다는 둥 추잡한 언설을 늘어놓는 것을 보며 퍼뜩 이 껀이 생각났습니다. 민중을 지키는 호민관은 언제나 원로원의 적이었고 원로원은 그들의 철밥통을 건드리는 호민관을 계속해서 제거해왔는데, 귀족정을 획책하는 원로원에 의해 제거된 마지막 민중파 정치지도자가 카이사르인데, 이런 역사적 배경을 모를 리가 없는 자가 여론조작을 하기 위해 악랄하며 추잡한 궤변을 늘어놓더군요. 그 자의 궤변에 대해선 할 말이 더 있지만 인생이 불쌍하니 일단 줄이고.
옛날엔 매스미디어나 인터넷이 없었습니다. 국가 단위의 민주주의가 불가능했던 것이지요. 이른바 로마공화정의 선거는 철저한 조직선거에, 보스 금권정치 구조였습니다. 카이사르와 노무현의 차이는 제정과 민주주의라는 그 하나에 있습니다. 제정과 민주주의는 정 반대의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민주의 반대는 제정이나 왕정이 아니라 귀족정입니다. 왕정은 귀족정에서 민주공화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일 경우가 많습니다. 귀족정은 과두정입니다. 과두정은 소수가 끼리끼리 배타적인 이너써클을 형성해서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귀족, 호족 연합정권의 형태를 띄게 되지요. 로마공화정, 화백제도, 서울대공화국, 친일파-조선-정치자영업자카르텔 등등 말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공화국의 호민관, 노무현대통령에 그리도 적개심을 드러내는 겁니다.
원로원이 폼페이우스를 영입한 것은 수구세력이 이회창을 영입한 것과 같습니다. 최고의 캐리어를 가진, 광범위한 지지기반이 있는 존경받는 지도자와 어느 날 뚝 떨어진 신출나기이지만 민중의 사랑을 받는 대머리 난봉꾼의 대결은 곧 로마의 세대 대결이기도 했습니다. 구세대는 폼페이우스, 신세대는 카이사르였습니다. 폼페이우스에겐 사회 지도층 인사가 다 모여들었고, 카이사르 주위엔 30~40대의 중간관리자급 청장년층이 몰려들었습니다.
카이사르의 관용에 구세력은 불관용으로 맞섰습니다. 노무현이 오냐오냐 해주니까 아주 기어올라서 밟아버리려는 자들처럼 말입니다. 국세청과 검찰, 안기부를 동원해 자근자근 밟아 주었다면 저들이 이렇게까지 참혹하게 나올 수 있었을까요? 이에 대한 대응은 피의 복수였습니다. 카이사르 암살 후 아우구스투스는 철저한 숙청을 단행합니다.
카이사르에게 칼질을 한 사람들 중에는 공화정 지지자인 지식인 마르쿠스 부르투스와 카이사르의 한 팔이었던 데키우스 부르투스가 있습니다. "부르투스 너마저"의 그 부르투스가 이 둘 중 누구일까하는 문제는 아직도 수수께끼입니다.
데키우스 부르투스는 자신이 카이사르 후계구도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클레오파트라와 염문을 뿌리게 되는 안토니우스를 누를 수 없다는 한계가 데키우스에게는 있었지요. 노무현과 추미애, 정동영이 생각납니다. 추미애는 데키우스같은 마음으로 칼질을 한 걸까요? 마르쿠스 부르투스는 자신이 보편적 가치를 대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양가 없는 쓴소리를 일삼는 지식인들의 행태는 20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군요. 마르쿠스 부르투스는 자신이 결과적으로 수구세력의 칼잡이 노릇을 했다는 걸 자각했을까요?
개혁의 큰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두번째 전쟁이 시작됬습니다. 의회에서 칼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는 누구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한번 굴러가기 시작한 바퀴는 마차의 무게로 길이 없어도, 길을 만들면서 나아갑니다. 멈추게 하는 방법은 마차를 뒤집는 수 밖에 없습니다. 기득권세력이 총 집결해 지금 마차를 뒤집으려 하는 중입니다.
로마는 단 몇년간을 통치했을 뿐인 카이사르의 작업에 의해 시스템을 갖추면서, 수백년간의 전성기를 엽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1년 동안에 우리나라를 엄청나게 변화시켰고, 지금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짧게는 이번 주 안에 길게는 한달 안에 우리나라가 로마처럼 수백년의 전성기를 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가 결정됩니다.
우리 국민의 저력은 능동적 참여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을 때 나타난다. 그냥 보고만 있다가, 어떤 계기로 하나 둘 참여하게 되면,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하면서 기적을 일궈냅니다. 이번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쨌든 결과적으로 한민당께서 그 "어떤 계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멍석은 최병렬-조순형 콤비가 깔아 주었습니다. 우린 그 위에서 놀기만 하면 됩니다.
지금은 2000년전과 달리 문명국가라서 국회의원이 진짜로 대통령에게 칼질하지 않습니다. 문명사회의 폭력은 보이지 않게 서서히 진행됩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일격을 당한 카이사르는 속절없이 불귀의 객이 됬지만, 서서히 당하고 있는 노무현은 우리가 지킬 수 있습니다. 저녘마다 거리로 뛰쳐나가 촛불들고 놀기만 하면 됩니다. 웃고 즐기는 사이에 귀족지망자들은 황혼을 맞이합니다. 오늘의 이 순간이 우리 모두의 벅찬 자부심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2004.3.15. 울지아나드림
의회는 과연 노무현을 제거할 것인가
3월 15일에 제거된 카이사르(시이저)를 추모하며
지금으로부터 약 2밀레니엄 전, 정확히는 2048년 전 오늘 로마의 카이사르는 원로원에 비무장으로 입장했다가 증오심에 미쳐버린 원로원 의원들의 칼날 아래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미 카이사르가 한 번의 대승을 거둔 후였습니다. 로마의 모든 기득권세력이 똘똘 뭉쳐 폼페이우스를 얼굴 마담으로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펼쳤으나 원로원으로 상징되는 기득권 세력은 무참히 패배했습니다.
1차 회전에서는 패배했지만 카이사르의 관용정책에 힘입어, 그리고 어차피 한 번의 전쟁으로 솎아지기에는 그 기득권의 뿌리가 너무도 깊고 넓기에 원로원 의원들은 카이사르 암살 당시 아직도 세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원로원파의 입지가 좁아질 거라는 건 명약관화한 상황이었지요.
거기다 조금 있으면 카이사르파 즉 민중파, 즉 개혁파의 결정적 승리가, 기득권파의 결정적 패배가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카이사르가 로마의 숙원이었던 파르티아 원정을 떠나기로 한 겁니다. 전쟁의 천재 카이사르가 출정하기만 한다면 승리하지 못 할 리가 없고 그렇게 되면 원로원파는 절대로 카이사르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 원로원파는 카이사르가 출정하기 전에 기습하기로 결심합니다.
원로원 회의장에는 무기를 지닐 수 없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건 로마인의 상식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로원 의원들은 카이사르의 신변을 지키겠노라고 약속까지 한 상황이었습니다.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도 로마인의 상식이었습니다. 그 상식을 믿고 카이사르는 경호대를 해산했으며 원로원에도 가벼운 차림으로 안심하고 입장했습니다.
하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몰락의 그림자에 미쳐버린 원로원파는 상식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칼을 품고 입장했고, 방심한 카이싸르를 십수명이 달려들어 난자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기득권 계급의 위기가 곧 로마의 위기라고 착각했고, 자기들의 위기감과 불쾌감을 전 민중이 함께 느끼고 있다고 오판했습니다.
카이사르를 죽이고 "(공화정의) 자유가 회복됬다!", "폭군은 죽었다!"라고 외치며 달려 나간 그들에게 돌아온 건 로마 시민들의 분노였습니다. 상식을 어긴 그들을, 민중의 지도자를 앗아간 그들을 민중은 증오했습니다.
"시민들이여! 마누라를 숨겨라. 대머리 난봉꾼이 나가신다!" 폼페이우스군과의 결전을 마치고 로마에서 거행된 카이사르의 개선식에서 카이사르 군단병(로마의 군단병은 시민이고 중산층이었습니다.)들이 외친 구호입니다. 카이사르는 이렇게 민중들에게 사랑받는 지도자였습니다. 마치 바보 노무현처럼 말입니다. "대머리 난봉꾼"이어서 근엄한 원로원파에게 지도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일까요?
부평초 인생을 살다가 원로원파의 후안무치한 공격에 시달리는 노무현을 보다못해 컴잉아웃한 것이 작년 10월 경입니다. 그 때 "내년 3월 15일이 되면 카이싸르 추모글을 하나 써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메모해 둔 제목이 "의회는 과연 노무현을 제거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런데 원로원이 진짜로 노무현에게 일격을 가하자 공황에 빠져버린 저는, 어느 정도로 공황에 빠졌냐면 도저히 밝힐 수 없는 창피한 일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어제는 지하철에서 무심히 내리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는 이적까지 벌어졌는데요, 어쨌든 공황에 빠진 저는 카이사르 건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일요일 케이비에스 100인 토론에서 이동복이라는 추잡한 자가 의회는 호민관이라는 둥, 호민관으로서 원로원은 로마의 지도자와 싸웠다는 둥 추잡한 언설을 늘어놓는 것을 보며 퍼뜩 이 껀이 생각났습니다. 민중을 지키는 호민관은 언제나 원로원의 적이었고 원로원은 그들의 철밥통을 건드리는 호민관을 계속해서 제거해왔는데, 귀족정을 획책하는 원로원에 의해 제거된 마지막 민중파 정치지도자가 카이사르인데, 이런 역사적 배경을 모를 리가 없는 자가 여론조작을 하기 위해 악랄하며 추잡한 궤변을 늘어놓더군요. 그 자의 궤변에 대해선 할 말이 더 있지만 인생이 불쌍하니 일단 줄이고.
옛날엔 매스미디어나 인터넷이 없었습니다. 국가 단위의 민주주의가 불가능했던 것이지요. 이른바 로마공화정의 선거는 철저한 조직선거에, 보스 금권정치 구조였습니다. 카이사르와 노무현의 차이는 제정과 민주주의라는 그 하나에 있습니다. 제정과 민주주의는 정 반대의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민주의 반대는 제정이나 왕정이 아니라 귀족정입니다. 왕정은 귀족정에서 민주공화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일 경우가 많습니다. 귀족정은 과두정입니다. 과두정은 소수가 끼리끼리 배타적인 이너써클을 형성해서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말합니다. 흔히 귀족, 호족 연합정권의 형태를 띄게 되지요. 로마공화정, 화백제도, 서울대공화국, 친일파-조선-정치자영업자카르텔 등등 말입니다. 그래서 저들이 공화국의 호민관, 노무현대통령에 그리도 적개심을 드러내는 겁니다.
원로원이 폼페이우스를 영입한 것은 수구세력이 이회창을 영입한 것과 같습니다. 최고의 캐리어를 가진, 광범위한 지지기반이 있는 존경받는 지도자와 어느 날 뚝 떨어진 신출나기이지만 민중의 사랑을 받는 대머리 난봉꾼의 대결은 곧 로마의 세대 대결이기도 했습니다. 구세대는 폼페이우스, 신세대는 카이사르였습니다. 폼페이우스에겐 사회 지도층 인사가 다 모여들었고, 카이사르 주위엔 30~40대의 중간관리자급 청장년층이 몰려들었습니다.
카이사르의 관용에 구세력은 불관용으로 맞섰습니다. 노무현이 오냐오냐 해주니까 아주 기어올라서 밟아버리려는 자들처럼 말입니다. 국세청과 검찰, 안기부를 동원해 자근자근 밟아 주었다면 저들이 이렇게까지 참혹하게 나올 수 있었을까요? 이에 대한 대응은 피의 복수였습니다. 카이사르 암살 후 아우구스투스는 철저한 숙청을 단행합니다.
카이사르에게 칼질을 한 사람들 중에는 공화정 지지자인 지식인 마르쿠스 부르투스와 카이사르의 한 팔이었던 데키우스 부르투스가 있습니다. "부르투스 너마저"의 그 부르투스가 이 둘 중 누구일까하는 문제는 아직도 수수께끼입니다.
데키우스 부르투스는 자신이 카이사르 후계구도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클레오파트라와 염문을 뿌리게 되는 안토니우스를 누를 수 없다는 한계가 데키우스에게는 있었지요. 노무현과 추미애, 정동영이 생각납니다. 추미애는 데키우스같은 마음으로 칼질을 한 걸까요? 마르쿠스 부르투스는 자신이 보편적 가치를 대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양가 없는 쓴소리를 일삼는 지식인들의 행태는 20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군요. 마르쿠스 부르투스는 자신이 결과적으로 수구세력의 칼잡이 노릇을 했다는 걸 자각했을까요?
개혁의 큰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두번째 전쟁이 시작됬습니다. 의회에서 칼질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는 누구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한번 굴러가기 시작한 바퀴는 마차의 무게로 길이 없어도, 길을 만들면서 나아갑니다. 멈추게 하는 방법은 마차를 뒤집는 수 밖에 없습니다. 기득권세력이 총 집결해 지금 마차를 뒤집으려 하는 중입니다.
로마는 단 몇년간을 통치했을 뿐인 카이사르의 작업에 의해 시스템을 갖추면서, 수백년간의 전성기를 엽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1년 동안에 우리나라를 엄청나게 변화시켰고, 지금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짧게는 이번 주 안에 길게는 한달 안에 우리나라가 로마처럼 수백년의 전성기를 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가 결정됩니다.
우리 국민의 저력은 능동적 참여가 어떤 계기로 시작되었을 때 나타난다. 그냥 보고만 있다가, 어떤 계기로 하나 둘 참여하게 되면,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하면서 기적을 일궈냅니다. 이번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쨌든 결과적으로 한민당께서 그 "어떤 계기"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멍석은 최병렬-조순형 콤비가 깔아 주었습니다. 우린 그 위에서 놀기만 하면 됩니다.
지금은 2000년전과 달리 문명국가라서 국회의원이 진짜로 대통령에게 칼질하지 않습니다. 문명사회의 폭력은 보이지 않게 서서히 진행됩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일격을 당한 카이사르는 속절없이 불귀의 객이 됬지만, 서서히 당하고 있는 노무현은 우리가 지킬 수 있습니다. 저녘마다 거리로 뛰쳐나가 촛불들고 놀기만 하면 됩니다. 웃고 즐기는 사이에 귀족지망자들은 황혼을 맞이합니다. 오늘의 이 순간이 우리 모두의 벅찬 자부심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2004.3.15. 울지아나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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