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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5.14 (제 13호) http://www.john316.or.kr
상한 감정을 감싸 안으십시오
예수님의 12제자 중 베드로만큼 인간적인 매력을 풍기는 제자가 있습니다. 바로 '도마'라는 제자입니다. 도마는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열정은 또 다른 열정을 자극하는 것이기에 참으로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열정이 쉽게 극단적인 모습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열정적인 분들 중에 어떤 분은 엉뚱한 곳에서도 열정을 보입니다. 어떤 분은 차 주차하는 문제로 흥분해서 사생결단을 하고 싸웁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이 생일을 한번 잊었다고 한달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어떤 남편은 퇴근해서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가 자고 있다고 다시 나가 버립니다.
도마도 속이 상하면 있어야 할 자리에서 뛰쳐나가는 극단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나중에 와서 말합니다. "나는 부활을 못 믿겠다. 내가 예수님 손의 못 자국을 보고 그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 열정적인 사람은 냉정으로 가는 시간도 빠르다는 말처럼 도마는 열정을 잃고 "내가 가까이에서 눈으로 확인해야 믿겠다"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믿음은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야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야 믿음의 진실성이 더 드러나고 애정이 더 잘 보일 수 있습니다. 사랑에도 때로는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거리 없는 사랑은 맹목입니다. 거리를 두는 것은 사랑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반듯한 사랑을 하겠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에는 '가까운 친밀성'도 필요하지만 '거리를 둔 존경심'도 필요합니다.
그처럼 열정이 냉정으로 변한 도마에게 예수님은 다시 찾아오셔서 "도마야! 그렇게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손을 만지게 하시고, 손으로 옆구리를 넣어보게 하셨습니다. 그의 상한 감정을 깊이 터치함으로 냉정을 열정으로 돌리시기 위해서입니다. 실패한 사람을 일으킬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의 깊은 터치입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매를 맞고 돌아와 그 말을 하면 부모는 선생님의 매를 수용하게 하면서도 자녀의 감정을 받아주어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네가 맞을 짓을 하고서 뭘 그러니?"라는 식으로 말하면 자녀는 점점 마음 문을 닫을 것입니다. 물론 맞을 짓는 했겠지만 그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자녀의 감정을 위로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꾸중들었을 때 대개 자신도 꾸중 받은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마음이 상했겠구나. 지금은 좀 풀렸니?"라고 먼저 감정을 위로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이미 자신의 감정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도 순순히 인정하게 됩니다. 누군가 마음이 상했을 때 감정의 깊은 터치를 통해 그 상한 감정을 감싸안을 때 냉정은 다시 열정으로 신속하게 변화될 것입니다.
ⓒ 이한규(hanqy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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